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좌파의 위험성: 대북관과 통일관의 혼란
Written by. 제성호
입력 : 2005-05-07 오후 12:21:52
북한은 애당초 태어나선 안될 존재였다. 국가적 법통성, 민족사적 정통성,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48년 5월 10일 유엔한국위원단의 접근을 허용해 민주적 총선을 실시했어야 했다. 이를 거부한 것은 민족의 통일 의지와 염원을 저버린 반통일적·분열주의적인 선택이었다.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 하에 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는 남한의 공산화를 위해 1950년 6월 25일 같은 민족에 대해 총부리를 겨누고 생명을 앗아가는 6·25 한국동란을 일으켰다. 이로써 김일성은 국제법상 戰犯이 되었고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저지른 반역자가 된 것이다.
이후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무기로, 또한 무자비한 반대파 숙청을 통해 전대미문의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수령의 家系를 우상화하고 역사를 날조하며 김일성의 동상을 전국에 35,000여개나 건립하는 전대미문의 우상화체제를 수립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들인 김정일에게 20세기 민주화시대에 역행하는 봉건적인 권력세습을 했다. 현재도 아들에게 3대에 이르는 부자세습을 획책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 반만년 동안 한민족이 지배해 온 고유한 영토 중 일부인 북한지역을 점거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국가 내지 국가적 실체로 인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국내법상으로는 반국가단체로 간주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민족의 고유한 영토는 한민족의 정통성을 갖는 자유민주세력(대한민국)의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러한 북한이 지금 헌법상 우리 국민의 일부인 북한주민의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에는 마침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함으로써 작금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동북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나아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등 정전체제 무실화를 지속하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은 인권, 평화, 핵 비확산 등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평화·안보 위협세력(이른바 불량국가, 비정상국가)인 것이다.
지금 김정일의 북한(정통성 없는 반민족·반민주세력, 독재체제, 우상화체제, 부자세습체제, 인권탄압체제, 철저한 계급사회)은 조선로동당규약에서 대남적화통일전략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남한과의 실질적인 평화공존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평화적 통일의 기본조건조차 성숙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비현실적인 것이다. 최소한 북한이 대남전략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개방·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통일은 남북한간의 의제가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반민주적·평화위협적인 김정일 정권은 결코 ‘통일대상’도 ‘통일협상의 대상’도 될 수가 없다. 기껏해야 북한정권은 평화공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우리의 통일 대상은 어디까지나 2천만 북한주민이다). 단지 한반도 평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우리가 북한의 실체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대화·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반국가단체인) 북한과의 대화는 대한민국(정통정부)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면서 당당하게 해야 한다. 대북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실시하되,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당연히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을 조건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좌파는 이런 대북 접근론을 대결적·수구적이라고 비판하며, 북한 인권상황에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태도이다. 다만 최근에 좌파 내에서도 북한 인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이와 관련,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일명 사노맹 사건의 주모자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교수가 이제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세력도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 것은 지극히 옳은 주장이라고 하겠다.).
그간 좌파는 김대중 정부 시절 행해진 대북 뒷거래에 의한 남북정상회담도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그런 방식의 정상회담의 결과, 남북관계에 약간의 훈풍을 불게 한 성과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5억달러의 막대한 돈을 들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비밀리에 5억달러를 주기로 약속한다면, 김정일은 당장 정상회담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야합적 퍼주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대북 뒷거래는 ‘사이비 남북화해’를 연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을 이룩할 수는 없다.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와 방향은 단기적으로는 모택동 정권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북한을 등소평, 강택민, 후진타오 정권의 수준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민족공동체 형성이고 종국에는 자유민주주의에 의거한 평화적 민족통일이어야 한다.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간에 공통의 가치관과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남북 공통의 가치관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해 온 것 중에서 가장 나은 생활양식이요 정치적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이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알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에서 인권개선이 이루어지고 체제가 민주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통일의 요체는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로 상징되는 변화(즉 체제변환)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당면하게는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통한 남북간 체제 동질화가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와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마땅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대북 협력과 지원은 철저하게 ‘북한의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즉 남북교류협력(사이비 남북화해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 자체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북한주민의 인권 개선, 북한정권의 민주화, 대남전략의 포기 등)가 있기 전에는, 예컨대 중국의 경우를 들면 최소한 후진타오 정권과 같이 개방·개혁을 추진하고 민주화의 진전을 이룩하기 전까지는(사실 현재의 후진타오 정권도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문제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정권과 ‘통일협상’을 해선 안 된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현재의 김정일 정권은 통일협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채택된 6·15 남북공동선언이 우파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한이 6·25와 같은 민족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양측의 정상이 성실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명기하지 않고, 남측의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간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선언함으로써 마치 김정일 정권을 통일협상의 상대로 인정하는 듯한 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까지 통일협상을 할 여건이 전혀 성숙되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남북관계가 통일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한반도 현실에 대한 착시현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좌파들이 선호하는 북한체제 이해를 위한 ‘내재적 접근’도 문제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 남한의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외재적·보편적 잣대로 냉혹하게 비판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을 하는 것은 균형잡힌 자세가 아니다. 이 같은 이중잣대는 친북좌파라는 비판을 낳고 있는 것이다.
좌파가 진보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인권, 반전, 반핵을 모두 주장해야 한다. 이 3가지는 모두 역사적으로 진보진영이 선점해 온 아젠다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좌파는 북한 인권에 침묵하고, 북한의 핵개발 내지 핵보유 선언에 관대하며, 오로지 반전 주장만을 펴고 있다(현재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최대의 요인이 북핵문제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좌파는 반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자들에게 북핵 포기를 앞장서 설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북핵 포기를 북한 당국에 요구하는 좌파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입에 맞는 것만 취하는 편식증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진정 냉전수구세력인 김정일 독재정권과 무조건적인 대북지원과 협력을 주장하며 친북적․독재협력적 성향을 보인다면, 이러한 좌파야말로 수구좌파라고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남북통일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 또한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 충분한 민족공동체의 회복·발전 과정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통일은 반세기 동안 이질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온 남북한의 주민이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민족통일)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섣불리 연방(낮은 단계)과 같이 남과 북을 뛰어 넘는 국가체제 조립(국가통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유민주적 통일 노력에 보탬이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자세라고 하겠다. 요컨대 민족사회의 통합이 정치적 통합에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좌파는 무조건 “통일은 선”이라는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통일의 내용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방제 통일도 수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통일의 핵심은 통일의 방법이나 절차가 아니라 통일의 ‘내용’이다.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인민민주주의에 의한 것이냐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4,700만의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다.
앞으로 정부는 통일의 내용은 헌법 제4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여야 한다는 점을 기회있을 때마다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는 중심을 잡아가면서 ‘빠른 통일’이 아니라 ‘바른 통일’을 향한 올바른 대북정책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차분하고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좌파진영이 왜곡된 대북관과 통일관을 유포하여 우리 사회를 더 이상 혼란시키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선량한 시민들이 반국가적 수구좌파의 감상적 통일 논의나 비합리적인 선전에 현혹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가 좌파진영의 친북통일론 주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실에서, 또한 교육의 현장에서 그러한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프리존)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 하에 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는 남한의 공산화를 위해 1950년 6월 25일 같은 민족에 대해 총부리를 겨누고 생명을 앗아가는 6·25 한국동란을 일으켰다. 이로써 김일성은 국제법상 戰犯이 되었고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저지른 반역자가 된 것이다.
이후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무기로, 또한 무자비한 반대파 숙청을 통해 전대미문의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수령의 家系를 우상화하고 역사를 날조하며 김일성의 동상을 전국에 35,000여개나 건립하는 전대미문의 우상화체제를 수립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들인 김정일에게 20세기 민주화시대에 역행하는 봉건적인 권력세습을 했다. 현재도 아들에게 3대에 이르는 부자세습을 획책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 반만년 동안 한민족이 지배해 온 고유한 영토 중 일부인 북한지역을 점거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국가 내지 국가적 실체로 인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국내법상으로는 반국가단체로 간주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민족의 고유한 영토는 한민족의 정통성을 갖는 자유민주세력(대한민국)의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러한 북한이 지금 헌법상 우리 국민의 일부인 북한주민의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에는 마침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함으로써 작금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동북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나아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등 정전체제 무실화를 지속하고 있다. 한 마디로 북한은 인권, 평화, 핵 비확산 등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평화·안보 위협세력(이른바 불량국가, 비정상국가)인 것이다.
지금 김정일의 북한(정통성 없는 반민족·반민주세력, 독재체제, 우상화체제, 부자세습체제, 인권탄압체제, 철저한 계급사회)은 조선로동당규약에서 대남적화통일전략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남한과의 실질적인 평화공존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평화적 통일의 기본조건조차 성숙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비현실적인 것이다. 최소한 북한이 대남전략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개방·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통일은 남북한간의 의제가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반민주적·평화위협적인 김정일 정권은 결코 ‘통일대상’도 ‘통일협상의 대상’도 될 수가 없다. 기껏해야 북한정권은 평화공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우리의 통일 대상은 어디까지나 2천만 북한주민이다). 단지 한반도 평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우리가 북한의 실체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대화·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반국가단체인) 북한과의 대화는 대한민국(정통정부)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면서 당당하게 해야 한다. 대북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실시하되,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당연히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을 조건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좌파는 이런 대북 접근론을 대결적·수구적이라고 비판하며, 북한 인권상황에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태도이다. 다만 최근에 좌파 내에서도 북한 인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이와 관련,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일명 사노맹 사건의 주모자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교수가 이제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세력도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 것은 지극히 옳은 주장이라고 하겠다.).
그간 좌파는 김대중 정부 시절 행해진 대북 뒷거래에 의한 남북정상회담도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그런 방식의 정상회담의 결과, 남북관계에 약간의 훈풍을 불게 한 성과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5억달러의 막대한 돈을 들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비밀리에 5억달러를 주기로 약속한다면, 김정일은 당장 정상회담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야합적 퍼주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대북 뒷거래는 ‘사이비 남북화해’를 연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을 이룩할 수는 없다.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와 방향은 단기적으로는 모택동 정권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북한을 등소평, 강택민, 후진타오 정권의 수준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민족공동체 형성이고 종국에는 자유민주주의에 의거한 평화적 민족통일이어야 한다.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간에 공통의 가치관과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남북 공통의 가치관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해 온 것 중에서 가장 나은 생활양식이요 정치적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이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알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에서 인권개선이 이루어지고 체제가 민주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통일의 요체는 북한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로 상징되는 변화(즉 체제변환)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당면하게는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통한 남북간 체제 동질화가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와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마땅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대북 협력과 지원은 철저하게 ‘북한의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즉 남북교류협력(사이비 남북화해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 자체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북한주민의 인권 개선, 북한정권의 민주화, 대남전략의 포기 등)가 있기 전에는, 예컨대 중국의 경우를 들면 최소한 후진타오 정권과 같이 개방·개혁을 추진하고 민주화의 진전을 이룩하기 전까지는(사실 현재의 후진타오 정권도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문제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정권과 ‘통일협상’을 해선 안 된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현재의 김정일 정권은 통일협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채택된 6·15 남북공동선언이 우파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한이 6·25와 같은 민족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양측의 정상이 성실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명기하지 않고, 남측의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간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선언함으로써 마치 김정일 정권을 통일협상의 상대로 인정하는 듯한 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까지 통일협상을 할 여건이 전혀 성숙되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남북관계가 통일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한반도 현실에 대한 착시현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좌파들이 선호하는 북한체제 이해를 위한 ‘내재적 접근’도 문제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 남한의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외재적·보편적 잣대로 냉혹하게 비판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을 하는 것은 균형잡힌 자세가 아니다. 이 같은 이중잣대는 친북좌파라는 비판을 낳고 있는 것이다.
좌파가 진보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인권, 반전, 반핵을 모두 주장해야 한다. 이 3가지는 모두 역사적으로 진보진영이 선점해 온 아젠다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좌파는 북한 인권에 침묵하고, 북한의 핵개발 내지 핵보유 선언에 관대하며, 오로지 반전 주장만을 펴고 있다(현재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최대의 요인이 북핵문제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좌파는 반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자들에게 북핵 포기를 앞장서 설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북핵 포기를 북한 당국에 요구하는 좌파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입에 맞는 것만 취하는 편식증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진정 냉전수구세력인 김정일 독재정권과 무조건적인 대북지원과 협력을 주장하며 친북적․독재협력적 성향을 보인다면, 이러한 좌파야말로 수구좌파라고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남북통일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 또한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 충분한 민족공동체의 회복·발전 과정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통일은 반세기 동안 이질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온 남북한의 주민이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민족통일)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섣불리 연방(낮은 단계)과 같이 남과 북을 뛰어 넘는 국가체제 조립(국가통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유민주적 통일 노력에 보탬이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자세라고 하겠다. 요컨대 민족사회의 통합이 정치적 통합에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좌파는 무조건 “통일은 선”이라는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통일의 내용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방제 통일도 수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통일의 핵심은 통일의 방법이나 절차가 아니라 통일의 ‘내용’이다.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인민민주주의에 의한 것이냐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4,700만의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다.
앞으로 정부는 통일의 내용은 헌법 제4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여야 한다는 점을 기회있을 때마다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는 중심을 잡아가면서 ‘빠른 통일’이 아니라 ‘바른 통일’을 향한 올바른 대북정책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차분하고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좌파진영이 왜곡된 대북관과 통일관을 유포하여 우리 사회를 더 이상 혼란시키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선량한 시민들이 반국가적 수구좌파의 감상적 통일 논의나 비합리적인 선전에 현혹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가 좌파진영의 친북통일론 주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실에서, 또한 교육의 현장에서 그러한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프리존)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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