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정신 모독하는 북한 "폭정의 거점"
4·19 혁명 정신은 당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4세 소녀 진영숙의 유서에 진하게 배어있다. 진영숙은 1960년 4월 19일 밤 8시경 데모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채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진영숙은 파출소에서 쏘아댄 총탄에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숨을 거뒀다. 진영숙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살면서도 쾌활하고 꿈 많던 소녀였다.
진영숙은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홀어머니에게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섰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에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하셔요."
4·19 혁명은 저 어린 소녀 진영숙의 피눈물로 얼룩진 유서가 말하듯 "민주주의"를 위한 궐기, 바로 그것이었다. 꿈많고 풋풋하기만 했던 소녀 진영숙의 죽음으로 4·19 혁명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우뚝서게 하였고, 자랑스런 국가로 발돋움케 하였다.
돌이켜보건데 1952년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발췌개헌을 강행하여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민족자결단" "땃벌떼" "백골단" 등 홍위병을 동원하여 반대세력을 압박하였다. 이 추한 몰골들을 지켜보고 있던 영국 런던의 더 타임즈는 한국 민주주의 장래에 절망감을 담아냈다. 이 신문은 '한국의 잿더미(6·25 남침 폐허)에서 건전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4·19 혁명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쓰레기 통에서도 장미꽃이 만발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4·19 혁명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 되었고, 자유 국가들로부터 경의와 찬사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비록 장기집권의 어두운 허물은 남겼지만, 8·15 행방정국 속에서 공산분자들의 남한 공산화 책동에 맞서 반공과 자유민주체제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개발독재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해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향유토록 길을 닦았다. 그후 대한민국은 4·19 자유혁명 정신이 살아있었기에 시행착오와 시련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중단없이 자유과 번영의 길로 달려갈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시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활짝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되어 있고,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에 올라 있다. D램 반도체, 선박,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기 등의 생산은 세계1위로 앞장서 있다. 북한의 6·25 기습남침으로 폐허가 되었던 이 강산은 풍요와 자유가 흘러넘치는 기름진 땅으로 가꿔졌다.
대한민국이 번영과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된 것은 14세 소녀 진영숙이 불의에 항거하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던 그 용기와 자유 정신에 연유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에는 동족이면서도 4·19 혁명과 같은 자유의 횃불과 함성은 억업속에 꺼져 있다.
북한에서는 자유는커녕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마저 사교(邪敎) 집단의 교주처럼 우상화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폭정의 거점"이라고 규정했고, 빌 클린턴은 김정일을 "10대 갱단 두목 같다"고 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북한을 "전체주의적 사교집단"이라고 했다. "10대 갱단 두목" 지배하에 있는 "전체주의적 사교집단"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고, 4·19는 더욱 더 불가능하다. 거기에선 경제 발전도 상상할 수 없다.
결과는 굶주림과 탄압 밖에 없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6년간 식량난으로 적게는 25만∼69만, 많게는 25만∼117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 20∼30만명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둬놓고 고통속에 죽어가게 하고 있다. 지난 3월 1일에는 탈북자를 도왔다는 등의 죄목으로 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1명을 공개 처형하는 잔혹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이 공산정권 수립 이후 60년이 가깝도록 자유와 번영 대신 탄압과 굶주림의 "전체주의적 사교집단"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 단순하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고, 4·19와 같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남한에서 4·19 혁명이 발발하자, 도리어 4·19 혁명 와중의 남한내 내부 갈등과 혼란을 틈타 적화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또 다른 4·19의 기회만 기다린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974년 4월 대남공작요원들에 대한 담화를 통해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놓쳤다. 그 한번은 6·25이고 또 한번은 4·19이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정의 거점"에 의한 신성한 4·19 혁명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남한에서 4·19와 같은 혼란과 갈등이 또 다시 터져나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이제 북한은 남한에서 제2의 4·19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리고 기만적인 "민족공조"와 "통일"이나 외쳐대며 반미를 선동할 것이 아니라, 4·19 기본정신인 민주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그 길만이 남한과 같이 북한도 주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고 자유분방한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음을 첨언해 둔다.(自由 4월호)
정용석(단국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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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9 오전 9:43:12지금 우리나라는 새로운 4.19가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북한 해방을 위한 4.19일수도 있고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4.19일수도 있다. 다만 그 4.19가 45년전 그때처럼 젊은 대학생들에 의해 일어나야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45년전 4.19였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에 의해 자유가 무너지려 하고 잇기 때문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
2005-04-19 오전 8:5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