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의 피눈물을 어찌할꼬!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민족이 국가를 선택할 수 없듯이 국가의 부름을 받은 젊은이들이 전장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문서로 된 명령이건 구두로 된 명령이건 명령에 의하여 갈 방향이 정해지고 비록 그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일지라도 가야만 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다.
전투란 결국 "타도 감정의 무한계성"과 "노력 경주의 무한계성"에 따라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생사의 갈림길이 숫하게 놓여있는 공간에서 치루어 진다. 때로는 전사, 사망, 실종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적의 수중에 포로로 잡히게 되기도 한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소련과 중공의 지원과 묵인하에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군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참전국 군인들이 희생되었으며 민간인들 또한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던가. 뿐만 아니라 이산 가족이 무려 천만 명을 넘나드는 민족사 최대의 이 비극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 이름 모를 산골에서, 갯마을에서, 도서벽지에서, 도시에서 자유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수천 수만의 젊은이들이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전선으로 달려갔고, 포연탄우 속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가족을 부르며,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지는 꽃잎처럼 사라져간 젊은이들이 그 얼마였던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어느 전사병 어머니의 단장의 노래처럼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이 저 산천 초목아래 피를 흘리고....."사라져 갔던가.
몇 일간 굶주림과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서 헤어진 옷과 신발에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를 내 맡긴 채 한없이 울며 넘었던 고개들이 몇이었던고. 그래도 끈질긴 목숨이라 오늘까지 살아서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핏줄의 따스함이 스며있는 고향 땅으로 가려는 인간본연의 귀소본능이 발동하여 죽음을 무릅쓴 채 얼어붙은 동토의 땅을 벗어나 힘찬 나래 짓을 펼쳐 보았건만, 만리장천 하늘아래 넓고 넓은 중국 땅을 헤매다 힘 잃은 날개 짓을 접은 채 다시 죽음과 공포의 땅으로 끌려갔다니 세상에 이렇게 원통하고 허무한 일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한 맺힌 반세기 동안의 질곡의 삶이 모자라 또다시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비참한 삶에 직면해야 할 국군포로의 삶을 어찌 글로서 표현 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은 국가라는 보금자리가 있기에 평안을 누릴 수가 있고 국가는 국민이라는 지킴이가 있기 때문에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되는 것이거늘, 국가가 위급할 때 몸바쳐 희생한 국민들의 삶을 우이독경 식으로 넘어간다면, 더구나 적과 싸우다가 포로가 된 자들의 생사를 내 몰라라 한다면 국가의 존재 가치가 어디 있을 것이며 앞으로 국가가 위난 시 또다시 젊은이들을 부른다면 누가 기꺼이 국가의 부름에 달려 갈 것인가. 지금껏 우리는 북한을 같은 동포라는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온정과 지원을 베풀어 왔던가. 그런데, 북한주민들도 배부르게 해주지 못하면서 배고픔과 폭정에 못 이겨 보다 인간다운 삶을 찾아 사선을 넘은 칠순의 노인을 다시 지옥과도 같은 동토의 땅으로 끌고 간 북한에 대하여 왜 우리는 당당하게 "돌려달라"라고 말못하고 있는가.
강물은 말라도 강물이 흐르던 자국은 오래 남듯이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없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남겨놓은 자국은 후대에까지 오래오래 남을 것이기에 역사에 부끄럼 없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참다운 기쁨으로 마감 할 수 있도록 '한 만택'국군포로를 자유대한의 품으로 모셔와야 한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기쁨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고 향기로운 기쁨이 가정의 웃음이라고 했듯이, 반드시 선대의 얼이 서린 고향으로 돌아와 친지들과 함께 반세기전 누렸던 가정의 웃음을 되찾게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에 대한 감상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우리 국가에게, 우리에게 내려준 거룩한 사명이기 때문이다.(konas)
배상기(재향군인회 안보국장, 예비역 해병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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