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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오길영 해군상사 부인 김씨의 思夫曲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4-12-29 오전 10: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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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딸 낳고 재밌게 살자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애타게 불러도 안 들리나 봐요. 행복했던 그 짧은 시간의 추억만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요.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지난 10월 훈련 중 순직한 남편을 그리워하다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상사의 부인 김 모씨. 그가 자살하기 하루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애절한 ‘사부곡(思夫曲)’이 누리꾼(네티즌)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숨진 오길영 상사의 부인 김모(28)씨는 성탄절인 지난 25일 낮 ‘싸이월드’ 미니홈피(사진)에 ‘우리였어요’라는 글을 올려 “마음에 담고만 있자니 터져 버릴 것 같다”며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라도 이루시길 바란다”는 애도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아이디가 ‘navy223’인 누리꾼은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그토록 사랑한 남편을 만나소서.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이라며 추모했다.

‘thegreat39’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사랑의 지고지순함에 머리숙여진다”면서 “다만, 다른 분들은 같은 상황을 당해도 부모님과 주위분들의 심정도 생각하셔서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chody96’는 “김씨의 괴로움을 모두가 덜어 주었으면 이러한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순직한 분들의 유족을 우리 모두가 보살펴 주는 시스템이 됐으면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씨의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누리꾼들과 지인들의 애도 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주인 없는 홈페이지에는 가수 박효신이 부른 ‘눈의 꽃’만 처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 김씨가 죽기 전날 올린 글에는 오 상사와의 첫 만남과 8개월간에 걸친 연애, 신혼 생활 등 두 사람이 함께한 1년 6개월의 추억이 애틋한 어조로 담겨져 있다.

김씨는 이 글에서 “만난지 일주일 후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승낙하자, 그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길거리에서 ‘야! 나도 애인이 생겼다!’고 소리까지 지르더군요”라고 회상했다.

김 씨는 “첫 키스도, 그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오래 탄 것도, 그 와의 추억 모두가 내 인생의 처음 있었던 것들”이라며 “우린 만난지 8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지난 10월 12일 오 상사에게 1박 2일의 훈련이 떨어졌다. 그는 다른 날과 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출근했고, 12시 40분쯤 ‘이쁜이! 내다! 점심 먹었어?’라고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김씨는 “새벽에 꿈을 꿨는데, 그가 사고가 났다며 다친 몸으로 피를 흘리며 다가와 깜짝 놀라 깼다”고 밝혀 오 상사의 사고를 직감했음을 짐작케 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제발 살아만 있어”, “귓가에 그의 목소리만 맴돌고”, “정말 없는 건가”,“어떻게든 다시 돌아 올 거라 믿고 죽고 싶은 순간을 버텼다”는 등의 말로 당시의 비통한 심정을 표현한 김씨.

김씨는 “그가 전부였어요. 날 완전 바보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어요”라며 오 상사의 빈자리를 허탈해 했다.

김씨는 끝으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욕심 없어요. 돈 따위 다 필요 없어요. 여러분 내일은 아무도 몰라요. 오늘만 죽을 힘을 다해 행복해 지세요”라며 절절한 글을 마쳤다.

글을 마친 김씨는 미니홈피 사진첩에 ‘그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오 상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차례로 올렸다.

다음날인 26일 오전 7시 40분. 김씨는 창원시 대원동 모 아파트 1층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김씨에게 자녀는 없다.

특수선 기관장이었던 남편 오 상사는 울산 앞바다에서 해안 침투대비 훈련 중 선박이 침몰해 동료 3명과 함께 변을 당했으나, 현재까지 유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김씨가 자신의 미니 홈피에 올린 글 전문...

그를 처음 만난건 2003년 3월30일 친척분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그는 해군 직업군인이였어요. 난 군인을 싫어합니다. 군인들은 어느 시골 산속에만 살고 중요한 순간에 함께 있지도 못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싫어서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날도 나가지 않으려 했었는데 친정아버지와 소개하시는 친척분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나갔지요. 맘은 이미 정해져 있었구요.... 그때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버님과 함께 들어오던 그의 첫인상은 정말 착하고 수~~운해 보이는 인상이였고, 아이보리 면바지에 아이보리 면자켓 엷은 연두빛의 아저씨들이 입는것 같은 티 차림이였어요.

근데 인상이 넘 좋아서.... 말도 정말 없고 그냥 웃고만 앉아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내가 묻는말에만 대답하고... 차한잔하고 점심 먹고 금방 헤어졌지요.

그는 생각보다 적극적이더군요. 말은 많이 안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주더군요.

정들기 전에 정리하려고도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첨에 내가 여자친구 되주겠다고 승낙하던 그를 만난 일주일 후... 어찌나 좋아하던지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야! 나도 이제 앤이 생겼다!!” 촌스럽게..

그리고 우린 많이 가까워졌고, 직군이다 보니 얼굴은 많이 볼 수 없었어요.

전화로 얘기하는게 훨씬 많았지요.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 그의 실제 성격등 많은 걸 알 수 있었고,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고 너무 착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키스할 때도 물어보는 순진댕이입니다. “자갸! 나 키스해도 돼?” 이럴 땐 대답해줘야 하는건가요?

우물주물하는데... 에잇! ㅋㅋㅋㅋ 물어보지나 말던지.. 어쨌건 좋았어요.

전 그게 첫키스입니다... 28년만의 저도 참 대단하죠?

그는 날 보러 평택에서 기차를 타고와 시간 반을 만나고 막차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중간쯤인 대전역에서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기차를 많이 타본 것도 처음이네요.

그와의 모든 추억은 다~~ 내 인생의 처음 있었던,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입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를 만나면 다들 좋아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를 만나지 8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요.

시댁에서도 절 참 예뻐해 주셨어요. 그가 세 아들의 장남이였거든요. 그래서 전 맏며느리이자 딸이였어요.

지금도 그렇구요...그렇다고 생각해요.

아침 저녁으로 따뜻한 밥해서 마주 앉아 먹는거... 다녀온다고 뽀뽀해주고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현관밖에서 계단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고....

퇴근해 올 때까지 기다리기, 창밖에서 내 이름 부르며 자갸~~ 나왔땅 하면 문열어주고 잘 다녀왔다고 뽀뽀해주고, 저녁먹고 집근처 공원 손잡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항상 팔짱끼거나 두손 꼭 붙잡고 다니던 그때.

근무 없는 주말이면 둘이서 가까운 곳에 당일로 여행도 다니고 시댁으로 친정으로 부모님 뵈러.. 일손 도우러... 그렇게 다니던 그 순간순간이 너무도 행복했어요. 너무나도 ...

그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웠기에... 항상 나와 그는 부모님께 항상 잘하고 도련님들 결혼도 시켜드리자고 약속했고... 그럴때 마다 그를 보면 여느 때와 같이 항상 미소로 대답했지요.

너무나 행복했어요 이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그런 어느날 1박2일 훈련일정에 담날 야간근무가 잡혔어요..

다른 날과 똑같이 뽀뽀하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모레 보자 하고 저만치서 손을 흔들며 출근하고 12시40분쯤 평소보단 늦게, 그는 항상 12시쯤 되면 전화해요.

“이뿐! 내다! 점심먹었어?” 전 항상 그 전화 받으면 점심을 먹어요.

그렇게 전화해서는 이제야 도착했다고 점심 먹으라고... 그게 마지막 듣는 목소리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오후 내내 왠지 모를 불안한 맘이 들더라구요... 문자 보내도 답도 안하고.. 전화도 꺼져있고 바다 멀리 나가면 전화가 불통이 되요.. 그럼 그는 전화를 꺼두지요...

왠지 불안한건 여전했고... 밤 11시 50분쯤 저는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심하고 아침에 일찍 전화하라고 문자를 보내곤 잠이 들었어요.

새벽에 꿈을 꿨는데.. 그가 탄 배가 사고가 났다고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 다친 몸으로 피를

흘리며 제가 있는 곳으로 오는 순간 놀래서 깼고.. 그후로 제대로 잘 수도 없었고 기분이 정말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런 그날 10월 13일 아침 7시40분경에 전화가 오더군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 “오중사댁이지요? 어제 11시50분경에 그의 배가 침몰되어 그는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지금 부대로 오세요.”

5명이 탄 그의 반 잠수정은 침몰되었고 1명이 구출되고 4명이 실종... 4명중 한명이 그사람 이라네요...구출1명이 아닌 ...

믿을 수 없었고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리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데요.

부대까지 가는 동안 내내 생각했어요.

‘아니야 그사람들이 잘못알고 있어... 구출된사람이 그일거야. 오빠 제발 살아만 있어.’

귓가에 ‘이뿐?내다! 이뿐?내다!’하는 그의 목소리가 계속 맴돌고...

부대로 사고현장으로 다시 부대로 정신없이.. 아니 아무생각도 없이...

‘정말 그는 없는건가?’

그냥 그렇게 정신 놓고 장례식까지 치르고 지금도 난 아무생각도 없는 사람입니다.

완전 바보가 돼 버렸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안들어요~~~ 아무생각도.

몇 번이나 사고현장 그 시커멓고 무시무시한 바다에 나갔을 때.. 정말 여기서는 살아올 수가 없겠구나, 눈으로 확인하고도. 아니야 어떻게든 다시 돌아올거야 생각하고 ... 죽고 싶은 순간을 버텼어요.

시어머니는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다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시아버진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계시고...

그런 그분들을 보는 난 ...

결혼전까지 직장생활을 해오던 나는 많이는 아니더라도 부모님께 용돈드리고 친정오빠들과 함께 선물사다드리고... 그런걸 행복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난 지금 시어머니, 아버지 울엄마의 용돈 받으며, 그 돈은 관절염으로 아파하면서 농사지으시던 짬짬이 남의 집 날일 가셔서 버신 그런 돈입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너무 비참하고 괴롭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이러면 안된다.. 힘내서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하는데...

근데 그게 안되네요 아무리 안간힘을 쓰려 해도 안되네요..

그날 밤 그 산책이 같이먹던 그 야식이 아침에 마주앉아 먹던 그 아침이 마지막이 될줄은..

그를 만나고 그와 결혼하면서... 저는 그가 전부였어요... 너무 의지했나봐요.

사실 작은 손가방 지갑까지 챙겨 들어주던 그였으니깐요 ...

날 완전 바보를 만들어 놓고 그렇게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어요.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왜 이렇게 됐는지 ..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건지, 답답하기만 할뿐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운동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돈벌어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직업군인이 되었다던 그가 그렇게 착한 그가 고생만하던 그가...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가버려야 했는지...

우린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참 못해본것도 참 많은데...이뿐 딸 낳고 재밌게 살자 재밌게 살자...나에게 슬픈 기억만 남기고 그러고는 ... 어디론가 가 버렸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내가 이렇게 애타게 울부짖으며 불러도 안들리나 봐요 절대 오질 않네요...

우리가 첨 만나고 결혼해서 함께 살고 1년 6개월이네요...

머릿속엔 그와의 추억이 가득한데... 너무 행복했던 그 짧은 시간의 추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 봐요.. 그런데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아무런 의욕도 생기질 않아요.

이런 날 보게 하는 부모님과 오빠언니 우리 가족들에게 넘 미안하고 죄송해요.

이렇게 나약해져 버린 날.. 그냥 보게 내버려두는 날..

실력 딸리는 제가 주저리 주저리 제 얘기 좀 했네요... 마음에 담고만 있자니 터져 버릴 것 같아서...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욕심 내본 게 없어요.. 돈 따위 다 필요 없어요.

오늘 오늘을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세요...

내일은 아무도 모르거든요.. 오늘만 죽을힘을 다해 행복해지세요..오늘만...


(konas)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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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수정

    이런 죽음을 안타까워해야 하나요? 아님 아름답다고 해야만 하나요?머리 속이 너무도 복잡합니다.황폐해진 심리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죽음을 욕할지도 모릅니다.고인의 죽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어설픈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은 김씨의 홈피에 가질않기 바랍니다.해군출신으로서 아까운 인재와 아울러 아름다운 사랑을 잃고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ㅠ.ㅠ</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

    2004-12-29 오후 4:19:11
    찬성0반대0
  • ^^    수정

    故오길영 상사 부인 김명좌씨 싸이 주소입니다.... http://minihp.cyworld.nate.com/pims/main/pims_main.asp?tid=37064992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12-29 오후 2: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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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비군   

    남편을 그토록 사랑했던 김씨! 죽지 말고 살아서 남편의 위국헌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시지...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12-29 오후 2:19:54
    찬성0반대0
  • 수리    수정

    너무나 애절하고 간절한 사랑의 아픔 입니다. 저 세상엔 아픔도 이별도 없을 거여요.. 부디 이승에서 못다이룬 아름다운 사랑과 소중한 시간들.. 저승 에서 듬뿍 누리세요.. 진심으로 두분의 명복을 빔니다.. 두분의 깨끗하고 따뜻한 사랑 영원하시길.....</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4-12-29 오후 1:43:42
    찬성0반대0
  • 밍크고래   

    오상사님. 부인의 마지막 글을 보며...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무신론자입니다만... 살아서 원수같이 지내는 부부보다는 훨씬 행복한 분이었다는 생각이듭니다. 아쉬운점은, 두분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부인 김씨가 그리 쉽게 삶을 저버리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두분의 명복을 빕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

    2004-12-29 오전 1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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