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공조는 허구이다
북한이 다시 민족공조를 강조하고 나섰다. 노동신문은 최근(2월8일) 논설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 격화는 미제의 분열주의적 전쟁책동에 의한 것이므로 우리 민족(남북한)은 미국과 그의 분열정책을 첫째가는 투쟁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그간의 입장과는 달리 반미투쟁의 기치를 높이고 또 다시 민족공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이 북한은 이틀 후(2월10일) 핵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민족공조 강조와 6자회담 불참 선언- 이 두 가지를 연계하여 풀이하면 북한은 이제까지 즐겨 사용해온 벼랑끝외교로 돌아서면서 그들의 대미(對美)항전에 남한을 들러리로 나설 것을 종용하는 것이나 진 배 없다. 그것이 그들 식의 '민족공조'인 것이다.
"북과 남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도 무력행사의 조건으로 되지 않으며, 반미·자주 없이 민족의 통일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의 '민족공조' 명분이다. 북한이 지난 수개월간의 대남 강경노선을 바꾸어 이처럼 유화정책으로 나오는 것은 남한 내 민족공조와 반미무드 강화를 통해 실익을 챙기고 눈앞으로 다가선 6자회담에서의 입지강화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불과 하루 전(2월7일)만 하더라도 남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면서 우리 해군의 북방한계선 수호의지 천명을 군사적 대결을 선동하는 전쟁 책동이라고 비난수위를 높였던 그들이다. 그것도 최근 20일동안 다섯 차례나 똑같은 메시지를 내보내며 비난강도를 높여왔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NLL은 우리와 아무런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경계선이었다.
북한은 작년 7월 우리 정부의 1) 민간단체의 김일성 10주기 조문(弔問)방북 불허와 2) 탈북자 486명의 대거입국조치 3)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자유북한방송' 허가에 불만을 표출하고서 작년(2004년) 8월초 서울에서 갖기로 한 15차 장관급회담을 보이코트했었다.
그들은 '김일성 조문' 방북 불허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의 '사과'까지 요구하면서 이를 빌미로 해운실무접촉과 군사실무접촉을 일방적으로 연기했고, 탈북자 집단 입국에 대해서도 '계획적인 유인납치이며 백주의 테러'라고 비난한 데 이어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안 통과까지도 북남(北南)관계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아가는 용납하지 못할 범죄'라고 반발했었다.
북측이 장관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1년 3월 5차회담 때엔 부시 미 대통령의 '김정일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발언을 문제삼아 회담을 미뤘고, 그해 10월의 6차회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직후 강도를 높인 우리측의 경계 태세를 이유로, 그리고 지난해 4월 10차 회담은 미국의 이라크전 이후 우리측 경계태세 강화를 이유로 외면했었다.
북한은 안으로는(=북한에는) 수령독재체제가 인류역사상 가장 좋은 민주주의라며 인민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키고 있고, 밖으로는(=남한에는) 주체사상과 민족공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산위에 있는 고도의 가치라는 명분론을 날조하여 남한의 젊은이들에게 이식시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저들은 명분 선점(先占)과 용어 혼란작전을 주무기로 삼아 남한의 식자층까지도 우롱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자에게 상위개념은 '계급' 또는 '계층'일 뿐, '민족'이 아니다. '민족'은 언제나 하위 개념이다. 북한에는 계층 수(數)만도 무려 51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은 나름대로 특혜가 있는 군대도 못 가고 졸업 후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대학도 못 가며 천한 직업만이 주어진다.
저들이 3백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내고도 태연한 것은 죽은 자들 대부분이 '죽어도 문제되지 않는 계층으로 분류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민족' 분류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북한당국자들은 그런 이유로 그들부터 식량 배급을 끊었다. 결과는 죽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천인공노할 의도적인 살인일 수 있다"(칼·거쉬먼의 평)
수십만 탈북자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지는 이유는 북한 내부의 치부를 세상에 알린 배반자일 뿐, 북한이 선전해온 '지상낙원의 인민(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북한의 장관급보다 더 잘 사는 남한의 4천 기백만 명(극빈자 제외)은 저들에게는 같은 민족일 수가 없다. 그들 방식대로 통일이 된다면 저 세상으로 사라지던가 아니면 노예처럼 살면서 주체사상으로 개조되어야 할 인간들인 것이다.
1950년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남침(南侵)을 했던 그들과 오늘날 '민족공조'를 외치는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들은 남침을 하고도 북침(北侵)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을 침략자로 몰아세웠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같은 인종이 바로 그들이다.
2002년 북한은 공동신년사에서 '민족공조'라는 어휘를 처음 사용하고도 그해 여름 서해에서 우리 해군장병 수명의 목숨을 앗아갔었다. 그것이 그들의 민족공조(共助)방법이다.
북한은 우리 민족(남북)끼리 공조하여 미국을 상대로 핵문제도 해결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살려 외세의 영향을 받는 일없이 '자주적'으로 통일하자고 밀한다. 그것은 남북이 공동으로 미국에 항전(抗戰)하자는 뜻이고, 남북이 한마음으로 주한미군을 축출하여 적화통일하자는 뜻일 뿐이다.
'민족·민주·평화·통일·진보·평등'- 이런 낱말들은 당초의 어의(語義)와는 무관하게 이제는 북한이 남한의 순진한 젊은이들을 얼르고 달래는 주술어(呪術語)로 존재한다. 이런 주술어들이 '민족공조' 또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과 만나면 폭발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다르면 적(敵)이고, 비록 이(異)민족이라 할지라도 이념적 정체성이 같으면 외세(外勢)가 아닌, 동맹(同盟)이고 혈맹(血盟)인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우리의 한미공조를 '반(反)민족적 행위'로 몰아붙인다.
우리는 이제 '민족'보다는 '국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북한을 '민족'이 아닌, '동족(同族)'으로 칭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을 지탱하는 힘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이며, 21세기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함께해야 하는 교과서 역시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글로벌리즘이다.
북한이 최근 비료 50만t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최소 30만t 이상이 보내질 것이다. 북측의 이유 없는 거부로 연기되어오던 연탄 2만t 지원도 북한의 요청에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달 말부터는 개성공단에 남한의 전기가 공급되고 다음달에는 민간차원의 남북간 통신도 연결된다고 한다. 북한식 민족공조와 우리의 민족공조는 왜 이처럼 달라야 하는가.
그들은 저들이 필요할 경우 수시로 '민족공조' 카드를 들고 나오지만,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협박으로 돌아서는 특이종족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서로 지척지간(咫尺之間)이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그들이 우리와 한 민족일 수는 없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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