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 교체, 문제 없는가?
정부가 광화문 현판 글씨를 바꾸겠다는 보도가 있자 인터넷과 주요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여론 떠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걸려있는 현판 '광화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글씨인데 교체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독재의 잔재', '한글로 쓰여 경복궁의 성격과 맞지 않아' 등의 주장을 하는 반면, 교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광화문이 제대로 복원 될 때 교체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코나스>는 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아래 첫번째 글은 코나스 게시판에 실린 글로써 세계일보 조사위원인 김성한씨가 쓴 것이며, 두번째 글은 국민일보 손수호 기자가 25일자 신문에 실은 글이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하며 많은 토론이 있길 기대한다. (편집자)
1. 光化門
광화문 현판이 교체될 모양이다. 문화재청은 박정희 전 대통령 글씨로 1968년 광화문에 내건 한글 현판을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새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새 현판은 과거 한자 현판에 맞춰 ‘門化光’으로 하되 정조 대왕의 글씨를 집자해 제작한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현재 현판이 경복궁의 공간 성격과 맞지 않고 원래 한자 현판과 달리 글씨 방향도 거꾸로 돼 있다”는 이유를 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의 교체는 그동안 일부 학계와 “독재자 시절의 잔재”라고 주장하는 ‘안티박정희’ 쪽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내용이다. 이를 문화재청이 실천에 옮기기로 한 것이어서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나 모양새로나 찜찜한 구석이 적잖아 개운찮다. 우선 한일협정과 문세광 사건 기록 공개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시기에 문화재청이 불쑥 현판 교체를 들고 나온 점이 그렇다. 문화재청이야 잘못된 것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시류와 분위기에 편승한 듯한 ‘한건주의’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다른 부처에서 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업무를 제쳐놓고 ‘박정희 잔재 찾기’에 나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일부만의 기우일까. 정조대왕의 글 중에서 세 글자를 따겠다는 발상도 ‘날림 공사’를 연상시킨다. 서예는 점과 선, 여백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예술이다. 그런 서예의 오묘함을 도외시하고 다른 용도로 쓴 글자를 모은 것이 현판으로 어울릴지 의문스럽다.
광화문 현판이 독재자의 잔재일지라도 분명 역사의 일부다. ‘옳은 과거’만 갖고는 과거를 통한 앞날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특히 과거 흔적의 파괴는 신중해야 한다. ‘중앙청’을 허문 것에 대해 아직도 말이 많지 않은가. 문화재청은 여론수렴 절차를 충분히 밟고 교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성한(영관장교연합회 부회장, 세계일보 조사위원)
2. 광화문 현판 교체 문제도 많다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을 바꾼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교체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방식과 내용에 의문을 표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1968년 복원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바뀐 광화문 현판이 경복궁의 공간적 성격과 맞지 않고 글씨의 방향도 거꾸로 돼 있어 오는 광복절에 맞춰 정조의 해서체를 집자한 현판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24일 밝혔다.
그러나 교체할 광화문 편액이 하필 정조의 글씨여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경복궁의 광화문과 정조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정조는 1776년 왕위에 오른 이후 1800년 승하하기까지 줄곧 창덕궁에 머물렀다. 정조시대가 일궈낸 찬란한 문예부흥도 규장각과 주합루에서 탄생했으며 그 단아한 글씨와 ‘홍재전서’라는 방대한 저술도 창덕궁에서 이뤄졌다.
오히려 정조를 비롯한 조선조 중기의 왕들은 경복궁이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임어(臨御:왕이 어느 궁궐에 자리잡는 것)를 멀리했다. 이때문에 글씨가 좋다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왕의 글씨를 집자해 광화문의 편액에 사용한다는 것은 경복궁의 역사성을 소홀히 여긴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기에다 일각에서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정조의 그것과 자주 비교한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편액은 광화문의 전체 문제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 때 해체의 수난을 겪은 광화문은 6·25 때 다시 폭격을 맞아 고유의 목재 건물이 없어지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 서화가 정학교가 쓴 경복궁의 원래 현판도 이때 불타 없어졌다. 특히 1968년 이를 복원하면서 화강암 장대석 위에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 기둥과 서까래를 얹은 기형적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 또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과 축을 맞추다보니 경복궁 남북 축에서 3.5도 가량 동향으로 틀어져 있으며 위치도 원래보다 10m 정도 물러서 있다. 따라서 광화문 전체 문제를 놔두고 현판만 교체한다는 것은 종합적인 경복궁 복원 계획과 거리가 먼 이벤트성 행사로 치우칠 공산이 크다.
마지막으로 시기의 문제이다. 최근 10·26 사건에 대한 비밀문건이 공개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가 재조명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 문화유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광화문의 박정희 필적을 떼내는 것은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 정부의 과거사 문제와 문화재는 별개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광화문 문제는 신중하고 장기적인 계획 아래 추진돼야 한다. 나라의 중심가로에 서있는 국가적 랜드마크인만큼 한 외청급 행정기관이 전격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나 세미나 등을 열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지혜를 모아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광화문이 제 위치에 제 모습대로 복원될 즈음, 우리 후손들은 정조의 글씨가 새겨진 편액을 다시 내릴 지도 모른다.
**손수호기자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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