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병 좋은 선례 남겨 가슴 뿌듯”
Written by. 상록수부대 8진 단장 김 사 진 중령
입력 : 2003-10-21 오전 10:28:01
구호품보다 마음으로 주민 인심 얻어
어딜가나 ‘우리는 친구’ 먼저 인사건네
"한국군 가운데 가장 먼저 동티모르에 발을 디뎠고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4월 특전사 요원을 주축으로 한 국군 장병 250명을 이끌고 동티모르 오쿠시 지역에 파병된 상록수 부대 8진 단장 김사진(44·3사19기·사진)중령은 19일 지난 6개월여 간의 활동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단장은 1999년 10월 상록수부대 1진으로 파병됐을 때는 지원대장으로, 이번에는 유엔의 철수계획에 따라 마지막 파병부대의 단장을 맡아 동티모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누구보다 높고, 현지실정에 대해 훤하다.
특히 파병된 국가와 유엔의 극찬을 받은 바 있는 ‘블루 앤젤 작전’을 구상하고 실천한 단장으로 느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1진(로스팔로스 지역서 활동)때만 해도 총소리를 들으면서 임무를 수행할 만큼 매우 위험했으나 지금 은 체육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우리 군에 보내는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실제로 서티모르 안에 들어 있는 주인 오쿠시 지역에서는 현지에 파병된 국가 가운데 상록수부대만 유 일하게 총기를 휴대하지 않고 마음껏 거리를 누비고 있다.
99년 8월 독립을 반대하는 밀리샤(민병대)들의 횡포로 수백 명이 학살되고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 폐허가 되다시피한 상황에서 독립(2001년 5월20일)을 했기 때문에 외부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많아 자연 한국군에 대한 인식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인도네시아가 지배하는 서티모르 안에 있는 오쿠시 지역의 경우, 민병대의 횡포가 극에 달해 지 역 전체가 거의 황폐화하다시피해 주민정서가 극히 부정적이고 외부에 대한 간섭과 관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실정이었다.
이 같은 지역정서를 완전히 바꿔 놓은 결정적 원인이 바로 상록수부대의 왕성한 블루 앤젤 작전이었다.
“구호품으로 불신이 가득 찬 지역 정서를 바꾼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진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마음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든 진심은 통하는 것이니까요.”
아픈 사람 고쳐주고,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하고, 마을 촌장들과 자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것이 이들의 마음을 180도로 돌려놓게 했다는 게 김단장의 설명이다.
김단장은 “두달 만에 이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었다”며 “어디에서나 ‘이타 코레가’(우리는 친구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고 현지주민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김단장은 그러나 철수를 며칠 앞둔 지금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99년부터 지금까지 4년간 세계 각 국의 평화유지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여전히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철수하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고 동티모르가 걱정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단지 2001년 8월 4진이 로스팔로스에서 추진했던 동티모르판 새마을운동인 ‘호메마을 프로젝트’가 전 동티모르에 확산돼 근면과 자립의지가 충만해져 빠른 시일 안에 스스로 일어서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김단장은 말했다.
김단장은 마지막으로 상록수부대가 파견된 지역이 가장 먼저 안정을 찾았고 또 그것을 유엔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외파병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확신했다.
특히 장교와 직업군인은 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군인들이 분쟁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은 군사력 증강에도 도움이 되고, 군사적·경제적인 면에서도 실익이 많다”고 말했다.
〈오쿠시=유호상 특파원〉
어딜가나 ‘우리는 친구’ 먼저 인사건네
"한국군 가운데 가장 먼저 동티모르에 발을 디뎠고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 보람을 느낍니다.”지난 4월 특전사 요원을 주축으로 한 국군 장병 250명을 이끌고 동티모르 오쿠시 지역에 파병된 상록수 부대 8진 단장 김사진(44·3사19기·사진)중령은 19일 지난 6개월여 간의 활동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단장은 1999년 10월 상록수부대 1진으로 파병됐을 때는 지원대장으로, 이번에는 유엔의 철수계획에 따라 마지막 파병부대의 단장을 맡아 동티모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누구보다 높고, 현지실정에 대해 훤하다.
특히 파병된 국가와 유엔의 극찬을 받은 바 있는 ‘블루 앤젤 작전’을 구상하고 실천한 단장으로 느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1진(로스팔로스 지역서 활동)때만 해도 총소리를 들으면서 임무를 수행할 만큼 매우 위험했으나 지금 은 체육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우리 군에 보내는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실제로 서티모르 안에 들어 있는 주인 오쿠시 지역에서는 현지에 파병된 국가 가운데 상록수부대만 유 일하게 총기를 휴대하지 않고 마음껏 거리를 누비고 있다.
99년 8월 독립을 반대하는 밀리샤(민병대)들의 횡포로 수백 명이 학살되고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 폐허가 되다시피한 상황에서 독립(2001년 5월20일)을 했기 때문에 외부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많아 자연 한국군에 대한 인식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인도네시아가 지배하는 서티모르 안에 있는 오쿠시 지역의 경우, 민병대의 횡포가 극에 달해 지 역 전체가 거의 황폐화하다시피해 주민정서가 극히 부정적이고 외부에 대한 간섭과 관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실정이었다.
이 같은 지역정서를 완전히 바꿔 놓은 결정적 원인이 바로 상록수부대의 왕성한 블루 앤젤 작전이었다.
“구호품으로 불신이 가득 찬 지역 정서를 바꾼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진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마음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든 진심은 통하는 것이니까요.”
아픈 사람 고쳐주고,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하고, 마을 촌장들과 자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것이 이들의 마음을 180도로 돌려놓게 했다는 게 김단장의 설명이다.
김단장은 “두달 만에 이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었다”며 “어디에서나 ‘이타 코레가’(우리는 친구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고 현지주민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김단장은 그러나 철수를 며칠 앞둔 지금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99년부터 지금까지 4년간 세계 각 국의 평화유지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여전히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철수하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고 동티모르가 걱정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단지 2001년 8월 4진이 로스팔로스에서 추진했던 동티모르판 새마을운동인 ‘호메마을 프로젝트’가 전 동티모르에 확산돼 근면과 자립의지가 충만해져 빠른 시일 안에 스스로 일어서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김단장은 말했다.
김단장은 마지막으로 상록수부대가 파견된 지역이 가장 먼저 안정을 찾았고 또 그것을 유엔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외파병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확신했다.
특히 장교와 직업군인은 프로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군인들이 분쟁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은 군사력 증강에도 도움이 되고, 군사적·경제적인 면에서도 실익이 많다”고 말했다.
〈오쿠시=유호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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