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호르무즈해협 안전보장을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과 한계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 이란 군사작전(장대한 분노의 작전)으로 시작된 이란전쟁은 중동의 군사적 충돌을 넘어 글로벌 경제 및 에너지 안보와 해양안보 질서를 흔들었다. 이란은 미사일과 자폭드론 공격으로 대응하는 한편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국제 유가와 선박의 해상운임, 전쟁위험 보험료가 급등했고, 걸프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과 선원들은 직접적인 생명 위협에 노출됐다.
이후 긴 협상과정을 거쳐 6월 17일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는데 거기에는 군사작전 종식과 영구적 전쟁 종식, 이란 핵 프로그램 관련 60일간의 최종 합의 협상 개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자유로운 통항 재개, 이란 핵무기 금지, 이란 고농축우라늄 처리방안, 대 이란 제재 완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협상문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전쟁이 곧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란 핵 문제와 경제제재, 이스라엘과 이란의 적대관계, 역내 미군의 역할 등 핵심 쟁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이란 간 정치적 종전과 해양의 평화가 반드시 동시에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투가 중지되더라도 전쟁 중 이란에 의해 부설된 기뢰와 표류하는 무인 자폭수상정, 파손된 항로표지시설은 장기간 해협을 운항하는 상선을 포함한 민간선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협정이 전쟁을 법적으로 끝내는 절차라면, 기뢰 제거와 안전항로 복구는 전쟁을 해양에서 실제로 끝내는 작업이다.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Choke Point다.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교역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통과하며, 그 주요 목적지는 한국·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에 있어 호르무즈해협은 먼 중동의 바닷길이 아니다. 우리 발전소와 공장, 운송수단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지나가는 국가경제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거나 통항이 제한되면 피해는 국제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원유와 가스 운반선의 운항 중단, 전쟁위험보험료와 운임 급등, 선원 승선 기피, 에너지와 원자재 도입 차질로 이어진다. 결국 국내 물가와 산업생산, 수출 경쟁력까지 영향을 받는다. 해양안보가 곧 경제안보이고, 해상교통로 보호가 국가안보인 이유다.
필자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중동전쟁 관련 해운·조선·물류 안정화포럼 정책세미나에서 ‘해상 수송로 확보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전략물자의 안정적인 수송을 위해 전략상선대를 확충하고, 국가위기 상황에서도 선박을 운항할 수 있는 전략해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해양안보와 해운·에너지·조선·금융정책을 총괄할 대통령 직속 국가해양전략위원회 설치도 제안했다.
호르무즈해협 위기는 정부 어느 한 부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외교부는 이란·오만·미국 및 걸프 국가들과 통항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국방부와 해군은 선박 보호와 군사위협 대응을 준비해야 하며, 해양수산부는 선박과 선원 안전을 관리해야 한다. 산업통상부는 원유·가스 수급과 비축물자를 조정하고, 금융·보험 당국은 전쟁위험보험과 긴급 정책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부처별 대응을 넘어선 범정부 차원의 통합컨트롤타워 체계 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대한민국이 우선 수행해야 할 역할은 우리 선박과 선원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는 위험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위치와 승선 인원, 화물, 연료, 피항 가능 항구와 주변 위협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출항과 대기, 우회, 집단통항, 해군 함정의 호송 여부를 결정하는 국가 차원의 선박보호계획을 가동해야 한다.
상선 운항에 있어 선장과 선사에게 모든 판단과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가 안전항로와 통항 시간을 제시하고, 다국적 해군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하면 제한적인 호송과 수색구조를 지원해야 한다. 전쟁위험보험료와 연료비 상승에 대한 정책보험과 긴급 금융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해군 함정만 파견하고 민간 해운기업의 비용 부담을 외면한다면 완전한 국가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종전 이후 가장 시급한 군사적 과제는 호르무즈해협에 부설된 기뢰를 제거하고 통상항로를 복구하는 일이다. 기뢰는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항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비대칭무기다. 실제 해상에 부설된 기뢰가 몇 발에 불과하더라도 선사와 보험회사는 안전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때까지 운항을 재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뢰 제거의 1차적 책임은 부설 당사국인 이란에 있다. 이란은 종전협상의 이행 과정에서 기뢰의 부설 수량과 위치, 기뢰 종류와 부설 시기를 공개하고 소해작업에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기뢰가 조류에 의해 이동했거나 부설 데이터가 불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란의 자료만으로는 항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검증과 다국적 연합해군 차원의 소해작전이 필요하다.
소해작전은 기뢰를 발견해 폭파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먼저 이란의 부설 기뢰 데이터와 위성·항공·수상·수중 등 전출처 정보를 종합해 위험 해역을 설정해야 한다. 이어 기뢰탐색함과 소해함, 무인수상정과 자율무인잠수정을 투입해 의심 물체를 탐색하고 분류해야 한다. 이후 원격조종 기뢰처리장비(MDV), 기뢰 폭발처리용 무인수상(중)정과 폭발물처리 요원(EOD)이 기뢰를 식별해 무력화 한다.
기뢰 제거가 끝났다고 바로 상선을 통과시킬 수도 없다. 반복적인 재탐색과 시험통항을 실시하고, 국제해사기구(IMO)와 해운·보험업계가 인정할 수 있는 안전항로 인증이 이뤄져야 한다. 결국 ‘위험해역 조사-탐색-식별-제거-재탐색-시험통항-항로 인증’의 全 과정이 마무리돼야 상업적 운항이 정상화될 수 있다.
한국 해군도 다국적 기뢰대항작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기뢰탐색함과 소해함, 폭발물처리팀(EOD, 수로조사팀, 무인수중체계 운용요원 등을 임무형 부대로 편성하여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소해함정의 장기 파견이 어렵다면 폭발물처리와 수로조사, 무인체계 운용 분야의 전문요원을 우선 제공할 수도 있다.
청해부대 구축함은 전문적인 소해작전을 직접 수행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지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소해함의 대공·대함 방호, 상선 호위, 해상교통 통제, 수색구조와 의무지원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청해부대와 소해전력을 하나의 임무부대로 편성하고,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및 걸프 국가들과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국 해군의 기뢰대항작전 참여는 한국 단독작전이 아니라 다국적 협력의 형태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란과 오만의 동의, 국제해사기구(IMO)의 조정 또는 국제적인 합의를 통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작전 목적도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 아니라 민간선박의 안전통항 회복으로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
한국의 역할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우리 해군의 소해전력은 북한이 유사시 주요 항만과 접근항로에 기뢰를 부설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핵심 자산이다. 부산·진해·평택·포항 등의 항만은 한반도 방어와 美 증원전력 수용에 필수적이다. 상당수 소해전력을 중동에 장기간 배치하면 유사시 주요 항만 개항 유지 능력과 기뢰전 대비태세가 약화될 수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해양환경도 한반도와 다르다. 수온과 염분·조류·수심과 해저지형이 상이하여 탐지장비의 성능이 제한될 수 있다. 이란의 대함미사일과 무인기, 고속정 등 잔존 위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방어 능력이 제한된 소해함이 단독으로 작전하기 어렵다. 별도의 호위전력과 항공감시, 정보·군수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군의 해외파병에 관한 법률적 절차도 존중해야 한다. 기존 청해부대의 임무와 작전해역 범위를 넘어 소해함과 병력을 추가로 파견한다면 국회의 동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파견 목적과 기간, 전력 규모, 지휘관계, 교전규칙, 비용과 철수 조건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요청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이란전 종전 이후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전쟁을 대신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란에 기뢰 제거의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국제사회와 함께 해상교통로(SLOC) 안전항로 복구에 기여하고, 우리 선박과 선원을 보호하며, 에너지와 국가전략물자의 수송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대응은 개별 부처가 아닌 대통령실 중심의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 통합 관리해야 할 대통령 직속 국가해양전략위원회 설치를 비롯해 중동 해역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대응할 수 있는 인공위성 영상, AIS, 함정, 해상초계기 등 다출처 수집 정보 기반의 해양영역인식(MDA) 체계와 한국형 해양정보융합센터(K-IFC) 구축, 전략상선대와 전략해기사 육성, 국가 선박보호계획 수립, 청해부대 임무 조정, 다국적 소해작전 참여, 전쟁보험과 정책금융 지원 등을 통합적으로 조정 실행할 수 있는 국가해양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의 진정한 종전은 기뢰가 제거되고 우리 국적 선박을 포함한 민간 상선이 다시 안전하게 통과하는 날 비로소 완성된다. 대한민국은 능력을 넘어선 전쟁의 당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가의 생명선이 걸린 바다에서 무임승차 해서도 안 된다. 냉정한 국익 판단과 준비된 해군력으로 종전 이후의 바다를 여는 것, 그것이 호르무즈해협 안전보장을 위한 대한민국의 현실적인 역할이라고 본다. (konas)
박범진: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향군 안보교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연구위원,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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