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독립운동가들의 ‘통합’운동단체 촉진회 관련 문건 최초 공개
분열된 독립운동단체 및 좌·우 정당통합 위해 결성
일제강점기 청년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통합’운동단체인 ‘한국혁명통일촉진회’와 관련한 문건이 8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됐다.
국가보훈처는 5일 “그동안 자세한 활동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1940년대 독립운동단체인 ‘한국혁명통일촉진회(이하 ‘촉진회’) 관련 문건을 다수 발굴하여 공개한다”고 밝혔다.
촉진회는 1942년 6월 중국 쿤밍(昆明)에서 강창제, 조중철, 김우경 등 당시 한국독립당에 소속된 20~30대 청년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좌·우로 분열된 독립운동 단체 및 정당의 통합을 통해 대일전 승리와 연합국의 임시정부 승인을 이끌어낸다는 목적을 두고 결성한 단체다.
촉진회의 활동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였지만, 청년들이 독립운동의 주역이 되어 시대적 소명인 정당을 통합하여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할 것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1940년대 독립운동사에서 새로운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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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보훈처가 작년 12월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수집한 것으로, 촉진회가 1942년 5월부터 1943년 1월까지 작성한 총 45쪽 분량의 문서 9건이다.
문건은 중국 관내 청년들에게 촉진회의 주장을 전하기 위해 제작된 소책자와 미주 활동 독립운동가들에게 촉진회의 활동을 소개한 편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건에서 촉진회는 당시 연합국의 승리와 조국독립이 가까워진 상황에서도 좌우로 분열되어 있는 독립운동의 실상을 지적하며, 정당통합은 연합국으로부터 임시정부를 승인받고 독립 이후 한국인이 자주 독립정부 수립의 주체로 나서기 위한 필수적 전제임을 주장하였다.
세부적으로 「한국혁명통일촉진회 성립 선언(1942년 6월)」에서는 “대일전의 승리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 정당 및 단체의 통합이 필요하기에 촉진회를 설립”하였음을 선포하고, 「관내 조선혁명동지들에게 고함(1942년 9월)」에서는 “청년들이 시대적 임무인 정당통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였다.
또한 「동맹국의 승리와 조선독립(1942년 9월)」에서는 “연합국의 승리를 위해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마지막 문건인 「최근 관내 우리 소식(1943년 1월 16일)」에서는 “연합국의 승리 이후 한국인 스스로가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통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촉진회의 문건에 대해 김영범 교수(대구대학교)는 “80년 전 독립을 열망하는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좌·우를 뛰어넘는 통합을 기성 독립운동가들에게 강력히 요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해당문건들은 촉진회의 설립 배경, 참여인사, 활동내용 등을 자세히 밝히고 있어, 1940년대 정당통합운동 역사를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오영섭 교수는 “촉진회 관련 문서가 대량으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1940년대 정당통합운동과 관련된 기존 연구를 재검토해야 할 정도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건으로 보인다”고 평가하였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문건들을 통해 기존에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지 않은 여러 인물들의 촉진회 활동이 새롭게 드러남에 따라 이들의 공적 확인에도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남궁선 보훈처 보훈예우국장은 “선열들의 독립운동 흔적들을 찾아내고 조국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후대에 알리는 것은 국가의 마땅한 책무인 만큼, 앞으로도 국외 독립운동 사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공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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