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47) 군산 3·1독립운동 기념비
군산 3.1독립운동 기념비는 군산 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관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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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호남지방에서 처음으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시위는 주로 구암교회 신자와 영명학교, 멜본딘 여학교, 구암 예수병원 등 학생 및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처음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 김병수가 주도하였는데 여기에 이두열, 고석주, 김수영 등의 영명학교 교사들과 양기준, 유한종 등의 예수병원 직원들이 합세하여 군산의 장날인 3월 6일에 거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후 점차 수가 늘어나자 일본 경찰은 군중들에게 무자비한 총격을 가하였다. 이때 만세운동 현장에서 검거되거나 체포된 사람은 약 90여명으로 모두 군산경찰서에 투옥되었고,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는 헌병대와 일본경찰들이 수색하여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서를 압수하고 학교의 기물을 파손하였다. 심지어 두 학교의 교사들은 만세운동과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 연행되어 며칠씩 심문을 받는 고충을 당하기도 하였다.
군산에서 3월 5일에 일어난 3·5만세운동은 호남지방 최초로 일어난 봉기로 이후 전북 전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군산의 자긍심을 세우고, 선열들이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후세까지 역사현장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군산 3.1운동기념사업회에서 군산 3.5만세운동의 발원지인 구암동산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군산 3·1독립운동 기념비를 직접 방문하며 느낀 점은 군산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념비 앞에 서자 당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거리로 나와 만세를 외쳤던 선열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이 더욱 크게 느껴졌고 특히 군산 3·5만세운동이 호남지역 만세운동의 시작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 비해 기념비로 가는 길은 안내 표시가 부족해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쉽게 찾기 어려워 보였다. 또한 주변 관리 상태나 시설 면에서도 기념관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립운동의 의미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념관뿐만 아니라 기념비와 같은 역사 현장에도 더 많은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장소들이 더욱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하고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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