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북한군은 왜 연평도 포격도발을 선택했을까?
북한군이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인 연평도에 기습적인 포격전을 감행했던 것이 벌써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10년 11월 23일의 황당한 악몽을 쉽게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과 함께 왜 무슨 이유로 연평도에 포격전을 시도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고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지난 연평도 포격전은 정전협정 이후 끊임없이 해왔던 군사도발 및 각종 테러 행위들과는 분명 다른점이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점이 늘 남아있게 된다. 서해5개 도서는 끊임없는 국지도발의 분쟁소지를 품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황해도 내륙의 심장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군사적 및 지리적 특성과 꽃게잡이 등의 어업활동 중심지라는 사실 또한 남·북한 모두에게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상황들의 주요 국면들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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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북한군들의 활동 항목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의도와 저의를 추론할 수 있는 사실들이 나타나는데 그 첫 번째가 북한군 입장에서도 초대형 도발 사건일 수 밖에 없는 포격전을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연평도 포병부대의 연례적인 해상 사격훈련 활동을 중단하라는 통지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는 만약의 사태에 책임소재를 논하게 될 때 서해상에서의 우발적인 군사적 무력충돌이었다는 책임회피를 위해 고도로 계산된 북한 최고지도부의 지시에 의한 결과라고 평가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감행하는 최초의 포격전을 일개 북한군의 장성급 수준에서 결정될 사항이 아니라는 점은 수없이 반복된 국지도발 및 테러 행위들의 결과에서 드러나 있으며, 고위급 탈북민들의 언급 및 외신 보도 등에서도 공통된 내용이었다.
두 번째로는 포격에 참가한 포병들이 전술포병에 국한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연평도에 심대한 피해를 끼칠 의도였다면 장사정포병도 참가했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제시된 바 있다. 따라서 서해 5개 도서 중 포탄 발사지점인 개머리 포진지와 연평도까지의 직선거리(12km)와 122mm방사포 사거리(20km)를 고려해보면 연평도가 최적의 조건을 충족한다는 사실과 함께 2010년 초부터 포진지를 구축하여 수개월 동안 점령 훈련 등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첩보 및 정보 등을 종합해 보면 포병을 전공하였다는 김정은의 군부 통제력과 역할론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기습도발 사건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북한군 포격도발 직후 정전 교전규칙에 따라 공군전력(KF-16, F-15K 등)이 연이어 긴급 출격하였고, K-9 자주포로 3차례에 걸친 대응 사격이 진행됨에 따라 북한군의 추가 포격도발은 중단되었지만 북한 최고 지도부로서는 최초 계획된 성과를 나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었기에 가능했을 거라는 추측과 대한민국 공군 전력까지 투입되고 있는 긴박한 상황들을 고려시 확전을 피하려는 의도 또한 작용 했을거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0년에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이 연이어 벌어지는 배경에는 단순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과 남북간의 긴장감 조성 등의 국지적인 문제보다는 1987년에 있었던 KAL기 폭파 사건 등과 같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후계구도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과 함께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전후로 후계구도를 완성하고 김정은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적 도발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기습도발 형태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절대적인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굳건한 한·미동맹을 한층 더 강화시켜야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의 추진 원칙 중 첫 번째인 ‘일체의 무력도발 불용’에 부합될 수 있으며 남북 간 우발적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전 등의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임재동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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