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밴플리트’ 장군 이름 회의실 명칭으로 사용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유엔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 기억"
6.25전쟁에 참전한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이 한국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회의실 명칭에 사용된다.
|
국가보훈처는 19일 “2023년 정전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6·25전쟁 영웅을 기억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정부 최초로 회의실 명칭을 유엔참전용사의 이름으로 변경키로 하고, 미 8군사령관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전역 후에도 한미양국의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고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후 2시 20분, 정부세종청사(9동) 국가보훈처 5층의 기존 ‘평화실’을 ‘밴플리트 홀(Van Fleet Hall)’로 변경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는 박민식 처장이 밴플리트 장군과 역시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이 함께하는 모습 등이 담긴 액자를 부착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진행된다.
|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11일, 6·25전쟁에 미 8군사령관으로 참전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꺾고 38도선 북쪽으로 전선을 북상시킨 명장이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도착 직후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를 듣고,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와 함께하기 싫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 단번에 현장의 분위기를 바꾼 일화로도 유명하다.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에도 기여한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전역 후에도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를 설립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한미 양국의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2세(James A. Van Fleet Jr.)도 6·25전쟁에 자원해 폭격기(B-26) 조종사(미 공군 대위)로 활약했지만, 1952년 4월 4일 새벽, 북한의 순천지역(해주 부근)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대공포를 맞고 실종됐다.
실종된 그를 찾기 위해 바로 수색이 시작됐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내 자식을 찾는 일로 다른 장병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수색을 중단시켰다. 참모들은 그가 아들이 실종된 지역의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회고했다.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참전을 결심하면서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7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억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보훈의 역할”이라며 “이번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회의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유엔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을 통해 한미동맹과 보훈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6·25전쟁 당시 미국은 유엔참전국 중 가장 많은 연인원 1백78만 9천 명이 참전했으며, 안타깝게도 전사자 3만3천686명, 부상자 9만2천134명이 발생하는 등 많은 희생을 겪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 관련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