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일류국가 되려면 "김정일 제거, 漢字사용, 해양국가.."

조갑제, 현대사 강좌에서 일류국가론 주장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5-05-02 오전 10:17:44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2

 "우리나라가 일류국가가 되려면 한자를 사용하고 국가 엘리트들이 나와야하며, 국민의 교양을 향상시키고 해양세력으로 남아 있으며 북한 김정일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조갑제 월간조선 기자의 '일류국가론'이다.

 조 기자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조선일보사 광화문빌딩 9층에서 열린「趙甲濟의 현대사 강좌- 5ㆍ16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강연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미국에게는 할 말을 다한다고 부추겨 반미사태를 불러오고 있다"면서 "또 반대로 북한에게는 전혀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기자는 또 "5.16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5.16 이후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5ㆍ16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면서 "5ㆍ16은 고려시대 무신정권 이후 군인이 집권에 성공한 첫 사건이며, 20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성공적인 개혁의 시초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5ㆍ16은 군인들이 주도해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성공시킴으로써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열게 한 사건으로서 朴正熙는 그 중심에 서 있덨 인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갑제 기자의 이날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조국 선진화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한 5ㆍ16

 5ㆍ16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한국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민족사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5ㆍ16은 한국인이 일류국가, 선진화로 가는 길을 열어놓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대한민국 건국은 국민국가를 만들어 한국인이 백성이 아닌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정에 참여할 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5ㆍ16 군사혁명은 근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5ㆍ16 주체 세력은 민족 중흥과 조국 근대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들이 주도한 조국 근대화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근대화 이후 이루어 져야 할 것이 바로 선진화다. 5ㆍ16 세력은 조국 선진화의 물질적 토대를 거의 이루어 놓았다. 우리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중화학공업 및 첨단 산업을 가지고 있고, 경제 규모도 세계 10위권에 놓여 있다.

 그러나 총체적인 국력 면에서 우리가 아직까지 일류국가, 선진국가로 불릴 수 없는 이유는 정치 언론 학문 등 정신적 측면, 특히 대통령과 정치인 부분에서 선진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盧泰愚 대통령 이후 金泳三, 金大中, 盧武鉉 대통령을 과연 일류국가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외에도 우리의 지식 사회의 수준 역시 일류국가 혹은 선진화 하고는 아직 거리가 멀다.

 즉 물질적 측면의 한국은 이미 선진화를 이루어 놓았으나 정신적 측면의 한국은 여전히 2류, 3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정신적 정치적 부분을 어떻게 선진화시킬 것인가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개혁의 대상인 정치인들이 개혁의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1950년대에는 우리가 일류 국가가 되겠다는 비전이 있을 수 없었다. 단지 굶주림 해결이 최대의 목표였고, 국가의 방향이었다. 일류 국가 건설은 고사하고 2류와 3류 국가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목표였다.

 대한민국의 발전

 5ㆍ16 이후 한국의 발전은 우리가 일류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마음 속 꿈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일류국가와 선진화의 꿈이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류국가의 의미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국민들이 인간답고, 우아하고, 창조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선진사회이다. 현재 이러한 생활을 누리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미국과 유럽, 일본 정도밖에 없다. 非서구 국가 중 유일하게 일류국가 대열에 들어선 일본의 뒤를 이어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 대열에 들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일류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일류국가 건설은 역사의 깊이가 있는 나라만이 가능하다. 특히 문자를 안 역사가 깊어야 한다.

 둘째, 지정학적으로 문명의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현재 문명의 중심은 미국과 유럽, 동북아시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국민국가의 역사가 길어야 한다.

 넷째, 우수한 정치제도가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국민의 자질과 품성이 뛰어나야 한다.

 이들 다섯 가지 조건 중 우리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동북아시아의 중심」 즉 문명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60년이라는 짧은 국민국가의 경험과 평등지향적 성향을 지닌 민족성은 우리가 일류국가로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우리가 일류국가로 가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漢字혼용의 복원이다. 漢字를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깊은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漢字를 사용하지 않으면 의사전달에 있어서 수준과 깊이와 정확성이 떨어진다.

 둘째, 국가 엘리트의 再출현이 필요하다. 한국의 1세대 국가 엘리트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세대였다. 그 이후 나타난 2세대 국가 엘리트는 5ㆍ16을 통해 등장한 朴正熙 등 장교단이었다. 이들은 지역이나, 개인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려 했던 세력이었다. 김영삼 정권 이후 등장한 소위 「민주투사」라고 불리는 세대는 국가전체가 아닌 자기 정파나 일부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특권층에 지나지 않았다. 지역, 기능, 계층의 이해만을 대표하지 않고 나라 전체의 이해, 즉 국가이익을 대표하는 국가 엘리트를 통일과 선진화의 주도세력으로 키워야 한다.

 셋째, 국민교양을 높여야 한다. 국민교양을 높이지 않은 상태의 민주주의 연습은 결국 악랄한 세력에 의하여 그 민주주의가 이용당하는 것을 허용하고 만다.

 넷째, 한국은 통일 이후에도 海洋세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韓美 동맹은 海洋 동맹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륙세력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준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섯째, 조국 선진화의 결정적 걸림돌인 金正日 세력을 하루 빨리 제거해야 한다. 다소의 희생을 각오해서라도 기회가 왔을 때 빨리 제거하는 것이 비용절감이 된다.

 5ㆍ16의 모의

 1961년 군장교 6만 명 중 10%는 해외유학을 경험했다. 조직운영과 지식수준에서 軍 장교들은 한국의 가장 발달한 집단이었다. 이 우수한 엘리트 집단이 한국을 개조하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5ㆍ16이다.

 이들이 공무원 조직을 혁신하고 기업을 후원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朴正熙 소장이 5ㆍ16의 지도자가 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知的 능력과 지도력, 카리스마 측면에서 군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朴正熙는 한 때 여순 반란사건 뒤의 숙군수사때 체포되었다. 그런 朴正熙를 살려 준 것은, 수사책임자 白善燁 장군의 朴正熙 구명 요청을 들어준 李承晩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6.25 전쟁을 통해 朴正熙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아마도 6.25 전쟁이 없었다면 그는 평생 불평분자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李承晩이 朴正熙를 살린 것이고, 전쟁을 일으킨 金日成은 결과적으로 朴正熙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5ㆍ16은 朴正熙와 돈독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던 육사 5기와 육사8기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쿠데타였다. 이들은 4.19 전에는 李承晩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모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구상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4.19 이후 張勉과 민주당 정부는 국민들의 민주적, 경제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였고 내부 분열로 사회혼란을 통제할 구심점을 스스로 해체했다. 1961년에 들어서면 국민들 사이에서 군에 대해 행동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된다. 국민 皆兵制하에선 군대가 국민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民心이 변하면 軍心 역시 변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5ㆍ16은 거의 공공연히 모의되었다.

 5ㆍ16의 실행

 5ㆍ16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張勉총리, 尹潽善대통령, 張都暎 참모총장 세 인물의 역할이 중요하다. 張都暎은 쿠데타 움직임을 알고 있었으나 방관했다. 수녀원으로 달아난 張勉의 비겁성과 쿠데타 진압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尹潽善의 反장면 정서 또한 5.16의 성공을 도왔다.

 5ㆍ16의 성공은 朴正熙의 일관된 지도력에 의한 것이다. 5ㆍ16은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었으나 朴正熙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행동을 감행했다. 그는 해병대와 공수단을 끌어 들이는 데 성공했다. 5ㆍ16은 잘 준비된 쿠데타였다. 쿠데타 이후의 정부조직과 국가개조 프로그램이 미리 짜여진 상태였다. 이것을 준비한 인물이 바로 金鍾泌이다. 金鍾泌은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朴장군의 참모역할을 했다.

 5ㆍ16의 성공은 국가 지도부가 30대와 40대로 젊어지도록 했다. 군대의 우수한 운영체계가 행정부에 이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5ㆍ16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 개혁의 발판이 되었다.

 朴正熙에 대한 개념 규정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5.16 주체세력은 폐쇄적 방향으로 흐를 수 있었으나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박정희의 實事求是 정신 덕분이었다.
 나는 박정희를 혁명가이자 예언가라 부르고 싶다.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꿈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인물은 李承晩과 朴正熙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조 실학파와 정약용은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권력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朴正熙는 그의 꿈을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朴正熙를 위대한 실천 사상가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朴正熙는 그의 사상을 이론화하려 하지 않았다. 권력자가 자신의 사상을 이론화하면 소위 주체사상처럼 도그마가 된다.

 朴正熙는 조선조적 봉건잔재, 즉 위선적 명분론을 타파하려 하였으며, 관렴론을 실천론으로 대체하려 했다. 그의 국가발전 전략은 단순명쾌했다. 바로 自助, 自立, 自主였다. 자조정신, 자립경제에 이어 그는 자주국방을 추구하였다. 그의 自主는 反美자주가 아니라 책임지는 자주였다. 북한이 단독남침하면 국군의 힘만으로써 이를 저지하고 북한이 소련 중국의 도움을 받아 남침하면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저지한다는 것이 그의 자주국방론이었다. 박정희는 혁명가이자 실천가였고 비전의 소유자였다. 

(konas)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김진환    수정

    박정희 대통령은 5천년 단군이래 우리민족의 위대한 지도자!</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5-02 오후 9:49:39
    찬성0반대0
  • 564세대   

    박정희 죽이기에 영일이 없는 386들이 들어야 할 강연이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5-02 오전 10:59:02
    찬성0반대0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