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46) 파주 한·미 해병 참전비
‘한·미 해병 참전비’는 6.25전쟁에 참전한 한·미 해병들의 넋을 추모하고 그들이 이룩한 공훈을 길이 빛내기 위해 옛 격전지인 경기도 파주시 봉일천리에 해병대 사령부가 1964년 4월 15일 최초 건립하였다. 통일로 확장에 따라 왜소했던 참전비를 정성껏 가다듬어 1983년 9월 28일 재 건립하였다.
이후 정부의 사·공유지 정상화 방침에 따라 옛 탑을 헐고 대한민국 해병대 전 장병들의 정성을 모아 다시금 동일한 규모와 모습의 ‘한·미 해병 참전비’를 2021년 12월 28일 경기도 파주시 장곡리 현재 위치에 건립하여 관리중이다. 경내 면적은 150평이고 기단은 1m, 탑 높이는 1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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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창설과 더불어 공비 토벌작전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한국 해병대는 창설된 지 불과 1년 뒤 발발한 6.25전쟁에서 국민들에게 해병대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켰다.
최초의 국군 단독 상륙작전이었던 통영상륙작전에서 승리하여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을 얻었고, 도솔산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무적해병’이라는 신화를 창조하였다.
한·미 해병대는 6.25전쟁 중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중동부 전선에서 도솔산 지구 전투, 김일성(924m)고지 전투, 모택동(1,026m)고지 전투 등 수많은 연합작전을 함께 수행하며 무적해병의 위용을 세계에 떨쳤다.
1951년 7월 휴전회담 개최 당시 피아간 보다 유리한 지역 확보를 위해 수도권 방어를 역점에 두고 전선이 조정되어, 한국 해병 1전투단과 미 해병 제1사단이 1952년 3월 중동부전선에서 이곳 서부전선의 좌일선으로 병력을 옮겨왔다.
현재 참전비가 있는 지역 일대에는 미 해병 제1사단이, 장단 지역에서는 한국 해병 1전투단이 배치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 시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4차에 걸친 북한과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 수도서울을 방어하고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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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작은 돌에 새겨진 글은 6.25 동란 중 한·미 양국 해병대가 목숨을 같이하여 싸운 역전의 기록이다. 이들 싸움터인 고지와 능선에 빗발치듯 수 많은 포탄으로 암석이 가루가 되고 지면이 낮아지며 산형이 바뀌는 피아공방, 그 싸움의 참상은 이른바 죽음의 산더미로서 피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아! 장하도다. 조국 수호의 영령으로 산화한 젊은 해병 용사들이 이 땅을 지켰도다.
더욱이 한국 해병대와 운명을 같이하여 싸운 미 해병들이 1955년 3월 14일 이 땅에서 철수할 때 까지 제반 악조건 하에 신출귀몰하듯 닥치는 대로 쳐부순 그 영웅적인 전투는 귀신잡는 해병대란 용맹을 얻었도다. 이 전무후무한 자유 수호의 공을 세운 미국 해병들의 이름은 한국 해병대의 공훈과 더불어 청사에 길이 빛나리라.
그렇다 이 싸움터에서 젊은 넋으로 산화한 한·미 해병들의 혁혁한 충혼은 산천과 더불어 자유 조국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이 땅을 지키리니 고이 잠든 이들 영현들의 명복을 빌며 우리 겨레로 하여금 그 공훈을 길
이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전승 기록을 옛 싸움터에 비를 세워 남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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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 해병대와 미 해병대가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항상 하나였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소망하는 글귀도 보인다.
6.25전쟁은 벌써 76년 전 일이 되어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어려움에 쳐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한·미 동맹의 힘은 항상 기억되어야 함을 느끼면서 참전했던 한·미 해병대 참전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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