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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보도] 眞相을 은폐한 濟州4·3事件眞相調査報告書(8)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들②

Written by. 나종삼   입력 : 2005-05-16 오전 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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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안의 엉터리 심사

 기획단에서 일부 수정을 거친 진상조사보고서는 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3월 22일(토)에 개최된 위원회 회의에서 군·경측 위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쳣는데, 이는 보고서가 공정하게 작성되지 않고 일방적이고 편파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군·경측 반발이 심하자 제주도측 위원들은 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위원장이 1주일간의 유예기간을 갖자고 함으로서 1주일간 연기되었다. 이리하여 1주일동안 소위원회가 가동되었는데, 첫날인 3월 24일(월)에는 필자에게도 배석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총리가 주재한 회의가 시작되자 맨 먼저 필자에게 의견을 개진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필자는 “지금 작성된 보고서는 은폐보고서이고 반쪽보고서다”라고 전제한 뒤 채용시의 계약조건부터 집필방향에 대한 토의 미실시와 팀장의 집필성향 등 세밀하게 설명하였다. 뒤이어 김점곤 위원이 자신의 과거 군경력과 당시의 수집된 정보등을 말하면서 보고서 내용은 전국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사건이 제주도내에서의 문제로 일어난 것처럼 기술되었다고 비판한 뒤 이런 분위기에서는 심사소위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어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사퇴의사를 피력하였다. 뒤이어 국방장관도 보고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한 듯 총리께서는 국방부측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서 그 뒤 국방차관이 두차례나 4·3위원회 사무실에 들러 보고서의 일부를 수정하였는데, 수정내용은 잘못된 표현 등 지엽적인 사항뿐이었다. 이는 팀장이 주요내용의 수정을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엽적인 수정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3월 29일(토)의 본회의에서 군·경측 위원들이 보고서 채택을 거세게 반대하자 “6개월 이내에 새로운 자료나 증언이 발견되면 이를 심의하여 채택한다”는 단서를 붙여 보고서 확정은 일단 보류되었다.

 필자는 6개월간의 보고서 수정기간에 보고서를 세밀히 검토하여 추가로 포함시켜야 할 부분과 잘 못 기술된 부분을 체크하여 본문만 A4 용지 134쪽에 달하는 107건의 수정안을 마련하여 「자유시민연대」의 이름으로 제출하였다. 접수마감일인 9월 28일까지 20개 단체 및 개인으로부터 376건의 수정안이 접수되었다.

 수정안 심사계획이 9월 중순에 총리 결재를 받아 9월 26일, 10월 1일, 10월 4일, 10월 7일 등 4일간으로 결정되었고, 위원회 본 회의는 10월 15일로 결정되었으며, 심사소위원으로는 당연직 위원인 국무총리, 국방장관, 법무장관, 법제처장 등 4명과 위촉직 위원으로는 신용하, 김삼웅, 서중석, 유재갑(김점곤 위원 후임), 박원순 등 5명이 임명되었다. 여기서 박원순은 기획단장이란 이유로 인선되었고, 서중석은 3월 24일의 심사소위원이 아닌 추가임명케이스였다. 5명의 위촉직 위원은 1명만이 군측 인물이고, 4명이 유족측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이는 균형감각이 결여된 매우 불공정한 인선이었는데, 이는 행정을 장악한 유족회측이 자신들의 의견만이 반영된 보고서의 수정을 저지하기 위한 책략때문이었다.

 수정안 접수마감(9월 28일) 이전에 첫 심사소위원회를 소집(9월 26일)한다는 심사일정계획은 대통령이 10월 30일 부터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심포지움에 참석할 예정이므로 그 전에 심사를 완료하여야 한다는 정치적 일정 때문이었다.

 수정안 심사일정은 9월 26일에는 상견례 겸 총리의 당부 정도로 끝내고, 실질적 심사는 5명의 위촉직위원들이 10월 1일과 10월 4일 등 2일만에 끝내며, 10월 7일에는 총리 주재하에 소위위원 9명이 종합토의를 한다는 것으로 좀 이상한 수정안 심사일정이었다.

 수정안 심사 첫날인 9월 26일은 총리주재로 상견례를 겸하여 이루어졌고, 둘째날인 10월 1일은 신용하 위원의 주관하에 민간인 5명이 심사를 하였다. 심사위원들에게 수정안을 집대성한 자료집과 함께 ‘수정안 심사자료’가 배부되었는데, 심사자료란 수정요구의 요점을 기록하고 집필자의 검토의견을 제시해 놓은 것이었다.

 집필자는 대부분의 수정요구를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부결의견을 붙였고, 겨우 22건만 수용하겠다는 검토의견을 붙였다. 사회를 보는 신용하 위원이 가벼운 사항만을 심사하자고 하면서 집필자가 타당하다고 인정한 22건의 내용을 확인하고 수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날 유일하게 필자가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이유는 필자가 제기한 안건 1개를 통과시킨다고 하면서 한 문장에 2개의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예 삭제하겠다고 하므로 해소되었으나 다른 하나는 아예 거론도 하지 않고 부결처리하였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제2연대의 철수일자를 1949년 7월 7일로 오기한 내용으로서 이를 방치한다면 “제1독립대대가 이미 철수한 2연대로부터 임무를 인수한 것은 8월 13일이다”라고 기술하여 군을 엉터리 집단으로 모독한 내용을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집필자가 자신의 글이 맞다고 주장했으나 신용하 위원이 자료를 확인하고 정정을 결정하였다. 그 뒤 본인은 3건의 자료를 집필자 코 앞에 들이대자 집필자는 그 때서야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였다. 집필자가 몇차례나 본인 지적을 외면하고, 자신이 제시한 자료에도 제2연대의 제주도 철수일자는 1949년 8월 13일인데도 끝까지 7월 7일로 고집하므로서 ‘군은 엉터리로 임무를 인수인계하는 집단’으로 모독하려 했는지 지금도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집필자(김종민)는 자료를 총괄한 민완기자출신으로 본인이 제시한 3건의 자료를 보지 못했을 리가 없으므로 제2연대의 철수일자를 끝까지 7월 7일로 고집한 것을 필자는 ‘고의성’으로 보았다.

 수정안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날인 10월 4일(토) 오후 4시, 개회하자마자 사회를 보던 신용하 위원이 “배석한 전문위원은 자기의 집필부분만 발언하라”고 지시하므로서 전문위원들의 발언을 봉쇄하려고 하였는데, 이는 보고서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필자의 발언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심사는 유재갑 위원의 제안에 따라 국방부안을 먼저 심사하게 되었는데 50여건의 수정요구에 대한 심사를 모두 끝내고 보니 오후 7시가 넘었다. 그런데 사회자가 심사를 끝내려 하자 필자가 급히 ‘새로운 증언이 있다’고 하면서 발언권을 얻어 다랑쉬굴 문제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허사가 되었다. 셋째날의 심사결과는 다랑쉬굴을 포함하여 11건을 수정하기로 결정되었다.

 수정안 376건중 10월 1일에 22건을 채택하였고, 10월 4일에 남은 350여건 중 국방부안 50여건을 심사하여 9건과 기타 2건 등 11건을 채택하고는 모든 심사가 끝났다. 따라서 남어지 수정안 300여건은 심사장에서 위원들이 수정안 내용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참으로 국가위원회의 심사치고는 엉터리 심사였다. 이런 심사를 누가 공정하고 정당한 심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넷째날인 10월 7일의 심사는 총리 주관하에 당연직 심사소위원까지 합석하여 진행되었는데, 여기서는 전체적인 토의가 있었다고 하며, 참석한 국방차관은 많은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필자가 알아본 결과 국방차관은 “할 말은 다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계속)

 나종삼(前 4.·3위원회 전문위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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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로 특정한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결론에 맞는 역사적 사실만 찾아내 꿰맞춘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역사적 진실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 일쑤다. 공산주의 사관, 민중사관에 의한 역사 해석이 바로 제주 4.3사건의 재조명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

    2005-05-16 오후 5: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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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민    수정

    좌파정권의 거대한 권력의 힘 앞에 보수인사 몇명이 위원으로 참가한들 그들이 무슨 힘을 발휘하겠소? 권력이 의도하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위원들을 비난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요! 이제는 보고서 반대 투쟁을 전개하는 길 밖에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

    2005-05-16 오후 12: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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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랑이    수정

    심사위원 선정이 불공정하게 이뤄졌다해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필자나 한광덕, 유재갑, 김점곤 등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군경측의 의견이 하나도 반영된게 없다면 당신들은 도대체 구경만 했다는 것인데...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냐구?</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5-16 오전 9: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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