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국전쟁' 을 보고
평시와 전시는 무엇이 다른가? 평시에는 사람을 한 명만 죽여도 엄한 벌을 받는다. 전시에는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큰 상을 받는다. 평시에는 자식이 부모를 땅에 묻는다. 전시에는 부모가 자식을 땅에 묻는다.
건국전쟁. 왜 건국운동, 건국활동이라 하지 않고 건국전쟁이라 했을까?
1900년대 일제 치하로부터 1960년대 건국 이후까지 이승만의 일거수일투족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했다. 5000만 민족의 생존을 좌우했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반공포로 석방의 결단이 없었다면 한국군 현대화가 지연됐을 것이고, 주한미군이 조기 철수했을 것이며, 미국의 8억 달러 지원도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보다 더 빠르다는 여성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이토록 빨리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또한 토지개혁이 6·25전쟁 이전에 단행되지 않았다면 박헌영의 장담대로 100만 노동자가 인민군을 환영하고 나섰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북한이나 미얀마 수준의 국가로 헤매고 있을 게 분명하다.
외교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이승만의 통찰력은 가히 천재 수준이었다. 이승만은 40년 후 미국과 일본이 싸울 것을 예견했다. 불과 2000~3000명의 독립군으로 당시 700만 명에 가까운 일본군을 무력으로 이길 수 없는 현실. 그래서 이승만은 장차 미국의 힘을 빌려 조국의 해방을 끌어내겠다는 혜안을 펼쳐 나간다.
부산까지 밀려간 상황에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는 일본 망명을 제안한다. 이승만은 권총을 꺼내 들고 외친다. “북한군과 맞닥뜨리면 이 권총으로 북한군을 쏘고, 내 아내를 쏘고, 나를 쏠 것이요.” 그래서 이승만의 건국은 운동이 아니고, 활동이 아니고, 전쟁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승만에 대해 잘못 가르쳤고, 그래서 잘못 알아 왔다. 최소한 그의 큰 바위 같은 공적은 과소평가했고, 개미 같은 실수는 과대평가해 온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재미없을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여기저기서 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관중, 영화가 끝나자 일어서 손뼉을 치는 관중. 그래서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이런 국민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창창할 것도 분명하다.
건국전쟁이 이승만의 몫이었다면 건국된 나라를 지키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키고 있는 50만 국군 장병! 아직도 군복과 군화를 필수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예비전력, 1100만 향군 회원! 그대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영원하다. (konas)
이정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홍보실장 예비역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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