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 백선엽을 생각하다”
육군협회, ‘故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 추모 학술대회’ 개최
오는 10일 故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를 앞두고 대한민국육군협회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소재 육군회관에서 “백선엽 장군! 백선엽을 생각하다”를 주제로 백선엽 장군 추모 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날 학술대회는 6.25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역할과 활동 및 그의 친일 행적에 관해 재검토해 보는 취지로 진행됐다.
먼저 전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남정옥 박사는 ‘6.25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역할과 활동:역사는 어떻게 평가해야 될 것인가’ 발제에서, 백 장군에 대해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패배를 모르는 독보적 지휘관이자 미8군사령관이 흠모한 장군, 언론 및 학계에서 광복 50년 한국을 바꾼 100인에 선정된 인물 등으로 평가했다.
특히 남 박사는 백 장군의 전투지휘경력 중에는 미군과의 협조뿐만 아니라 국군 지휘관 중 유일하게 미군을 통합 지휘하여 전투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그 사례로 백 장군의 1사단은 1950년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 제24연대와 연합하여 갈령을 넘어 내려오는 북한군 15사단의 주력의 남진을 저지해 전시 최초로 한미연합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단계에서도 미 고사포 군단을 배속받은 1사단이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하게 되면서 밀번 군단장으로부터 미 전차대대를 지원받아 한미연합군을 지휘해 미1기병사단을 제치고 평양에 선두로 입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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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백 장군은 평양 탈환 후에도 미군 포로 구출과 북한군 주력을 차단하기 위해 평양 북쪽 숙천과 순천지역에서 실시된 미187공정연대전투단과의 연결작전에 참가했는데, 이는 한미간 최초의 지상 및 공정부대와의 연결작전이었으며, 서울 재탈환 후인 1951년 3월에도 서울에서 빠져 나가는 공산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문산 지역에서 미187공정연대전투단과 연결작전을 실시했으며, 이러한 경험이 한미연합작전과 한미동맹 발전에 기여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 박사는 우리 역사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위인이나 전쟁 영웅들이 이념적 편향과 정치적 잣대에 따라 난도질 당해 역사의 잡초 속에 묻히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형석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재단 이사장은 ‘백선엽의 친일 행적에 대한 재검토’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백 장군의 친일 행적을 둘러 싼 갈등을 이념이 아닌 역사학적인 입장에서 검토했다.
김 이사장은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백 장군의 친일 행적으로 봉천군관학교 입학, 민주국군 소위 임관, 간도특설대 근무 등을 들었고, 같은 달 출판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도 <백선엽 회고록>에 소개된 간도특설대 행적을 바탕으로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백 장군이 1989년 6월에 ≪군과 나≫ 회고록을 출판하자 미국과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2000)이란 제목으로 출간하면서 원본에 없는 ‘간도특설대 부분’을 추가했고, 백 장군이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을 몇 번이나 소개한 것은 나름으로 떳떳하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김 이사장은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면서 독립군을 토벌했는가’의 문제에 대해,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로 부임한 시기는 1943년 2월로, 당시 김일성 부대는 시베리아로 철수한 상황으로 만주국의 치안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만주에서 조선인 독립군의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백 장군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이어 “간도특설대와 관련한 비화들도 표현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며, “간도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토벌을 10차례 진행했는데 그중 4번은 헛물켜고, 3번은 이기고, 2번은 패하고. 1번은 얻어 맞았는데, 1939년 8월 24일 ‘대사하’ 토벌에 나선 20명의 병사 가운데 16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겼었다”면서, 국내 언론과 역사학계에 무분별하게 제기된 간도특설대의 비화들을 재검토해 봐야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1985년 조선족 사가 차상훈이 <안도산문자료>(제2집)에 「간도특설대」를 발표한 이후 국내에 무분별하게 소개된 간도특설대 관련 자료는 연변 조선족사회 작가들이 구술에 기초해 작성한 것으로, 부정확하고 과장된 표현이 많기 때문에 연구자에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그동안 간도특설대에 관한 연구에 인용된 중국측 자료도 모두 공안국의 공술 자료라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간도특설대」가 발표된 이후 독립군 토벌과 조선인 학살 만행을 고발하는 많은 자료가 발굴되었지만 지금까지 백선엽 장군의 이름이 거론된 적은 없었으므로 역사 서술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을 추측만으로 사실인 것처럼 단정 짓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며, “역사 해석은 법적 잣대가 기준이 아니라 오직 ‘역사적 사실’로 판단해야 하며 정치적·념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백 장군이 만주국군에 자원 입대한 것이나 간도특설대 근무를 기술한 역사인식은 오늘의 시선에서 보면 ‘친일’로 비판받을 수 밖에 없을지라도,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된 것은 민주국군 장교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경력 탓이지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하고 동족을 살해한 때문은 아니다”면서,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스스로 희생한 일본군·만주국군 출신 장교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국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올바른 역사인식이 아니라고 덧붙였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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