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⑮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
1919년 3월 1일 수많은 청춘과 애국지사들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대한독립을 위하여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을 외쳤다. 일제 치하로부터 벗어나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렸던 광복절이 있는 8월에 그들의 희생을 되새기기 위해 부산 3·1독립운동기념탑을 찾아보았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부산지역은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동래, 범어사, 구포를 거쳐 4월 기장, 좌천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며 독립을 향항 열망을 표출하였다. 부산 동래구 명장동에 위치한 부산 3·1 독립운동기념탑은 부산에서 전개되었던 3·1 독립운동 당시의 민족기상과 나라 사랑을 드높인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기리고, 선열의 숭고한 뜻과 얼을 받들어 부산지역의 항일민족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며,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에 착공, 1996년 3월 1일에 만세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마안산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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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산을 오르다 보면 기념탑이 나타나는데 이 탑은 부지가 2,310m², 탑 전체 높이 21.6m, 좌대는 842m²이다. 독립운동 모습을 새긴 높이 6m의 원추형 군상탑은 만세운동에 투신한 선열들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기념탑은 창조하는 미래를 상징하고 있으며, 군상탑은 선열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웅장한 느낌이 드는 기념탑에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결집하는 민족의 정기를 표현하는 8괘 마당을 볼 수 있다. 또한 내부의 탑 기둥에는 부산 3.1독립기념탑 건립 취지문과 부산 3.1독립운동 약사·기미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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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취지문은 “(중략) 대한 독립 만세 피와 먹으로 얼룩진 깃발을 앞세우고 민중은 손에 태극기를 거머쥐고 만세를 외쳤다. 총칼 앞에 죽음을 무릅쓴 민중의 분노는 성난 파도와 같았으며, 산마루의 봉화는 삼천리를 누볐고 만세꾼은 동서로 줄달음쳐 항거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밤낮으로 이어져 독립의 의지는 불꽃처럼 타오르니 이 어찌 한겨레의 승리가 아니랴. 총칼과 맨주먹의 싸움이 어찌 단판에 이길 수 있으랴만, 일제는 마침내 통치방법을 바꾸었고 겨레는 이로써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나니 이 일을 영원히 잊지 말자. 우리는 이 탑 앞에서 자주독립과 조국번영의 각오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1996년 3월 1일 박지홍 짓고 배재식 쓰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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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 바로 앞에는 지름 1.3m의 반구형인 명각비가 있고, 1919년 4월 기장면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20세에 순국한 구수암(1992년 애국장) 선생 등 만세 운동가 46명의 이름과 향토학자 최해군 씨가 지은 추모 헌시인 “여기 천지를 뒤흔드는 ‘대한독립 만세’ 이 함성은 침략자 일제에 항거한 우리 겨레의 피맺힌 절규였다. 민족자존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한 선언이었다. 님들은 오직 한길 나라사랑에 온 신명을 바쳐 위대한 조국광복을 이룩하였나니 올곧은 그 정신 그 뜻 고이 받들어 여기 새겼사오니 영광스러운 대한의 이름으로 길이 빛나소서! 영원하소서!”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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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의 주역인 손병희 선생은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겠소.”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에서 우리는 3·1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3.1운동과 독립기념탑은 우리 독립의 시작이자 독립정신을 일깨워주는 ‘열쇠’였다. 기념탑 옆에는 기념탑을 지키는 듯이 무궁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영원, 끈기’이다. 이는 3·1운동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영원하고 강인한 독립정신을 상징한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군상탑의 태극기를 들고 함성을 외치는 민중들의 모습과 그를 지켜보며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가족이었다. 독립을 위해, 가족을 위해 죽을 줄 알면서도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는 1919년의 대한민국이 처했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현실에 저항하고 독립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격렬한 함성,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광복의 뜻은 光(빛 광), 復(돌아올 복)으로 ‘빛을 되찾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빛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던졌다. “우리는 이 탑 앞에서 자주독립과 조국번영의 각오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라는 기념탑 건립 취지문처럼 우리는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며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본받아 대한민국의 계승을 위해 힘써야 한다. 부산 3·1독립운동기념탑 외에도 서울, 광주, 오수, 안성, 강릉, 화성 등 30여 개가 넘는 3·1운동 기념탑이 존재한다. 그만큼 전국에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힘써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념탑은 우리에게 그날의 함성과 열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 정신을 후대의 자손들이 계승하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어쩌면 선열들은 지금 우리가 일상을 지내고 있는 이 모든 장소에서 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광복 76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모습에 감동을 느끼며 뭉클하듯 우리는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충의와 위훈 정신을 기려야 할 것이다.(konas)
향군 대학생 기자단 조승찬·신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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