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조 교수' 망언 중 한마디는 옳다
최근 한승조(韓昇助)교수가 일본 시사지 '정론(正論)' 4월호에 쓴 글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일고 있다. 그 글의 내용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원적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민족정서를 무시한 왜곡된 사관(史觀)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韓)교수의 글에 한 가닥 납득할만한 주장은 있었다.
"일제치하에서 크든 작든 일본에 협력한 인사들을 모두 친일파로 추궁하여 정치적으로 무능화시키고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은 안 된다. 과거사를 따지더라도 반성하는데 뜻을 두어야지, 특정인을 때려잡고 모함하며 불구를 만드는 여론몰이 식 인민재판은 나라를 망치는 망국의 길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친일을 무조건 반민족행위로 몰아붙이려는 좌파사상에 근거한 잘못된 역사관은 바로 잡혀야 한다.
일부 친일행적이 있더라도 '그것이 자발적이었는지, 아니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뤄진 불가피한 타협이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또 비록 '어쩔 수 없는 친일'이 있었다 해도 해방이후 민족문화 진흥 및 자유민주주의 창달에 더 큰 족적을 남겼다면 그런 인사를 친일(親日)로 치죄해서도 안 된다.
어느 나라보다도 통한의 과거사를 지닌 우리 민족이다. 선진화를 위해 국력과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에서 과거사 규명에 목을 맨다는 것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친일 등 과거사에 대한 단죄 주장이 좌우파 민족주의의 세(勢)싸움 볼모가 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구한말(舊韓末)과 상해 임정(臨政)에서의 정치적 대립에 이어 '해방공간에서의 유혈투쟁' '정부수립 이후로도 계속된 혼란' 끝에 '6·25 한국전쟁' '군사정권의 등장'을 체험해야 했다. 대한민국이 국가로서의 존속을 스스로 다짐할 수 있었던 시기는 정작 3년여의 한국전쟁을 치른 이후였다.
5백여년 조선(朝鮮)왕조 봉건체제에서 일제(日帝)에 병탄(倂呑)되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 국민은 자신이 선택해야 할 이념적 정체성(正體性)에 대해서마저 무지(無知) 속에서 헤매다 6·25를 겪고서야 공산주의의 해악(害惡)과 자유의 소중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 시점이 해방 이후 8년만이고, 정부수립 이후 5년만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 이념적 정체성에 관한 역사적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朝鮮왕조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한말(舊韓末) 현실상황에 대응하는 흐름으로는 세 가지 갈래가 있었다.
'유생(儒生)들 중심의 보수적인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와 '문호개방을 통해 중도개혁을 지향하고자 했던 개화파(開化派)' 그리고 '민란(民亂)적 성격을 띄고있는 동학(東學)혁명파'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서양의 문물제도와 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한국을 서둘러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조속히 근대민족국가를 만들자는 시대적 조류에 떠라 결집된 세력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개화파'이다. 김옥균 서재필 유길준 이승만 등이 바로 이 개화파에 속한다. 이승만이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추대되었던 사실은 상해임정(臨政)이 당초 개화파의 정신적 산실임을 자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어느 파(派)에 속할까. 저들은 대륙문명의 세력권 안에서 생성되었지만, 동학혁명을 자신들의 최초의 정치계보(系譜)로 받아들이고 있다. 달리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원류(源流)를 동학(東學)에서 출발하여 동학의 흐름을 계승한 혁명파로 분류한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이 분할 점령되는 상황에서 '대륙세력을 대표하는 소련'의 영향권에 놓이게 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때부터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이 진주한 남한(대한민국)과는 운명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한반도는 이런 연유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북한의 33배 정도로 우월한 국력을 유지하고 있음은 궁극적으로 우리(남한)의 선택이 옳았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정부수립 당시 해방 전의 탄탄한 공업력으로 남한에 비해 두배 이상의 경제력을 갖고도 1960년대 중반 이후 남한에 역전당하고 말았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해양세력의 편에 서서 미국 일본 서방국가와 가까이 해온 그간의 세월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뿌리를 내린 기간이었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우파로서의 친미(親美) 반북(反北)노선은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 국가이익에 부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근년 들어 이념적 정체성에서 좌파에게 밀리는 어이없는 작태가 연출되고 있다. 그것은 해양세력을 등지고 대륙국가로 복귀할 것을 자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와 풍요를 등지고 예속과 빈곤, 어두움 속으로 찾아 들어가겠다는 자작극과 다를 것이 없다.
반미(反美) 친북(親北) 용공(容共)성을 띈 이른바 민주화세력(左派)에 의한 반(反)체제활동은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정신에 반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훼손·말살하려드는 것이 되며, '더 철저하게 망해보자'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현 정부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인터넷 세대의 감성적 반미주의와 역사 속에 잠재된 반(反)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해 권력 장악에 성공한 정권"으로 평가한 석학(李仁浩· 서울대 명예교수)이 있었다. 과거사 규명을 범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가적 차원이 아닌, 정권적 차원에서 좌판(坐板)을 벌일 일이 아닌데도 이제 곧 그 굿판을 보게될 현실이 더 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konas)
정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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