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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 페이지, 역사의 한 페이지로 | |
6.25전쟁 때 북한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참전한 미군이 군수품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군용 비행장으로 건설해 지금까지 사용해 온 강원도 춘천의 미군부대 캠프 페이지가 반세기만에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되었다.
29일 오후 캠프 페이지에서 열린 폐쇄식에는 챈들러 C 쉐럴 캠프 페이지 1-2항공대장과 류종수 춘천시장, 미군 300여명 등이 참석했다.
챈들러 C 쉐럴 캠프페이지 1-2항공대장은 폐쇄식에서 "캠프 페이지는 1951년 소총을 맨 공병단 병사들이 잿더미에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들어섰다"면서 "훌륭한 기지를 공식적으로 문 닫고 한.미 양국기가 더 이상 휘날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류 시장도 송별사에서 "캠프 페이지 장병들은 먼 타국에서 우방의 안보를 위해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소중한 친구였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면서 "춘천에서 머물렀던 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 남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하강식에 이어 양국기를 미2사단 박물관과 춘천시에 각각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기지 폐쇄식은 미군 아파치 헬기 3개 중대가 고별비행하는 것으로 1시간만에 끝났다.
맑은 물이 흐르던 소양강 강변에 미군기지가 들어서게 된 것은 현대사의 비극인 6.25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고 밀리던 전쟁이 한반도 허리에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미군은 1951년께 소양강변에 군수품을 공급할 수 있는 군용 비행장 활주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어 1953년 정전협정으로 포성은 멈췄지만 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1958년 캠프 페이지라는 명칭으로 부대를 만들어 병력을 주둔시키기 시작했다.
캠프 페이지라는 명칭은 6.25전쟁 당시 함경도 전투에서 공을 세운 미군 페이지 중령의 이름을 따서 붙힌 것이다.
의암호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호반의 캠프 페이지는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는 미군의 최전방 보루로서 한반도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캠프 페이지는 지난 1983년 5월 5일 오후 어린이날 중공 민항기가 불시착하여 당시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던 한국과 중국의 관리들이 송환협상을 벌이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장소로 부각되기도 했었다.
또 캠프 페이지는 별다른 경제기반이 없는 춘천에서 이 기지를 중심으로 군수용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형성하게 하는 등 지역경제에도 한 몫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한.미행정 협정(SOFA)의 불평등성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빈번히 제기되면서부터 캠프 페이지를 이전하자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에는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춘천시민모임'을 발족되고 한.미당국은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2011년까지 캠프 페이지를 이전하기로 했다가 급기야 이전 시기를 올해로 앞당기게 됐다.
캠프 페이지 이전이 앞당겨 진 것은 이 기지가 팽창하는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도시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받아왔고, 헬기 이.착륙으로 인한 소음공해와 농작물 피해, 고도제한으로 인한 건축규제 등의 문제가 잇따라 제기된 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캠프 페이지는 기지 폐쇄를 앞두고 이미 헬기와 병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본토로 배치하는 작업을 완료해 사실상 텅 빈 상태에 있다.
29일 반세기 동안 춘천 하늘에 펄럭이던 성조기를 내리는 조촐한 기지 폐쇄식으로 '춘천 캠프 페이지'는 운명을 마감했다. 기지 폐쇄 이후에는 최소한의 관리인원만 남겨지며 오는 11월 국방부로 관리권이 다시 넘어간다.
현재 춘천시와 시민들은 캠프 페이지를 시민들의 품으로(무상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미군 병력과 시설이 이전되는 국내 다른지역의 시설확충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춘천시민들의 요구대로 무상으로 넘겨주는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태이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