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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대학생 국토대장정 동행취재 2부

6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Written by. 인턴기자 김민   입력 : 2026-07-13 오후 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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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이날의 일정은 국군도수체조와 식사 이후 본래 예정에 없던 1시간 가량의 행군으로 시작되었다. 갑작스러운 공지였지만, 날씨가 좋았던 데다가 행군 지역도 지형이 험하지 않은 철원 평야였기에 대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행군을 마쳤다.

 ▲ 28일 아침, 국군도수체조를 위해 대형을 갖추고 있는 대원들 ⓒkonas.net

 

 ▲ 멀리 펼쳐진 논밭을 따라 1열로 행군하는 대원들 ⓒkonas.net

 

그렇게 아침 행군을 마친 대원들은 곧바로 첫 번째 목적지인 제2 땅굴로 이동했다. 제2 땅굴은 현재까지 총 4개가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 중 두 번째로 발견된 것으로, 1975년 육군 제6 보병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땅굴은 깊이 45미터 아래에 위치했던 데다가, 높이가 대단히 낮았기에 안전모 착용 후 견학이 시작되었다. 비록 필자를 포함한 대원들이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총 길이인 3.5km 중 500m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땅굴 밖으로 나왔을 땐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걸었던 탓에 대다수의 대원들이 지쳐 있었다. 그러나 힘든 것도 잠시, 땅굴 좌측에 세워진 위령비를 본 대원들은 금방 숙연해졌다. 제2 땅꿀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교전은 없었지만, 북한군이 땅굴에 설치한 함정으로 인해 아군 8명이 전사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 사진 촬영이 제한되었기에 외부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던 제2 땅굴 ⓒkonas.net

 

 ▲ 제2땅굴 추모 위령비... 제2 땅굴 발굴 당시 북한이 설치한 방어벽을 철거하던 중 전사한 청성부대 원 8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  ⓒkonas.net

 

땅굴을 둘러본 이후 대원들은 일제히 철원 노동당사로 이동했다. 심하게 훼손된 해당 건물은 6.25 전쟁 이전에는 북한 관할이었고, 전쟁 직전 그리고 전쟁 중에는 다수의 민간인들이 해당 건물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비록 시간 관계상 철원 노동당사에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노동당사 벽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 그리고 어둡게 그림자에 가려진 지하실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모두에게 일깨워주기에는 충분했다.

 ▲ 정면에서 바라본 철원 노동당사의 사진. 건물 자체가 붕괴 위험이 있었기에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로도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기에는 충분했다. ⓒkonas.net

 

그렇게 노동당사를 방문한 뒤 점심 식사까지 마친 대원들은, 이번에는 6.25 전쟁 막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를 견학 및 행군했다. 

 ▲ 백마고지 전적비. 여기서 안쪽으로 더 걷자 비무장지대와 접한 끝없는 철책과 초소가 펼쳐졌다. ⓒkonas.net

 

이 행군은 무척 독특했는데, 바로 비무장지대로 이어지는 철책을 바로 옆에 둔 채로 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형이 평탄하지 않고 굴곡이 심했던 데다가 날씨까지 더웠기에, 끝에 가서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대원들이 기진맥진해 있었다.

하지만 행군을 호위하던 제5 보병사단 장병들과, 비무장지대 내부에 외로이 서 있는 GP, 그리고 사방에 세워진 경계 초소를 보자 이내 피곤함은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우리에게는 단 하루의, 2시간도 안 되는 힘든 여정이었을 뿐이지만, 그곳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이는 평범한 일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비무장지대 행군후 조별 기념촬영 ⓒkonas.net

 

그렇게 대원들은 이날 숙박이 예정된 경기도 연천시에 위치한 제5 보병사단 신병교육대로 행군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아니나 다를까 행군이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규모의 게릴라성 소나기가 대원들을 향해 쏟아졌다.

 ▲ 게릴라성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행군하는 대원들 ⓒkonas.net

 

그러나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음에도, 침착하게 우비와 배낭 커버로 신체와 소지품을 감싼 뒤 문제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미처 우비로도 보호하지 못한 신발이 전부 젖어버렸다는 점이었지만, 이 역시 사단 측의 협조로 신발 건조기를 이용할 수 있었기에 부분적으로 해결되었다.

6월 29일

마치 전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날의 아침은 무덥고 화창했다.

이날은 국토대장정을 통틀어 이동거리가 제일 긴 날 중 하나였기에, 아침부터 모든 대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첫 번째 일정은 임진각 인근 평화누리길 행군이었는데, 전날과는 다르게 지형도 완만하고 날씨도 무덥지 않았기에 대원들은 편안한 얼굴로 행군을 실시했다.

 ▲ 평화누리길을 행군하고 있는 대원들 ⓒkonas.net

 

행군 직후, 대원들은 버스에 올라타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애기봉전망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에서는 견학에 앞서 전투식량 취식이 이루어졌는데, 군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원들에게는 이것이 생애 첫 전투식량 경험이었기에 이구동성으로 신기하다는 반응이 들려왔다.

 ▲ 전투식량 ⓒkonas.net

 

지급된 전투식량은, 불을 피우거나 조리를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끈만 집어당기면 자동으로 가열이 시작되는 구조였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애기봉전망대로 올라가, 한강 하구 건너편에 위치한 북한 지역을 바라보았다. 배치된 망원경으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건물 몇 개가 세워진 작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지만, 단장님은 해당 마을은 아무지 살지 않는 가짜 마을이라고 귀띔해 주셨다. 그것은 북한의 선전용 마을이었던 것이다.

 ▲ 애기봉전망대 앞에서 단체기념촬영 ⓒkonas.net

 

그렇게 이날의 마지막 장소를 견학한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경기도 남부의 해병대 소속 숙박시설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국토대장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삼겹살 등 푸짐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도 실감하지 못했지만, 국토대장정은 벌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는 지난 며칠간 대원들이 조별로 준비한 운명의 장기자랑이 실시되었다. 각 조는 춤, 영상 제작, 자작 노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장기를 마음껏 뽐냈고, 이 과정에서 각종 레크레이션도 같이 실시되었다. 모든 조가 인상깊은 무대를 선보였지만, 최종 우승은 누구보다 준비를 열심히 한 모습이 보였던 4조와 6조에게 주어졌다.

6월 30일

국토대장정 마지막 날의 첫 번째 목적지는 유엔군 초전기념관이었다. 밖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기념관이었지만,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에 도착한 미군의 “스미스 임무부대”가 북한군 기갑부대를 상대로 첫 전투를 치른 역사적인 장소였다. 병력 차이로 인해 결국 스미스 임무부대는 중과부적으로 후퇴해야 했지만, 이들이 번 귀중한 시간 덕에 유엔군 후속 부대가 도착할 수 있었고 국군 역시 전열을 재정비한 뒤 반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성을 감안하여 이날 일정에는 국군 제 52사단 및 제8군 소속 주한미군 장병들이 동행했다. 대원들, 국군 장병 및 주한미군은 단장님의 지휘 아래 다 함께 기념관 뒤쪽의 산을 등반했는데, 산 정상에 올라가자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왜 스미스 임무부대가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스미스 부대의 첫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탑. 역동적인 자세로 전차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는 미군들을 나타낸 동상이 인상적이다. ⓒkonas.net

 

그렇게 초전기념관을 견학한 대원들은 다음 목적지인 제2함대 사령부로 이동했다. 사령부에 도착한 대원들은 점심 식사 이후, 해군 관계자 분들의 인솔 아래 2002년 제2 연평해전에서 침몰한 참수리 357정과 2009년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포항급 초계함 천안함을 견학했다.

도합 1시간 가량 두 척의 군함을 둘리본 대원들은 입을 모아 무겁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는데, 이는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둘러보았던 다른 전적지와는 대비되게 이곳은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에 벌어진 교전을 다루고 있었고, 아마 그것이 대원들에게는 다르게 와닿았을 것이다.

또한 처참하게 두 동강 난 채로 전시 중이었던 천안함의 선체는,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대원들에게 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 절반으로 나뉜 채 전시된 천안함의 잔해. 밖에서 안으로 휘어들어간 철판, 함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침몰했음을 보여준다. ⓒkonas.net

 

그렇게 견학을 마친 대원들은, 마지막 순서로 예정된 국토대장정 해단식 예행 연습에 들어갔다. 이미 지난 7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익숙해진 대원들이었기에, 연습은 출정식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확하게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해단식에서 내빈 중 한 명으로 참석하신 재향군인회 해군 부회장님께서, 해단을 앞둔 대원들에게 이곳에서 배운 가치를 꼭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덕담을 남기신 것을 끝으로, 공식적인 제16회 대학생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이 종료되었다.

해단식을 마친 대원들은 모자를 하늘 위로 던지며 마지막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평택에서 곧바로 귀가하는 소수를 제외하고 전부 수서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두 시간 뒤 수서역에 도착한 대원들은, 각자 짐을 챙긴 뒤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 해단식 후 모든 대원들이 모자를 하늘높히 던지며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konas.net

 

그것을 끝으로 6박 7일간의 국토대장정은 막을 내렸지만, 필자는 이는 적절하지 않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국토대장정을 거치며 대원들은 대한민국이 희생 위에 세워졌고 지금도 희생과 헌신으로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면에서 새로이 깨달았으니까.

그렇기에, 어쩌면 이날 6월 30일은 “국토대장정의 끝”이 아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konas)

대학생 인턴기자 김  민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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