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민주주의의 실체
많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구랍 국회 내 여당 강경파 의원들의 농성장에 '국보법 폐지하고 민주화 앞당기자'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음을-. 그리고 지난 해 12월 초 여당 원내대표가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반(反)민주세력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음을-.
그 플래카드는 대한민국이 국보법 존치로 인해 민주화가 되지 못한 채 '미망(迷妄)의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 한마디는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거나 개정을 주장해온 국민 80%를 반(反)민주세력으로 내모는 폭언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 건국·수호·근대화를 이끈 보수세력은 이렇듯 친북좌파들이 쳐놓은 '이념의 덫'에 걸려 '반(反)민주'로 내몰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좌파세력은 정치·교육·문화·종교 등 사회 각 부문을 파고들어 이렇듯 용어(用語)의 혼란'부터 야기한 후 조타수가 되어 뱃머리를 북(北)으로 돌린다.
친북좌파들은 그들 노선에 다소라도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 이렇듯 '보수·수구(守舊)·반동(反動) 또는 '반(反)민주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자유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믿는 사람이 '민주화인사'로 대접받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고도 민초들은 안보불감증에 절어 눈썹도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 지구상에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은 나라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한 나라의 정부형태는 무릇 그 나라 국민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동의에 의거하여 존립한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명분에서인 것이다. 북한 역시 사상 유례 없는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어휘처럼 편리하고 유용한 용어가 또 있을까. 북한이 이런 이점을 외면할 리가 없다. 북한당국자들은 남한과의 이념 대결에 앞서 '민주' '민주화' '민주적' 등의 어휘를 선점한 데 이어 국내의 수구좌파(左派)들도 그 어의(語義)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국내의 어지간한 좌파(左派) 사회단체 시민단체 명칭 앞머리에는 거의 예외 없이 '민주' 또는 '민주화'라는 접두어가 붙어 다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 어휘에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는 전혀 없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과거와 쓰임새가 크게 달라진 '용어의 혼란'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북한의 '민주주의' 어의(語義)는 해방 이후 수시로 변화를 겪어왔다. 해방 직후 박헌영(朴憲永)은 북한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착취계급에 의한 '구미식(歐美式)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노동자·농민·도시 소시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처음 발안한 개념을 북한이 그대로 빌려다 사용해온 것이다.
그 후 북한에서 공산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이 용어는 '인민민주주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가 아님)라는 어휘로 격상했다. 김일성은 이런 용어들을 일괄하여 다시 '민주주의'라는 어휘로 묶었다. 최초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인민민주주의'로, 다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로, 그리고 또 다시 '민주주의'로 명칭상의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에 명기된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①' 1당(黨)독재체'가 아니라, 두 개 이상의 정당을 가지고 있는 정치제도이고 ② 자유선거·독립된 사법부·자주적 노동운동이 명시되어있는 법치(法治)주의이며 ③ 언론·출판·결사·집회·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민주주의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추구하는 보편적 자유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 운동 역시 60년대에는 '자유 민주주의'의 본령을 되찾자는 순수한 운동에서 출발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념적 정체성과 헌정(憲政)질서를 존중하는 민주화운동이 1980년 광주사태 이후 반한(反韓)·친북(親北)·반미(反美)투쟁으로 크게 변질된 데 이어 이제는 '국보법 철폐'가 역사의 진보'이고, '민주화'인 양 오도되고 있다.
북한은 인민이 주권을 갖는다는 의미의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실 김일성 가계 신정(神政)체제를 구축하고서 인민 위에 노동당이, 또 그 위에 군(軍)이 그리고 맨 위에 수령이 군림하는 형태의 선군(先軍)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시장의 자율성'이나 '사유재산제도' '인권'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계 유일무이의 학정(虐政)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유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는 우리 헌법 조문에 명시되어있는 개념이다. 영어 표기로는 'liberal democracy'가 된다. 같은 '민주주의'라지만 북한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자리할 곳에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들어서 있다면 이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결코 '우연'일 수도 없고, 간과해도 무방한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지 않는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마저 도둑맞고 말 것이다.(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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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오후 12:5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