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아 엄마왔어. 너무 늦게 와 미안하다"
서해교전 3주기 첫 해상 위령제 열려
“북한군의 얼굴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었어요. 20㎜포를 쏘고 있던 조천형 중사와 황도현 중사는 불길에 휩싸였고, 옆에 윤영하 소령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서후원 중사의 심장에 탄두가 관통해 죽어 가는 모습을 봤을 땐, ‘정말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서해 교전의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부상병사가 떠올리는 당시 교전상황이다.
|
온 국민이 월드컵의 축제분위기 속에 빠졌던 지난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14마일 해상에서 한국영해를 넘어 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에 맞서다 순국한 우리 6명의 젊은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은 이처럼 장렬히 전사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4일. 이들 6명의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는 해상 위령제가 처음으로 서해 연평도 서남방 20마일 해상의 을지문덕 함상에서 열렸다.
“항상 사고 난 자리에 좀 가봤으면 했다. 오늘 이런 위령제를 마련해줘서 고맙긴 하지만, 내 북받치는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외동아들이었던 한상국 중사를 잃은 한진복(59)씨는 내내 바다를 바라보며 넋을 잃은 모습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한씨는 “그동안 추모행사 등에 나갈 땐 울음을 참았지만, 이번에는 3주기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폭발해 지금도 가슴이 펄떡펄떡 뛴다”며 “밥 먹다가도 울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울고, 사진만 봐도 울고, 혼자 산에 올라가서도 운다”고 아들에 대한 그리운 심정을 내비쳤다. “아들이 꿈에 두 번 나왔는데, 몸 건강히 챙기라는 안부의 말을 하더라. 아들은 법 없이도 살 놈이었다. 배 나갔다가 집에 온다고 한 게 마지막일 줄이야….” 한씨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
이날 해상추모제는 참수리호가 침몰됐던 지역에서 남쪽으로 1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진행됐다. 대형 군함이 접경수역에 진입할 경우 북측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격전지 근처에 도착하자 바다도 슬픔에 겨웠는지 100m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 안개가 자욱했다.
함선 비행갑판에서 진행된 추모제에는 전사자들의 유족과 당시 교전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이희완(29) 대위 등 참전자 10명이 참석했다. 헌화식이 진행되자 유족들은 줄곧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천형아 엄마 왔어. 우리천형이 어디 갔어!”, “도현아 아빠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이제 그만 편한 곳으로 떠나거라.” 유족들은 아들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바다를 향해 가슴에 맻힌 말들을 쏟아냈다. 부하와 상관을 잃은 참전 장병들은 그 당시의 비극이 떠오르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임한규 제2전투전단장(준장)은 조사 낭독을 통해 “서해 NLL사수를 위해 순국한 여섯 혼령들이여 시간이 흘러가 그대들이 남긴 조국수호의 강한 의지는 우리 가슴속 깊이 박힌다”며 영웅들의 투혼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렸다.
30여분 간의 위령제가 끝났지만, 일부 유족들은 아쉬움이 남는 듯 한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서후원 중사 부친은 “매일 아들 생각이 난다. 5월 말만 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무너져 내린다”면서 “엄마 아버지가 와서 이름도 불러주고 아들한테 사과도 하고 좋은 곳으로 잘 가라고 소리쳐 불렀으니 아들도 잘 들었을 것”이라고 그리움을 달랬다. 이희완 대위도 "정말 불과 3년 전에 함께 찌그러진 냄비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라를 지켰다"며 동료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3년 전 그 일을 우리 사회는 벌써 잊었다"며 주변의 무관심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유족들과 참전 장병들 사이에서는 교전 당시 침몰한 참수리 357호를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용산전쟁기념관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
|
(konas)
윤경원(코나스 객원기자)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