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탈북자 위장간첩사건이 던지는 메시지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12-03 오전 8:52:00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6

탈북자의 신분으로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위장 귀순한 북한동포가 1년3개월간 간첩행위 끝에 지난 7월 중순 자수한 사건을 정부가 관계당국으로부터 통보받고도 5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공개하지 않고 숨겨왔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1)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에도 대남공작을 계속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당국이 남한사회에 간첩활동을 위한 공작원을 직접 침투시킨 사례가 밝혀진 것은 4년 여전의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탈북 귀순자가 급증하는 시점에서 탈북자 사회를 파고드는 새 수법이 사용된 점은 주목할 일이다. 침투수법이 그만큼 과감해진 것이다. 밀입북시켜 초대소에 머물게 하면서 공작 암호명(127)과 비밀통신용 약정음어(陰語)를 부여하는 것 등은 전형적인 대남 밀봉교육이자 침투공작이다.

2) 극소수일지언정 불순한 세력이 집단 탈북자 가운데 끼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탈북자 신분으로 들어와 한국국적을 확보하고서 간첩활동을 했음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은 북한이 새 수법과 새 루트로 지속적인 침투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측은 탈북자의 한국행 루트를 이용할 경우 공작원을 안전하게 남한에 정착시킬 수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북한은 간첩 이씨를 다른 탈북자와 함께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진입시켰던 것이다. (탈북자의 급증으로 입국과정에서 입국심사나 탈북동기 경위조사 등 철저한 검증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 7월 468명의 탈북 집단입국자 가운데에도 중국 조선족이 포함되어있어 추방됐었다.)

3) 이번 사건의 경우 현지 대사관 요원의 심사를 받았고, 동남아를 거쳐 입국한 뒤 국군정보사령부와 국정원 및 경찰 등으로 짜인 합동신문조의 조사까지 통과했었다. 1999년 처음 1백명을 넘어선 탈북자 수는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년 1139명에 이어 작년(2003년)에는 1281명을 기록하는 등 급증세를 보여왔으며, 올해의 경우 연간 처음으로 2천명 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탈북자 동향 점검 미비에 따른 허점은 더 크게 노출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4) 그가 북한에 보고한 국군정보사령부가 운영하는 대성공사와 탈북자 정착지원시설 하나원의 위치와 경계시설 등에 관한 정보는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가'급 국가 보안설비이다. 이씨가 공관 진입에서 제3국 경유 및 국내 입국과정에서 일련의 신문을 거쳤고 경기도에 있는 탈북자 수용시설 하나원에서 두 달간 정착교육도 받았음에 비추어 이와 관련된 정보와 국가기밀이 북한에 유출되었을 것임을 어림할 수 있다.

5) 북한은 2000년대 들어 체제위기 차원에서 '탈북자의 급증'사태를 고민했을 것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남한 내 탈북자 사회에 대한 정보파악을 필요로 했을 것이며, 최근 들어 정부의 정착지원금 지원규모가 탈북자들의 요구수준에 미치지 못해 불만이 고조되고있음을 간파하고서 이들 집단에 반(反)정부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씨가 북한당국으로부터 탈북자동지회와 통일관련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 후 회원증을 갖고 재입북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무고한 전체 탈북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나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고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위장간첩 이씨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는 북한의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여 오만을 떨어가며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과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등 6.15 공동선언 4주년 행사가 떠들썩하게 열리고있던 시기였다.

정부가 관계당국으로부터 탈북자 위장 간첩사건 수사결과를 통보받고도 이제까지 비밀에 부쳐왔음은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간첩을 탈북자 사회에 위장 침투시켜 공작의 손길을 뻗치려 한 시도로부터 탈북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공개하여 경보를 울렸어야 했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7월 불거진 김일성 사망 10주기 조문 논란과 탈북자 468명의 집단입국으로 남북관계가 꼬여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 공개로 사태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이씨가 관계 당국에 자수하지 않았더라면 그 진상이 영원히 묻혔을 수도 있다. 그는 자그만치 1년3개월간 북한을 드나들면서 암약하고 다녔는데도 당국은 이를 전혀 몰랐다. 달리 보면 대공(對共) 수사조직이 크게 축소되고 요원들 사기도 실추한 상황에서 예견된 사건이기도 했다.

1998년 DJ정권이 들어선 이후 간첩사건 수사결과는 공개된 일이 거의 없다. 또한 간첩검거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왔다. 실제로 98년 20명, 99년 15명 등 두 자리 숫자의 간첩 검거실적은 2000년 3명, 2001년 4명, 2002년 2명, 2003년 3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관계당국은 지난 10월 간첩검거 현황을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면서 올해 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지만 탈북자 간첩사건은 제외되어 있었다. 그나마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이 직접 침투시킨 공작원을 잡은 사례는 한 건도 없고, 해외유학생 포섭 등 '우회 공작' 적발이 전부였다.



북한이 국내 고정간첩이나 친북 지하조직에 보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령(指令)통신은 매년 8만건에 이르는 상황에서 북한이 화해협력 분위기를 중시하여 대남 직접공작을 중단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 따질 것은 당당히 따지고 재발 방지를 약속 받아야하며, 국민에게 알릴 것은 분명히 알렸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 시점에서 이 사건을 국민에게 숨긴 채 탈북자의 국내 집단입국에 반발하는 북한에 사과성 언급을 하고 쌀 40만t과 비료 10만t을 보내줬다.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이 간첩사건을 공개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재(惡材)로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간첩이 출몰하는 상황에서 간첩 잡는 보안법을 폐지할 수 없다는 여론이 무성하게 일어난다면 여권(與圈)의 보안법 폐지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konas)

정준 (코나스 논설위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걱정되네   

    '간첩'이라는 말이 생소한 요즘 다시 '간첩'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되니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지금 그 잘난 참여정권에서 그리고 국정원에서 간첩에 신경이나 쓰고 있습니까? 지난 8월에 간첩은 이미 한국에서 그 활동을 멈추었으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왠 간첩이 다시 나타납니까? 참 좋은 세상입니다. 간첩 없는 세상이. 간첩들이 안방(청와대)까지 자유자제로 들락거리며 활동하고 있어도 "간첩은 없다"?</

    2004-12-03 오전 8:58:35
    찬성0반대0
12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