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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6·25참전용사 정형섭씨에 명예 안보강사 위촉장

전쟁체험수기 "세월을 넘어 사선을 넘어" 저자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5-06-30 오전 1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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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중 총상을 입고 시체더미 속에 버려져 사경을 헤메던 한 학도병이 전장터의 아비규환과 생사를 넘나든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수기를 내고 안보의 파수꾼이 될 것을 자임하고 나섰다.

 1951년 10월 강원도 향로봉 전투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 끝에 총상을 입고 죽음 직전에 살아난 정형섭(73세. 서울)씨가 장본인이다.

 정씨는 29일 오전 재향군인회 이상훈 회장으로부터 향군 명예 안보강사 위촉장을 받았다.

 ▲ 이상훈 향군회장이 29일 오전 집무실에서 정형섭 향군 명예 안보강사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konas.net

 ▲ 정형섭(73세)씨/@konas.net

 정씨는 향로봉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그 해 명예제대 한 후 체신공무원(현 정보통신부)으로 17년간 근무하다 퇴직, 개인사업을 벌이다 지난 89년부터 전쟁 경험담을 바탕으로 군부대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안보강연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이들에 대한 안보교육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6·25전쟁을 바탕으로 한 체험수기 '세월을 넘어 사선을 넘어' 를 써서 작년 국가보훈처가 공모한 보훈문예물 현상공모에서 참전수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촉장 수여후 향군 명예 안보강사로 활동하게 될 정형섭씨와 마주 앉았다. 기자와 마주  앉기도 전에 말문을 연 그는 마치 속사포처럼 당시의 상황을 말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부친이 3·1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해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 정재모 선생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950년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불법 남침하자 18세의 어린 나이로 자진 입대해 미 3사단에 배속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평생 잊지 못할 모리스 소대장을 만났다. 당시 그는 키가 작고 몸이 약해 M1 소총을 어깨에 매면 땅바닥에 끌릴 정도였다고 한다. 해서 소대장이나 미군 병사들이 총도 들어주고 전투화가 너무 커서 끌고 다니다보면 어느 새 피로 물들이고 해 윌리엄 모리스 소대장이 항상 약을 발라주고 하면서 애칭을 '애기군인'(Baby Soldier)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그는 장진호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 강릉탈환 시가전과 영하 20도의 남대천강 도하작전, 설악산 대청봉 1708고지 탈환작전에도 참가했다. 이후 향로봉 전투에 참전 중 날아온 적의 박격 포탄에 온몸이 파편상을 당해 큰 부상을 입었다. 의식을 잃은 그를 당시 부대에 동원된 노무원들에 의해 들것으로 후송되었다. 하지만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어 의식을 잃은 그를 노무원들은 전사한 것으로 알고 인근 계곡에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12시간만에 인근 지역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던 같은 중대의 분대장 장현준 중사에 의해 발견돼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나가는 정형섭씨는 아직도 나이에 맞지 않은 청년 군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41년만인 지난 92년 용무차 장충동 앰베서더 호텔 커피숍을 찾았다가 당시 재향군인회가 초청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참전용사들이 미 3사단 마크가 들어있는 모자를 쓰고있는 모습을 보고 반가움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쪽에서 '베이비 솔저'라는 말을 하며 다가온 모리스씨를 극적으로 만난 추억담을 얘기했다.

 또 생명의 은인 장현준 분대장을 38년만에 상봉한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정형섭 명예 안보강사는 일체의 보수나 강연료를 사양하고 향군의 안보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오직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안보관을 심어주는 것만이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1년간 자신에게 지급된 연금마저도 국가안보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며 국방성금으로 기탁했으며, 불우한 학생들에게도 계속적으로 장학금을 기탁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지금까지 국민훈장, 대통령표창, 한국보훈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Konas)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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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ck247    수정

    정형섭 향군 중앙회 명예강사님 취우치기 어려운 6-25 학도소년병입니다 대한민국 공산군 무력남침으로 초토와될때 학도병들은 배음에 터전을 디로 하고 오직 국가외민족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으로 지원입대 학소년병들입니다 정형섭 강사님 건강하시고!본인도 낙동강 탈환작전 평양 박천 신의주 까지 생존소년병으로 국가를 위하여 생애 노고에 감사올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

    2005-07-03 오후 1:53:30
    찬성0반대0
  • 향군    수정

    사선을 헤쳐온건 인정하겠는데 그래 세월과 사선을 넘나들며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싸우다보면 애초의 원인과 이유는 뒤로하고 서로 죽이기 위해 몰두할 수 밖에 없는것이 인지상정인바 안보를 걱정하고 강연을 하려 한다면 이 나라의 현대사부터 공부하시오...(기밀해제된 미국문서라도 보길..) * 강사란 양반의 글이 무용담만 잔뜩있고 역사의식이나 시대흐름은 없네... 가볍도다. 그대의 글...</title><style>.ar

    2005-07-02 오후 11:34:59
    찬성0반대0
  • foodle    수정

    훌륭하신 분! 안보불감증을 치유할 수 있는 명 의사로서 활동에 기대가 큽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6-30 오후 4:26:11
    찬성0반대0
  • 익산향군    수정

    지난21일 익산향군에서 초청 이리남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하셨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왕성한 활동 본받을만 하고요, 더욱 건강하셔서 이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교훈주시기 바랍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6-30 오후 3: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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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수    수정

    본인도 낙동강 전선에서 함흥수복작전에 최일선 소총병으로 종군한 자원 학병으로서 찹찹하고도,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함흥전선에서 학도병 귀가 방침에 귀가하였으나 중공개입으로 다시 군문에 자원입대(육군종합하교) 참전했으나 하늘의 도움이였는지 몸하나 다치지 않고 예편했으나 훈장이 없다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보훈정책이 이 나라의 보훈정책일진데 병역기피자는계속 늘어날 것이다.</title><

    2005-06-30 오전 11: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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