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시쵸프의 6·25회고> "김일성이 시작한 전쟁"
Written by. 코나스
입력 : 2005-06-13 오후 1:47:37
왜냐고 물을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북조선 사람들에게 동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고로 잘 될 것을 바랬다. 우리는 남조선 인민이 자본주의를 뒤집어엎고 북조선처럼 인민의 권력을 수립할 것을 희망했다. 그것은 스탈린의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는 김일성을 지지했다. 나는 스탈린을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스탈린과 같은 의견이다. 만약에 (나도)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었다면 나역시 김일성에게 동의했을 것이다. 이것은 조선의 국내문제였다.
당시 조선의 인민이 통일사회주의 조선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1949년에 김일성이 모스크바에 왔을 때 나는 회의에 출석했다. 그 (김일성)는 (남조선)공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있는 세부적인 토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참모본부와 의논했을 것이다.
나는 전원이 가까이에 있는 스탈린의 다차(별장)에 모였을 때 최종적인 결론을 알게된 것 뿐이다.
거기서 김일성과 그 대표단을 위한 만찬회가 열렸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주로 김일성이 (남조선을) 침공한다는, 이미 내려진 결정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절대로 성공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인민은 자신을 지지할 것이다. 인민은 이 전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강력한 우군(友軍)이 있으며 준비는 모두 잘되고 있다. 성공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스탈린이 모든 소련군 고문단을 철수시키도록 명령하는 자리에 있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김일성이 당시 말한 것은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남조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으며 아마도 남조선에는 거대한 공산당 세포 조직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남조선인민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들(남조선사람들)은 이승만에 대해 불만이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승만은 부패하고 있었으며 미 제국주의의 괴뢰 같은 사나이였다. 그런데 (남조선)인민은 자기들의 운명과 자기자신의 나라의 주인이 되고싶어 했던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이 자신에게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나는 김일성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한다. 조선을 통일하기 위해 김일성이 행동을 개시할 날이 합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은 시작되었다.
나는 당시 스탈린이 국방인민위원이었던 불가닌을 불러, 북조선의 각 사단으로부터 모든 (소련군)고문관을 철수시키도록 명령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이일로 나는 불안해졌다. 스탈린이 그렇게 한 것은 우리나라(소련)의 장교가 한 명이라도 포로가 되면 미국으로부터 우리(소련)가 전쟁이 참가하고 있다고 비난받을 지도 모른다는 위구(危懼)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난하는 빌미를 주지 않은 것은 현명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북조선군을 약체화시켰다. 북조선군에는 전술에 통달한 우수한 간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문관의 철수는 북조선군의 전투능력과 작전의 즉응성(卽應性)을 약화시켰다.
북조선군은 서전(緖戰)에서는 비상한 성공을 거두어 신속하게 남하해서 서울을 점령하고 공격을 계속했다. 우리들은 작전의 완수와 진실한 승리, 북조선의 노동자계급과 농민뿐만 아니라 전 조선인민의 승리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전차부대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근처의 최후의 방위선으로부터 남조선 군을 쓸어내기 일보 직전인 최후의 단계에서 김일성은 힘이 부쳤다. 나는 부산의 인구와 전략적인 위치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곳이 요새(要塞)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김일성은 다만 숨이 막힌 것이다. 그는 공격도중에 병력과 전차(탱크)를 비롯한 장비를 엄청 잃었다. (씨름에서) 마지막 한번 더 밀어내는 힘이 약간 모자랐던 것이다. 나는, 전차부대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그는 전선(戰線)을 돌파할 수 있었고, 전쟁은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었다면 조선이라는 몸에는 남조선의 제국주의 국가와 같은 종기(腫氣)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함에 있어 나는, 우리나라의 고문관들이 이 작전을 계획할 때 아마도 모든 것 (고려사항)을 계산에 넣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임은 스탈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김일성은 이미 주어진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물론 또 하나의 부대를 편성할만한 전차를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김일성은 자력으로 싸웠다. 그의 군대는 퇴각했고 그 전력(戰力)은 잃고 있었다. 우리 대사(大使)는 김일성이 절망적이라고 보고 해왔다.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미군이 와서 북조선을 점령할게 틀림없다』고 되풀이 외치면서, 자기는 산으로 들어가 일본군이 북조선을 점령했을 때 했던 것처럼 게릴라 행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탈린의 반응은 어땠는가. 나는 그의 말을 옆에서 들었다. 스탈린은 말했다. 『그게 어떻단 말이야. 김일성은 실패해도 우린 군을 움직일 생각이 없다. 내버려 두라. 이렇게 된 이상 극동에서는 미군을 우리 이웃으로 삼자』
스탈린은 북한을 포기하려 했으나 中國이 나서 구원했다
그는 내심 그런 체념의 심경이었다. 스탈린은 그건 이미 피하기 힘든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그때 중국이 돌연 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관해 회담하자고 제안해 왔다.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택동의 대리로서 중국으로부터 주은래(周恩來-당시총리)가 찾아왔다.
스탈린은 당시 남쪽의 스티인가, 기구라엔가 있었다. 주은래는 거기서 스탈린을 만났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돌아와 회담결과에 관해 말하고 자신의 인상을 내비쳤다. 중국측은 북조선과의 국경에 예비군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50만이라는 대군을 투입해서 북조선을 원조하겠다고 제의해온 것이다.
참전에 즈음해서 중국 측이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붙이려고 했는지 우리에게 어떤 조선을 붙이려고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스탈린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스탈린이 우리나라(소련)는 이 전쟁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지원하고 그에게 원조를 제공했지만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가 보인 태도는 비겁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을 두려워했다.
전황(戰況)은 중국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모택동의 공적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커다란 희생을 지불하고 대군(大軍)을 진격시켰고 이 군대가 북조선을 살리기 위해 피를 흘렸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고, 우리가 이에 공헌한 것은 스탈린이 죽었을 때였다.(konas)
우리는 오랫동안 조선전쟁을 시작한 것은 남조선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한 시각(視角)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부르짖는 사람도 있다. 적(敵)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역사를 위해 진실을 말하고 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동지 김일성이었으며, 스탈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실제로는 전부가-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공격을 위한 구체적 계획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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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의 인민이 통일사회주의 조선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1949년에 김일성이 모스크바에 왔을 때 나는 회의에 출석했다. 그 (김일성)는 (남조선)공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있는 세부적인 토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참모본부와 의논했을 것이다.
나는 전원이 가까이에 있는 스탈린의 다차(별장)에 모였을 때 최종적인 결론을 알게된 것 뿐이다.
거기서 김일성과 그 대표단을 위한 만찬회가 열렸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주로 김일성이 (남조선을) 침공한다는, 이미 내려진 결정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절대로 성공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인민은 자신을 지지할 것이다. 인민은 이 전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신에게는 강력한 우군(友軍)이 있으며 준비는 모두 잘되고 있다. 성공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스탈린이 모든 소련군 고문단을 철수시키도록 명령하는 자리에 있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김일성이 당시 말한 것은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남조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으며 아마도 남조선에는 거대한 공산당 세포 조직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남조선인민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들(남조선사람들)은 이승만에 대해 불만이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승만은 부패하고 있었으며 미 제국주의의 괴뢰 같은 사나이였다. 그런데 (남조선)인민은 자기들의 운명과 자기자신의 나라의 주인이 되고싶어 했던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이 자신에게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나는 김일성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한다. 조선을 통일하기 위해 김일성이 행동을 개시할 날이 합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은 시작되었다.
나는 당시 스탈린이 국방인민위원이었던 불가닌을 불러, 북조선의 각 사단으로부터 모든 (소련군)고문관을 철수시키도록 명령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이일로 나는 불안해졌다. 스탈린이 그렇게 한 것은 우리나라(소련)의 장교가 한 명이라도 포로가 되면 미국으로부터 우리(소련)가 전쟁이 참가하고 있다고 비난받을 지도 모른다는 위구(危懼)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난하는 빌미를 주지 않은 것은 현명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북조선군을 약체화시켰다. 북조선군에는 전술에 통달한 우수한 간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문관의 철수는 북조선군의 전투능력과 작전의 즉응성(卽應性)을 약화시켰다.
북조선군은 서전(緖戰)에서는 비상한 성공을 거두어 신속하게 남하해서 서울을 점령하고 공격을 계속했다. 우리들은 작전의 완수와 진실한 승리, 북조선의 노동자계급과 농민뿐만 아니라 전 조선인민의 승리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전차부대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근처의 최후의 방위선으로부터 남조선 군을 쓸어내기 일보 직전인 최후의 단계에서 김일성은 힘이 부쳤다. 나는 부산의 인구와 전략적인 위치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곳이 요새(要塞)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김일성은 다만 숨이 막힌 것이다. 그는 공격도중에 병력과 전차(탱크)를 비롯한 장비를 엄청 잃었다. (씨름에서) 마지막 한번 더 밀어내는 힘이 약간 모자랐던 것이다. 나는, 전차부대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그는 전선(戰線)을 돌파할 수 있었고, 전쟁은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었다면 조선이라는 몸에는 남조선의 제국주의 국가와 같은 종기(腫氣)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함에 있어 나는, 우리나라의 고문관들이 이 작전을 계획할 때 아마도 모든 것 (고려사항)을 계산에 넣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임은 스탈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김일성은 이미 주어진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물론 또 하나의 부대를 편성할만한 전차를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김일성은 자력으로 싸웠다. 그의 군대는 퇴각했고 그 전력(戰力)은 잃고 있었다. 우리 대사(大使)는 김일성이 절망적이라고 보고 해왔다.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미군이 와서 북조선을 점령할게 틀림없다』고 되풀이 외치면서, 자기는 산으로 들어가 일본군이 북조선을 점령했을 때 했던 것처럼 게릴라 행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탈린의 반응은 어땠는가. 나는 그의 말을 옆에서 들었다. 스탈린은 말했다. 『그게 어떻단 말이야. 김일성은 실패해도 우린 군을 움직일 생각이 없다. 내버려 두라. 이렇게 된 이상 극동에서는 미군을 우리 이웃으로 삼자』
스탈린은 북한을 포기하려 했으나 中國이 나서 구원했다
그는 내심 그런 체념의 심경이었다. 스탈린은 그건 이미 피하기 힘든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그때 중국이 돌연 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관해 회담하자고 제안해 왔다.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택동의 대리로서 중국으로부터 주은래(周恩來-당시총리)가 찾아왔다.
스탈린은 당시 남쪽의 스티인가, 기구라엔가 있었다. 주은래는 거기서 스탈린을 만났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돌아와 회담결과에 관해 말하고 자신의 인상을 내비쳤다. 중국측은 북조선과의 국경에 예비군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50만이라는 대군을 투입해서 북조선을 원조하겠다고 제의해온 것이다.
참전에 즈음해서 중국 측이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붙이려고 했는지 우리에게 어떤 조선을 붙이려고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스탈린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스탈린이 우리나라(소련)는 이 전쟁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지원하고 그에게 원조를 제공했지만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가 보인 태도는 비겁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을 두려워했다.
전황(戰況)은 중국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모택동의 공적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커다란 희생을 지불하고 대군(大軍)을 진격시켰고 이 군대가 북조선을 살리기 위해 피를 흘렸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고, 우리가 이에 공헌한 것은 스탈린이 죽었을 때였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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