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운동권의 실체를 밝힌다(6)
Written by. 전경웅
입력 : 2004-12-14 오후 1:43:32
1986년 5월 3일 신민당의 개헌추진위 인천·경기지부 결성균관大회를 계기로 인천 주안동 시민회관 앞에 학생과 재야단체, 노동자 등 운동권 1만5천여명이 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인 사건. 이들은 '미제축출 파쇼타도'를 내걸고 개헌을 위한 여야간의 타협에 반대했다.
이 사건으로 제성민(연대 3제적, 징역 1년), 우제구(民統聯회원, 징역 1년), 윤영민(民統聯회원, 징역 1년), 서동석(民佛聯 회원, 징역 1년), 이종태(교원대조교, 징역 1년 6월) , 김희란(국민大3, 징역 1년 6월), 송대헌(民統聯회원, 징역 1년 6월), 이재영(인천대3, 징역 1년 6월), 한의석(서울大2, 징역 1년 6월), 민춘기(인하大2, 징역 1년 6월), 강경문(서울大4, 징역 1년 6월), 박병무(이천전기해고근로자, 징역 1년 6월), 김동범(성균관大4제적, 징역 1년 6월), 이병철(무직, 징역 1년 6월), 이헌필(성균관大제적,民靑聯회원, 징역 1년), 김경숙(무직, 징역 1년), 조은옥(서울신학大3자퇴, 징역 1년), 주성종(명지大4, 징역 1년), 국승보(운전사, 징역 1년), 이용주(인하大 무역3제적, 징역 1년), 이상명(인하大 철학3 휴학, 징역 1년), 이수영(연세大법학4 휴학, 징역 1년), 김창식(무직, 징역 1년), 김윤기(국민大 무역4, 징역 1년), 박종문(인하大영문4, 징역 1년), 이승민(서울大의대1휴학, 징역 1년), 심영찬(징역 1년), 강권구(동양피스톤해고, 징역 1년), 이상명(인하大4, 징역 1년), 윤택구(연세大3 제적, 징역 1년), 오희숙(연세大교육학4, 징역 1년), 김천석(연세大화공4, 징역 1년), 이건준(서울大경영3, 징역 1년) 등이 구속됐다.
한 편, 金敎興(김교흥) 열우당 의원도 당시 인천大 총학생 회장으로써 5ㆍ3 인천사태에 참여,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1 년, 집행유예 2 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졸업 이후에는 한국여론정치연구소, 제일리서치연구소 등 정치 컨설팅 활동과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하다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연구원장을 지냈다.
1997년 국민회의에 入黨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수배를 받았던 李光喆(이광철)열우당 의원은 이 사건 이전에도 1980년 5월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82년에는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징역 3 년을 선고 받았다. 1985년 졸업 후, 民統聯 지역운동협의회대표, 전북민족민주운동연합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5ㆍ18 관련 강연회에 주로 참석했다. 전주 시민회 대표, 시민행동21 공동대표, 5ㆍ18 기념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 전북추진위 실행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열우당 전북 본부장, 전북발전 시민포럼 대표 등을 맡고 있다. 張永達(장영달) 열우당 의원도 民統聯 총무국장 시절, 이 사건으로 국가 보안법 및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張의원은 그 이외에도 1974 년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활동 시절, 民靑學聯 사건에 연루되어 긴급 조치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7 년을, 1975 년 긴급 조치법 9 호 위반으로 징역 1 년, 자격정지 1 년을 추가 선고 받았었다.
출소 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民靑聯) 부의장 및 상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평민당 13 대 총선대책본부 기획조정실 실장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회의 원내 수속부총무,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일 의원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작년 6월, 북한의 NLL 침범 당시, 『꽃게철 만이라도 NLL 부근에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韓總聯 합법화를 지지하는 서명,『미국의 對北강경발언이 남북화해 방해』성명서에 서명했다.
李浩雄(이호웅) 열우당 의원 또한, 民統聯 상임 집행위원,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의장을 하면서 5ㆍ3 인천 시위 주도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그 후 民統聯 상임 집행위원,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의장, 全民聯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91년 민주당 정무위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야권통합추진위 실무협상대표, 인천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국민회의 당무위원, 새천년 민주당 총재특보 등을 지냈다. 현재 열우당 중앙위원을 맡고 있다.
1986년 7월 1일 고려大 애국학생회
애국학생회는 1986년에 고려大 학생들이 결성한 主體思想 계열의 지하학생운동단체이다.
당시 운동권은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대립을 중단하고 단일 지하 조직을 만든 것이 애국학생회였다.
그리고 이 조직을 전국적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反美청년회이다. 고려大는 애국학생회, 서울大는 구국학생연맹(救學聯), 연세大는 반제학생동맹 등이 결성됐으며 산하에는 무력투쟁을 위한 인민 무력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1986년 애국학생투쟁총연합회의 건국大 발대식 사건을 배후조종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었으며 1987년 5월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의해 26명의 조직원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조혁(고려大 82), 이종민(고려大 83), 박정호(고려大 83), 서민석(고려大 83), 안희정(고려大 83)등이 구속됐다. 이 중 조혁은 수배 중인 상황에서도 反美청년회를 결성하고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KAL 858기 폭파 사건이 안기부에 의한 조작이라는 說 을 퍼뜨리기도 했다.
현재는 主體思想 을 비판하며, 北韓탈북자지원 사업등 北韓민주화네트워크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한편, 안희정은 1987년에도 反美청년회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지내다 노무현 대선캠프에 합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 뇌물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이 선고되어 올해 12월 출소 예정이다.
안희정은 2003년 2월 17일의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主體思想은 인간이 되라는 이론적 장점이 있다』며 主體思想과의 공식적 결별을 밝히지 않고 있다.
1986년 9월 17일 구국학생연맹(救學聯) 사건
구국학생연맹(이하 救學聯)은 「단재사상연구회(이하 단사그룹)」에서 시작되었다.
단사그룹은 최초로 이념투쟁을 표방하였으며, 서울大 학생운동의 기본틀인 이념써클체계의 즉각적 해체, 종파주의의 척결, 학번제의 철폐 및 운동조직에 있어 권위주의적 잔재의 해소를 주장하면서 이에 대안으로 통일된 학생운동조직의 건설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1986년 3월 29일 구국학생연맹을 결성했다.
救學聯의 활동은 1986년 4월 10일 自民鬪가 발족되면서 본격화되었다. 救學聯은 主體思想에 기초하여 투쟁의 영역을 反美자주화투쟁, 반파쇼민주화투쟁, 조국통일촉진투쟁으로 나누고, 전국적인 이념서클의 조직화를 위해 학생운동연합체를 만들었으며, 10월 28일 건국大에서 벌어진 「전국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이하 愛學鬪련)」발대식에서 당국의 진압·검거로 救學聯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 사건의 관련자들이 그 유명한 김영환, 정대화, 하영옥 등이다. 김영환은 강철 서신이라는 글로 6개월 만에 운동권을 모두 장악했으며, 主體思想을 운동권의 핵심 이념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김영환은 이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자신의 조직원들과 함께 전향하여 현재는 계간지 시대정신을 통해 北韓민주화와 탈북자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한 편, 김영환의 전향을 변절이라며 폄하했던 하영옥은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현재 복역 중이다.
1986년 10월 28일 건국大점거농성사건(일명 건국大 愛學鬪聯 사건)
1986년 10월 28일 서울大, 고려大, 연세大, 등 전국 26개 대학교 학생 2천여명이 건국大에 모여 전국 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愛學鬪)발대식을 벌이다 교내로 진입한 3천여명의 경찰에 밀려 본관, 사회과학관 등 5개 건물을 점거하고 4일 동안 철야농성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천5백25명이 연행되고 이들중 1천2백87명이 구속되었으며 연세대 반제학생연맹,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애국학생회 등도 함께 일망타진된다. 그러나, 愛學鬪는 한국 사회를 미제식민지반봉건사회로 보는 主體思想을 그대로 차용하여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폭력적 방식의 투쟁으로 인해 운동권이 대중적 지지를 잃는 시초가 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에 全大協 등과 같은 전국적 조직의 시초가 됐다. (konas)
대중투쟁 극대화와 학생조직 활성화 시기: 1986년 ~ 1987년
1986년 4월 民民鬪, 自民鬪 사건
民民鬪는 반제 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의 약칭으로 1985년 全學聯, 三民鬪사건으로 학생운동 조직이 붕괴된 후 1986년 3월 서울大 인문대를 중심으로 결성되기 시작하여 성균관大, 연세大 등 다수의 대학으로 파급되었다.
독재타도와 비타협 원칙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自民鬪와 차이점이 있다. 급진적 사회주의 계열 노선이다. 「민족민주선언」을 기관지로 발간하였다.
自民鬪는 反美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의 약칭으로 民民鬪와 거의 동시에 표면화된 학생운동조직이다. 민족해방민중민주혁명노선(NLPDR), 즉, 主體思想을 받아들인 점이 民民鬪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기관지「해방선언」을 발간했다, 1986년 4월 10일 서울大 사회대에서 결성식을 시발로 각 대학으로 확산되었으며, 처음에는 야당을 배격했지만 「5.3인천사태」이후, 개헌투쟁으로 급선회했다.
이후 학생운동에서 自民鬪는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이들의 추종 세력이 현재까지 운동권의 주류로 자리잡고있다. 특히, 自民鬪는 主體思想을 지도이념으로 받아 들였다는 점에서 운동권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主思派 계열(일명 NL 계열)인 것이다. 이 사건의 관련자는 안상종(연대 民民鬪위원장)등 상당수로 1986년도 학생 운동권 구속자의 대부분이 自民鬪, 民民鬪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면 맞다.
1986년 5월 3일 5.3 인천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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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제성민(연대 3제적, 징역 1년), 우제구(民統聯회원, 징역 1년), 윤영민(民統聯회원, 징역 1년), 서동석(民佛聯 회원, 징역 1년), 이종태(교원대조교, 징역 1년 6월) , 김희란(국민大3, 징역 1년 6월), 송대헌(民統聯회원, 징역 1년 6월), 이재영(인천대3, 징역 1년 6월), 한의석(서울大2, 징역 1년 6월), 민춘기(인하大2, 징역 1년 6월), 강경문(서울大4, 징역 1년 6월), 박병무(이천전기해고근로자, 징역 1년 6월), 김동범(성균관大4제적, 징역 1년 6월), 이병철(무직, 징역 1년 6월), 이헌필(성균관大제적,民靑聯회원, 징역 1년), 김경숙(무직, 징역 1년), 조은옥(서울신학大3자퇴, 징역 1년), 주성종(명지大4, 징역 1년), 국승보(운전사, 징역 1년), 이용주(인하大 무역3제적, 징역 1년), 이상명(인하大 철학3 휴학, 징역 1년), 이수영(연세大법학4 휴학, 징역 1년), 김창식(무직, 징역 1년), 김윤기(국민大 무역4, 징역 1년), 박종문(인하大영문4, 징역 1년), 이승민(서울大의대1휴학, 징역 1년), 심영찬(징역 1년), 강권구(동양피스톤해고, 징역 1년), 이상명(인하大4, 징역 1년), 윤택구(연세大3 제적, 징역 1년), 오희숙(연세大교육학4, 징역 1년), 김천석(연세大화공4, 징역 1년), 이건준(서울大경영3, 징역 1년) 등이 구속됐다.
한 편, 金敎興(김교흥) 열우당 의원도 당시 인천大 총학생 회장으로써 5ㆍ3 인천사태에 참여,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1 년, 집행유예 2 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졸업 이후에는 한국여론정치연구소, 제일리서치연구소 등 정치 컨설팅 활동과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하다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연구원장을 지냈다.
1997년 국민회의에 入黨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수배를 받았던 李光喆(이광철)열우당 의원은 이 사건 이전에도 1980년 5월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82년에는 반정부 유인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징역 3 년을 선고 받았다. 1985년 졸업 후, 民統聯 지역운동협의회대표, 전북민족민주운동연합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5ㆍ18 관련 강연회에 주로 참석했다. 전주 시민회 대표, 시민행동21 공동대표, 5ㆍ18 기념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 전북추진위 실행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열우당 전북 본부장, 전북발전 시민포럼 대표 등을 맡고 있다. 張永達(장영달) 열우당 의원도 民統聯 총무국장 시절, 이 사건으로 국가 보안법 및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張의원은 그 이외에도 1974 년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활동 시절, 民靑學聯 사건에 연루되어 긴급 조치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7 년을, 1975 년 긴급 조치법 9 호 위반으로 징역 1 년, 자격정지 1 년을 추가 선고 받았었다.
출소 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民靑聯) 부의장 및 상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평민당 13 대 총선대책본부 기획조정실 실장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회의 원내 수속부총무,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일 의원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다.
작년 6월, 북한의 NLL 침범 당시, 『꽃게철 만이라도 NLL 부근에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韓總聯 합법화를 지지하는 서명,『미국의 對北강경발언이 남북화해 방해』성명서에 서명했다.
李浩雄(이호웅) 열우당 의원 또한, 民統聯 상임 집행위원,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의장을 하면서 5ㆍ3 인천 시위 주도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그 후 民統聯 상임 집행위원,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의장, 全民聯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91년 민주당 정무위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야권통합추진위 실무협상대표, 인천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국민회의 당무위원, 새천년 민주당 총재특보 등을 지냈다. 현재 열우당 중앙위원을 맡고 있다.
1986년 7월 1일 고려大 애국학생회
애국학생회는 1986년에 고려大 학생들이 결성한 主體思想 계열의 지하학생운동단체이다.
당시 운동권은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대립을 중단하고 단일 지하 조직을 만든 것이 애국학생회였다.
그리고 이 조직을 전국적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反美청년회이다. 고려大는 애국학생회, 서울大는 구국학생연맹(救學聯), 연세大는 반제학생동맹 등이 결성됐으며 산하에는 무력투쟁을 위한 인민 무력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1986년 애국학생투쟁총연합회의 건국大 발대식 사건을 배후조종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었으며 1987년 5월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의해 26명의 조직원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조혁(고려大 82), 이종민(고려大 83), 박정호(고려大 83), 서민석(고려大 83), 안희정(고려大 83)등이 구속됐다. 이 중 조혁은 수배 중인 상황에서도 反美청년회를 결성하고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KAL 858기 폭파 사건이 안기부에 의한 조작이라는 說 을 퍼뜨리기도 했다.
현재는 主體思想 을 비판하며, 北韓탈북자지원 사업등 北韓민주화네트워크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한편, 안희정은 1987년에도 反美청년회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지내다 노무현 대선캠프에 합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 뇌물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이 선고되어 올해 12월 출소 예정이다.
안희정은 2003년 2월 17일의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主體思想은 인간이 되라는 이론적 장점이 있다』며 主體思想과의 공식적 결별을 밝히지 않고 있다.
1986년 9월 17일 구국학생연맹(救學聯) 사건
구국학생연맹(이하 救學聯)은 「단재사상연구회(이하 단사그룹)」에서 시작되었다.
단사그룹은 최초로 이념투쟁을 표방하였으며, 서울大 학생운동의 기본틀인 이념써클체계의 즉각적 해체, 종파주의의 척결, 학번제의 철폐 및 운동조직에 있어 권위주의적 잔재의 해소를 주장하면서 이에 대안으로 통일된 학생운동조직의 건설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1986년 3월 29일 구국학생연맹을 결성했다.
救學聯의 활동은 1986년 4월 10일 自民鬪가 발족되면서 본격화되었다. 救學聯은 主體思想에 기초하여 투쟁의 영역을 反美자주화투쟁, 반파쇼민주화투쟁, 조국통일촉진투쟁으로 나누고, 전국적인 이념서클의 조직화를 위해 학생운동연합체를 만들었으며, 10월 28일 건국大에서 벌어진 「전국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이하 愛學鬪련)」발대식에서 당국의 진압·검거로 救學聯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 사건의 관련자들이 그 유명한 김영환, 정대화, 하영옥 등이다. 김영환은 강철 서신이라는 글로 6개월 만에 운동권을 모두 장악했으며, 主體思想을 운동권의 핵심 이념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김영환은 이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자신의 조직원들과 함께 전향하여 현재는 계간지 시대정신을 통해 北韓민주화와 탈북자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한 편, 김영환의 전향을 변절이라며 폄하했던 하영옥은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현재 복역 중이다.
1986년 10월 28일 건국大점거농성사건(일명 건국大 愛學鬪聯 사건)
1986년 10월 28일 서울大, 고려大, 연세大, 등 전국 26개 대학교 학생 2천여명이 건국大에 모여 전국 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愛學鬪)발대식을 벌이다 교내로 진입한 3천여명의 경찰에 밀려 본관, 사회과학관 등 5개 건물을 점거하고 4일 동안 철야농성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천5백25명이 연행되고 이들중 1천2백87명이 구속되었으며 연세대 반제학생연맹,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애국학생회 등도 함께 일망타진된다. 그러나, 愛學鬪는 한국 사회를 미제식민지반봉건사회로 보는 主體思想을 그대로 차용하여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폭력적 방식의 투쟁으로 인해 운동권이 대중적 지지를 잃는 시초가 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에 全大協 등과 같은 전국적 조직의 시초가 됐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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