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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향(轉向)의 조건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12-21 오전 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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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은 주사파와는 상관없다" "주사파라는 말은 당국과 언론이 만들어 낸 것일 뿐 실체가 없다" 이 모두가 최근 이철우 의원 지원사격에 나선 전대협 (全大協)의장 출신 여당의원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 어이없는 말들을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전향'은 주로 이념(사상)이나 신념의 변화 또는 종교의 개종(改宗) 등을 일컫는 말이다. '야구경기에서 투수가 타자로 역할을 바꾸거나 또는 고교생이 문과에서 이과로 옮기는 것을 두고 '전향(轉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과정을 '회심(回心)'이라 부른다. 따라서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공산주의자나 좌파사상가들이 그 이념이나 노선을 바꾸는 것은 '사상적 회심현상(回心現象)'이기도 할 것이다. 표현이야 어떻든, 자신의 내면세계가 성숙하면서 종래에 지녔던 지향성(指向性)을 포기하는 경우가 진정한 '전향'이다.

이(李)의원은 자신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나의 정치학 교과서는 성경(聖經)"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전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신학(神學)에도 계시 또는 복음보다도 이성을 우선하는 좌파(左派)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좌파신학은 과거 히틀러의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오욕의 기록도 갖고 있다. 이 좌파신학이 초토화된 것은 '칼·바르트(Karl Barth)'에 이르러서였다. 좌파신학의 골수분자에서 전향했던 그는 좌파 신학의 생리와 허구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그것이 그의 무기였다. 바로 이 '칼 바르트'의 등장으로 좌파신학은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던져졌다.

놀라운 것은 이미 범(汎)세계적으로 실험이 끝난 사회주의와 좌파신학이 유독 한국에서 판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에서 80년대 운동권 특유의 반(反)독재 투쟁논리와 '친북반미'의 오도된 가치관을 '진보적 가치'로 또는 '절대절명의 도덕률(道德律)'로 통용될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하이·코미디이고 어불성설이다. 

우리 문학사를 뒤돌아보면 1930년대 초 좌파문학운동을 주도했던 박영희(朴英熙)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이른바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를 탈퇴하면서 유명한 전향선언을 남겼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이고, 잃은 것은 예술 자신이다" 우리는 이 고백(告白)적 명언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은 이념적으로 정치와 지척(咫尺)지간이다. 정치는 더더욱 '이념적 도덕적 엄정함'이 요구되는 부문이다. 어느 누구든 자신을 진정한 지식인으로 자처한다면 '자신이 지향하는 이념과 사상'을 명쾌하게 밝히는 것이 도리이다. 그런데도 과거 '친북적 운동 경력'을 지닌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과거를 부인하거나 허물을 감추려드는 것이 현실이다. '지식인다운 선택'일 수가 없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거나 주체사상에 탐닉했던 인물이 과거를 뉘우치고 자유체제로 전향(轉向)할 경우 국민은 그의 과거를 탓하기보다는 '진정으로 참회하고 돌아섰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다. 공식적인 '전향 선언'이 자유민주체제에 발을 들여놓는 첫 순서가 될 것이다.

또 어떤 동기로 김일성 주체사상에 몰입하게 되었는지, 어떤 경로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깨닫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유민주체제의 존엄성과 정당성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전향동기와 전향 전후(前後)의 상황 및 그 과정에 대한 전향선언이 없다면 '입만의 전향'이 될 것이다. 

좌파의 전향을 두고 과거 그들이 몰입했던 좌파이념이나 주체사상의 경도(傾度)를 새삼 문제삼을 것은 없다. 달리 말해 과거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참회를 거쳐 '자유체제로 전향(轉向)했는가'가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한 증언은 다른 시각에서 볼 때 미(未)전향자를 깨우칠 수 있는 선험자(先驗者)로서의 식견이며, 국민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이념적 정체성을 옹호해야 할 신념을 다지게 될 것이다. 

'전향'을 선비정신과 지조에 어긋나는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변절·배신·훼절(毁節)과는 구분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 이유로 이념적 굴절을 겪은 386세대가 전향을 자기자신에 대한 배신이나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다.

최근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하여 '뉴·라이트운동'에 불을 지핀 386운동권 출신 40대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자유민주주의의 품으로 돌아온 386'이라며 반기는 계층도 적지 않다. 국민은 그들의 향방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 기대감을 키워 가고있다. 

과거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몰입했다가 신(新)우파로 전향한 좌파 골수 운동권출신인 그들은 '친북 좌파'들이 꾸미는 드라마를 저들의 사유방식과 언어로 맹점을 샅샅이 지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보수세력으로서는 '비장의 무기(武器)'를 획득한 것이 된다.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헌법질서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과거의 허물을 고백하는 용기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전대협 등 과거 좌(左)편향 반(反)국가단체에 몸담았던 의원들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이 나라의 선진화를 목표로 뉴·라이트운동을 발기하는 이들의 전향은 그런 이유로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konas)

정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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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진에서 탈출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전향자들만이 저들의 생리와 전략전술 및 허구성을 잘 알고있을 것입니다. 전향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저들의 폐부를 찌를 것입니다. 대거 전향을 유도해야 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12-21 오전 9: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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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6   

    양심에 의해 행동한다는 성직자들도 감히 북한에 대해 등을 돌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일반 주사파들이 이른바 전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생각은 바뀌었지만 그걸 주위에 내놓고 주장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향한 홍진표의 글에서</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

    2004-12-21 오전 9: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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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향   

    전향이란 게 남쪽에서 보면 아름답겠지만 북한에서는 배신이지요.. 배신자에게는 피의 보복을 하는게 조폭세계나 북한독재권력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전향한다는 게 쉬운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전향이 아름답고 용기있는 것인지 모르지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

    2004-12-21 오전 9: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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