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서 진실을 캔다" 월간조선 창간 25주년 大 강연회
장충체육관 메운 2,000여 청중 박수 함성 이어져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5-04-04 오전 9:46:39
月刊朝鮮 창간 25주년을 기념하는 현대사 大 강연회가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권력에 맞서 캐낸 진실로써 권력을 업은 『과거사 캐기』에 답한다"는 부제(副題)답게 이 날 강연회는 지난 25년동안 월간조선이 특종으로 보도한 한국 현대사의 주요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사건을 특종 취재 보도한 기자들이 연사로 직접 나섰다.
연사로 나선 취재기자들은 보도 경위에서부터 최근 언론이나 방송, 개인관련 입장을 통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진실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날 강연회는 오후 2시 월간조선이 특종으로 보도했던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장준하는 타살되지 않았다" "12·12사건은 녹음되었다" 등 주요내용을 수록한 VTR을 멀티비젼 화면을 통해 시청한 뒤 조갑제(趙甲濟) 前 월간조선 대표의 사회로 2천여명의 청중이 참석한 가운데 4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강연장에는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한 법안 통과로 굴곡진 한국현대사에 대한 미묘한 반향과 월간조선의 주 독자층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참석한 대부분은 우리사회의 원로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이 날이 일요일 이어서인지 교외를 찾거나 등산을 갔다가 서둘러 시간에 맞춰오는 사람 등 배낭족과 야유회를 다녀오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며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관련사안에 대한 증언을 위한 관계자들도 자리했다.
조갑제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월간조선은 지난 25년 동안 그렇게 하려고 해서한 것도 아닌데 취재과정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면서 더욱 이 나라를 긍정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하고 "더욱 오늘은 지난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5·3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킨 날"이라면서 "최근 정부는 4·3사건을 왜곡하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예비역 소장 한광덕 장군이 비장한 각오로 '죽창에 찔릴 각오로 쓴 4·3 사실 보고서'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진압군 연대장 박진경씨도 게릴라들에 의해서 살해되었으며 게릴라들에 의해 선량한 양민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따라서 이 나라 대한민국은 이승만·박정희만의 나라도 아닌 희생된 양민과 진압군의 국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국가"라고 강조하고 "우리는 현대사 면면을 특종 취재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더 갖게 되었다며 이 날 대 강연회의 의미를 부연했다.
강연회는 이어 김광동(金光東) 나라정책원 원장의 "대한민국은 죄인이 아니다". 정진석(鄭晉錫)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월간조선의 역사적 역할"의 강연을 들은 뒤 조갑제 전 대표이사의 "역사를 기록하며 역사를 만들어간 月刊朝鮮 25년의 특종 이야기" 순으로 특종을 발표했던 해당 기자들의 발언과 병행하여 진행해 나갔다.
다음은 이날 강연 및 특종기자들이 발표한 주요부분을 요약한 내용임
"대한민국은 죄인이 아니다"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은 지난 시대 어두운 역사를 헤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세계사에 교훈을 일깨우게 한 역사의 주역이다. 여러분들이 그 시대에 역사를 만들고 이끌어 갔다면 나는 그것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역할을해 나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100년 전인 1905년 을사조약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는 어떤 가치가 지배되어왔는가? 그것은 일본 군국주의를 비롯한 소련·중국·북한의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대항하는자유의 투쟁이었다.
그것은 곧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켜온 자유민주 자유가치와 자유시장의 가치였다.
그런데 지금 소위 새로운 주도세력이 내세우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들은 오늘의 역사를 자주의 역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것이다. 즉 자주를 표방하는 세력의 가치와 자유의 가치가 사투를 벌이고있는 것이다.
이들 거짓된 자주가치를 내세우는 세력들은 자유의 가치를 지켜온 역사의 주역들을 냉전 수구세력으로 매도하며 이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분단의 역사로 나갈 수 밖에 없었으며, 남과북이 화해하지 못하고 통일의 걸림돌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투쟁하는 것만이 거짓된 자주국가를 완성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방3각관계를 말하고 민족간의 공조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피력한다. 이들의 주장은 어떤 전체주의, 공산주의세력이나 김정일 세력과도 연대하겠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금 우리는 거짓된 자주로 갈 것이냐 하는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1945년 해방이전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 전체세력과 싸워왔다. 동아시아 공영권을 주창하는 일본의 유혹에서 떨쳐 일어났다. 해방이후 우리는 북한은 하지 못한 자유민주주의의 과업을 완수해왔다. 그런데도 해방정국 첫날부터 자유민주국가 수립을 하지 못했다고 하면 안 된다.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이후 자유민주가치를 창출하고 지금까지 어려움을 뚫고 여기에 왔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100만명이 희생되는 전쟁을 치뤘다. 한국전쟁은 인류역사이래 세 번째에 해당되는 가혹한 전쟁이었으며, 일곱 번째로 큰 희생을 치룬 전쟁이었다. 이것은 공산전체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투쟁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일본·러시아·중국의 변화에도 우리민족은 여전히 이들과 맞서있다. 과거 일본이 동아시아 공영권을 내세워왔듯이 지금 전체주의 세력들은 자주와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자주민족국가를 만들자고 유혹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규정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주가 아닌 오욕의 역사, 실패한 역사 후퇴한 역사라고 규정한다. 기회주의세력이 득세한 나라로 보수진영을 벌레로오도한다.
북한 주민전체가 유리 걸식에 개밥을 먹으면서도 개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북한땅에 김일성 동상이 2,200개가 있음에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나 동상하나 없이 구천을 떠돌게 하며 여기까지 이어져왔다. 이것이 바로 한국 현대사가 단적으로 지적되는 현상이다.
전 유라시아가 공산화가 되는 블랙홀(Black Hall) 임에도 우리는 자유 민족국가를 만들었다. 위대한 지도자와 국민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기적이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을 때 1945년부터 65년사이 20년동안 우리를 중심으로 3,000km 이내에는 단 하나의 우호세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번영된 국가의 기초를 닦았으며, 공산 블랙홀을 극복했다. 그 저력, 대한민국의 조국근대화를 이룬 세력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선배세대와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230개국가중 10대 국가에 들고 있다. 5천년 역사에 이러한 일이 없었다. 70년대 이후 36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1위를 했다. 또한 고도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민주세력이 만든게 아니라 산업화 세력이 만들었다.
민주화가 되고 산업화가 된 나라는 없다. 이를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 77명의 목숨이 희생됐고 독일의 막장에서, 베트남에서, 중동에서 피와 땀을 쏟았다. 이 모든 것이 쌓여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삽질하지 않고 벽돌하나 들지않은 사람이 대한민국은 실패한 나라, 오욕의 나라라고 폄훼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역사이다. 청산해야할 역사라면, 일본이 청산되어야하고 북한이 되어야 한다. 소련과 러시아가 청산되고, 모택동과 중국이 청산되어야한다. 지금 전 세계의 가장 빛나는 금자탑은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소홀한 것도 있다. 그것은 SOC, 사회간접자본을 깔아놓지 않은 것이다.
사상의 가치, 역사의 가치, 교육의 가치 등에 소홀한 것이다. 이제 똑 같은 정력으로 사상과 역사, 교육의 가치 등을 깔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월간조선이 힘써왔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신화가 깨지지 않고 세계사적으로 우뚝 서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과업이다.
장준하 추락사의 진실 (김인광. 월간조선 편집장)
93년 3월 SBS 방송의 "그것이 알고싶다"프로에서 2회에 걸쳐 장준하 선생 추락사에 관한 방송을 했다. 이를 보면서 방송에 대한 균형의 중요성과 편파성을 재인식 하게 되었다.
방송은 균형감각을 갖고 언론 본연의 자세로 나가야 한다.
SBS는 "실족사가 아니고 타살"이라고 방송했으나, 결론은 분명한 추락으로 인한 사망이다. 그런데도 방송은 "장준하 선생은 등산을 가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갔다". "등산로는 가파르고 힘든 길이어서 일반 등산객은 가지 않은 길이다". "그 지역에 의문의 군인들이 야영을 하고있었으며 커피를 같이 마셨다" "몸에 난 흔적은 타살로 추정된다" 등의 내용으로 타살로 몰고 가려는 의도된 방송을 내 보냈다.
증언도 그렇다. SBS는 꼭 필요한 부분의 위치에 있는 증인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부의 인물을 중심으로 증언케 했다. 당시 수사담당검사, 부검의, 관할 형사등의 증언으로도 확인된 사항이며, 유일한 최후의 목격자 전직 교감 선생인 김용완 선생의 명백한 증언을 무시했다.
비록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로 사망했다해도 민주화에 끼친 공로는 변치 않는다. 그럼에도 추락사로 구태여 몰고 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SBS는 월간조선이 오보라고 보도한데 대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의 반론도 없다. 과거의 역사는 악이고 나의 역사는 선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12·12 사건 녹음테이프 입수.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 일가 탈출사건
(우종창. 월간조선 인터넷 통신팀장)
12·12에 대해서는 웬만한 내용은 다 알고있었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녹취한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테이프는 당시 군인으로 있다 예편한 분이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측면에서 제공한 자료이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많은 진실이 드러났다.
어떤 것이든 진실이 통해야 한다. 9사단은 당시 출동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도 참모장은 군사령관에게 병력 출동은 하지 않는다고 허위보고를 했다. 당시 나는 수경사 예하 공병부대의 고참 상병이었다. 우리 대대장도 우왕좌왕 했다. 우리도 무장공비 40명이 출현했다는 상황에 따라 출동해서 밤새 참호에서 떨었다. 잘못된 사실에 대해서는 진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성혜림 사건은 96년 가을 월간조선 사무실에서 당시 북한에서 넘어온 성혜랑씨 아들 이한영씨가 그 엄마와 통화한 내용을 녹음하면서 이루어졌다. 최초 김정일 전처 성혜림이 모스크바에 살고있다는 내용을 고인인 전 성균관대 이병형 교수로부터 들었다.
이한영씨가 모스크바와 통화 후 전화번호가 담긴 종이에 코를 풀고 휴지통에 버린 것을 찾아내 전화번호를 알고 후일 성혜랑씨의 목소리를 알기 위해 통화를 하면서 성혜림씨가 서방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의사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관련 테이프를 우리는 안기부에 넘겨주었다.
우리정부는 성혜림씨가 모스크바에서 스위스에 있는 김정일 별장으로 가 있는 것까지 확인하면서 안기부 관련 과장이 계속 전화를 했으나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어 성혜림씨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돌아가게 된 것이다.
황장엽 탈출. 이재근 납북어부 구출기 (김용삼. 계간 '월드빌리지' 편집장)
97년 2월 12일 오전 11시경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으로 망명. 월간조선은 황비서의 망명 6개원 전 이미 망명하고자 하는 사실을 인지 함. 심정을 담은 저작물, 증거물등을 입수해 가지고 있었다.
황선생이 망명하게 된 계기는 김정일 독재하에 신음하는 북한주민을 해방하고 독재정권을 타도하며 민주정권을 수립하여 남한과 평화적 통일을 위한 학자로서의 속 깊은 고민의 발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황 선생의 뜻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북한을 도와주는 꼴이다. 그분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 황선생이 한국으로 오기위해 북한 민주화촉진연맹 이연길 씨와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또 2000년 4월 중순 남북정상회담을 2개월 앞둔 어느 날 북한에 납북되어 30년 동안을 억류돼 왔던 이재근씨가 북한을 탈출하여 베이징 영사관에 들어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바로 중국으로 가서 이재근씨를 만나 10일동안 보호하며 결국은 한국으로 모시고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영사관 당국의 "당신이 대한민국에 30년 동안 세금한번 냈느냐? 한국으로 가려면 밀항을 하든가 당신이 알아서 해라" 등의 무책한 발언과 남북정상회담이 내일모렌데 어떻게 우리가 보낼 수 있겠는가 등의 말 한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강연회는 이외에도 '대북5억달러 비밀 송금사건' '현대상선 200억 비자금 조성' '김희선 의원 독립군 가계 의혹 추적'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왜곡 폭로'등에 대한 당시의 취재내용이 공개되었다.
한편 이 날 강연회에는 납북어부로 북한을 탈출한 이재근씨를 비롯, 현대상선 비자금 파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룡 대표 등이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Konas)
|
연사로 나선 취재기자들은 보도 경위에서부터 최근 언론이나 방송, 개인관련 입장을 통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진실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는 주장을 펼쳤다.
|
강연장에는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한 법안 통과로 굴곡진 한국현대사에 대한 미묘한 반향과 월간조선의 주 독자층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참석한 대부분은 우리사회의 원로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이 날이 일요일 이어서인지 교외를 찾거나 등산을 갔다가 서둘러 시간에 맞춰오는 사람 등 배낭족과 야유회를 다녀오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며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관련사안에 대한 증언을 위한 관계자들도 자리했다.
조갑제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월간조선은 지난 25년 동안 그렇게 하려고 해서한 것도 아닌데 취재과정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면서 더욱 이 나라를 긍정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하고 "더욱 오늘은 지난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5·3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킨 날"이라면서 "최근 정부는 4·3사건을 왜곡하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예비역 소장 한광덕 장군이 비장한 각오로 '죽창에 찔릴 각오로 쓴 4·3 사실 보고서'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진압군 연대장 박진경씨도 게릴라들에 의해서 살해되었으며 게릴라들에 의해 선량한 양민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따라서 이 나라 대한민국은 이승만·박정희만의 나라도 아닌 희생된 양민과 진압군의 국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국가"라고 강조하고 "우리는 현대사 면면을 특종 취재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더 갖게 되었다며 이 날 대 강연회의 의미를 부연했다.
강연회는 이어 김광동(金光東) 나라정책원 원장의 "대한민국은 죄인이 아니다". 정진석(鄭晉錫)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월간조선의 역사적 역할"의 강연을 들은 뒤 조갑제 전 대표이사의 "역사를 기록하며 역사를 만들어간 月刊朝鮮 25년의 특종 이야기" 순으로 특종을 발표했던 해당 기자들의 발언과 병행하여 진행해 나갔다.
다음은 이날 강연 및 특종기자들이 발표한 주요부분을 요약한 내용임
"대한민국은 죄인이 아니다"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
|
100년 전인 1905년 을사조약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는 어떤 가치가 지배되어왔는가? 그것은 일본 군국주의를 비롯한 소련·중국·북한의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대항하는자유의 투쟁이었다.
그것은 곧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켜온 자유민주 자유가치와 자유시장의 가치였다.
그런데 지금 소위 새로운 주도세력이 내세우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들은 오늘의 역사를 자주의 역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것이다. 즉 자주를 표방하는 세력의 가치와 자유의 가치가 사투를 벌이고있는 것이다.
이들 거짓된 자주가치를 내세우는 세력들은 자유의 가치를 지켜온 역사의 주역들을 냉전 수구세력으로 매도하며 이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분단의 역사로 나갈 수 밖에 없었으며, 남과북이 화해하지 못하고 통일의 걸림돌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투쟁하는 것만이 거짓된 자주국가를 완성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방3각관계를 말하고 민족간의 공조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피력한다. 이들의 주장은 어떤 전체주의, 공산주의세력이나 김정일 세력과도 연대하겠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금 우리는 거짓된 자주로 갈 것이냐 하는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1945년 해방이전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 전체세력과 싸워왔다. 동아시아 공영권을 주창하는 일본의 유혹에서 떨쳐 일어났다. 해방이후 우리는 북한은 하지 못한 자유민주주의의 과업을 완수해왔다. 그런데도 해방정국 첫날부터 자유민주국가 수립을 하지 못했다고 하면 안 된다.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이후 자유민주가치를 창출하고 지금까지 어려움을 뚫고 여기에 왔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100만명이 희생되는 전쟁을 치뤘다. 한국전쟁은 인류역사이래 세 번째에 해당되는 가혹한 전쟁이었으며, 일곱 번째로 큰 희생을 치룬 전쟁이었다. 이것은 공산전체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투쟁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일본·러시아·중국의 변화에도 우리민족은 여전히 이들과 맞서있다. 과거 일본이 동아시아 공영권을 내세워왔듯이 지금 전체주의 세력들은 자주와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자주민족국가를 만들자고 유혹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규정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주가 아닌 오욕의 역사, 실패한 역사 후퇴한 역사라고 규정한다. 기회주의세력이 득세한 나라로 보수진영을 벌레로오도한다.
북한 주민전체가 유리 걸식에 개밥을 먹으면서도 개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북한땅에 김일성 동상이 2,200개가 있음에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나 동상하나 없이 구천을 떠돌게 하며 여기까지 이어져왔다. 이것이 바로 한국 현대사가 단적으로 지적되는 현상이다.
전 유라시아가 공산화가 되는 블랙홀(Black Hall) 임에도 우리는 자유 민족국가를 만들었다. 위대한 지도자와 국민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기적이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을 때 1945년부터 65년사이 20년동안 우리를 중심으로 3,000km 이내에는 단 하나의 우호세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번영된 국가의 기초를 닦았으며, 공산 블랙홀을 극복했다. 그 저력, 대한민국의 조국근대화를 이룬 세력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선배세대와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230개국가중 10대 국가에 들고 있다. 5천년 역사에 이러한 일이 없었다. 70년대 이후 36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1위를 했다. 또한 고도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민주세력이 만든게 아니라 산업화 세력이 만들었다.
민주화가 되고 산업화가 된 나라는 없다. 이를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 77명의 목숨이 희생됐고 독일의 막장에서, 베트남에서, 중동에서 피와 땀을 쏟았다. 이 모든 것이 쌓여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삽질하지 않고 벽돌하나 들지않은 사람이 대한민국은 실패한 나라, 오욕의 나라라고 폄훼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역사이다. 청산해야할 역사라면, 일본이 청산되어야하고 북한이 되어야 한다. 소련과 러시아가 청산되고, 모택동과 중국이 청산되어야한다. 지금 전 세계의 가장 빛나는 금자탑은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소홀한 것도 있다. 그것은 SOC, 사회간접자본을 깔아놓지 않은 것이다.
사상의 가치, 역사의 가치, 교육의 가치 등에 소홀한 것이다. 이제 똑 같은 정력으로 사상과 역사, 교육의 가치 등을 깔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월간조선이 힘써왔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신화가 깨지지 않고 세계사적으로 우뚝 서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과업이다.
장준하 추락사의 진실 (김인광. 월간조선 편집장)
93년 3월 SBS 방송의 "그것이 알고싶다"프로에서 2회에 걸쳐 장준하 선생 추락사에 관한 방송을 했다. 이를 보면서 방송에 대한 균형의 중요성과 편파성을 재인식 하게 되었다.
방송은 균형감각을 갖고 언론 본연의 자세로 나가야 한다.
SBS는 "실족사가 아니고 타살"이라고 방송했으나, 결론은 분명한 추락으로 인한 사망이다. 그런데도 방송은 "장준하 선생은 등산을 가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갔다". "등산로는 가파르고 힘든 길이어서 일반 등산객은 가지 않은 길이다". "그 지역에 의문의 군인들이 야영을 하고있었으며 커피를 같이 마셨다" "몸에 난 흔적은 타살로 추정된다" 등의 내용으로 타살로 몰고 가려는 의도된 방송을 내 보냈다.
증언도 그렇다. SBS는 꼭 필요한 부분의 위치에 있는 증인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부의 인물을 중심으로 증언케 했다. 당시 수사담당검사, 부검의, 관할 형사등의 증언으로도 확인된 사항이며, 유일한 최후의 목격자 전직 교감 선생인 김용완 선생의 명백한 증언을 무시했다.
비록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로 사망했다해도 민주화에 끼친 공로는 변치 않는다. 그럼에도 추락사로 구태여 몰고 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SBS는 월간조선이 오보라고 보도한데 대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의 반론도 없다. 과거의 역사는 악이고 나의 역사는 선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12·12 사건 녹음테이프 입수.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 일가 탈출사건
(우종창. 월간조선 인터넷 통신팀장)
12·12에 대해서는 웬만한 내용은 다 알고있었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녹취한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테이프는 당시 군인으로 있다 예편한 분이 역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측면에서 제공한 자료이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많은 진실이 드러났다.
어떤 것이든 진실이 통해야 한다. 9사단은 당시 출동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도 참모장은 군사령관에게 병력 출동은 하지 않는다고 허위보고를 했다. 당시 나는 수경사 예하 공병부대의 고참 상병이었다. 우리 대대장도 우왕좌왕 했다. 우리도 무장공비 40명이 출현했다는 상황에 따라 출동해서 밤새 참호에서 떨었다. 잘못된 사실에 대해서는 진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성혜림 사건은 96년 가을 월간조선 사무실에서 당시 북한에서 넘어온 성혜랑씨 아들 이한영씨가 그 엄마와 통화한 내용을 녹음하면서 이루어졌다. 최초 김정일 전처 성혜림이 모스크바에 살고있다는 내용을 고인인 전 성균관대 이병형 교수로부터 들었다.
이한영씨가 모스크바와 통화 후 전화번호가 담긴 종이에 코를 풀고 휴지통에 버린 것을 찾아내 전화번호를 알고 후일 성혜랑씨의 목소리를 알기 위해 통화를 하면서 성혜림씨가 서방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의사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관련 테이프를 우리는 안기부에 넘겨주었다.
우리정부는 성혜림씨가 모스크바에서 스위스에 있는 김정일 별장으로 가 있는 것까지 확인하면서 안기부 관련 과장이 계속 전화를 했으나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어 성혜림씨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돌아가게 된 것이다.
황장엽 탈출. 이재근 납북어부 구출기 (김용삼. 계간 '월드빌리지' 편집장)
|
황선생이 망명하게 된 계기는 김정일 독재하에 신음하는 북한주민을 해방하고 독재정권을 타도하며 민주정권을 수립하여 남한과 평화적 통일을 위한 학자로서의 속 깊은 고민의 발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황 선생의 뜻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북한을 도와주는 꼴이다. 그분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 황선생이 한국으로 오기위해 북한 민주화촉진연맹 이연길 씨와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또 2000년 4월 중순 남북정상회담을 2개월 앞둔 어느 날 북한에 납북되어 30년 동안을 억류돼 왔던 이재근씨가 북한을 탈출하여 베이징 영사관에 들어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바로 중국으로 가서 이재근씨를 만나 10일동안 보호하며 결국은 한국으로 모시고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영사관 당국의 "당신이 대한민국에 30년 동안 세금한번 냈느냐? 한국으로 가려면 밀항을 하든가 당신이 알아서 해라" 등의 무책한 발언과 남북정상회담이 내일모렌데 어떻게 우리가 보낼 수 있겠는가 등의 말 한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강연회는 이외에도 '대북5억달러 비밀 송금사건' '현대상선 200억 비자금 조성' '김희선 의원 독립군 가계 의혹 추적'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왜곡 폭로'등에 대한 당시의 취재내용이 공개되었다.
한편 이 날 강연회에는 납북어부로 북한을 탈출한 이재근씨를 비롯, 현대상선 비자금 파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룡 대표 등이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Konas)
- 관련기사보기
-
소셜댓글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이젠 '보수'란 단어는 지우고 '애국우익'으로 이나라를 살맛나는 나라로 만드는데 동참합시다. 절대 하늘이 두쪽이 나도 보수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 올리면 안된다. 왜 애국세력들이 좌파들의 용어공작에 넘어가야하는가? 우익(애국우익세력)들도 우선은 용어 선점에 가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2005-04-04 오후 3:5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