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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씨 장남, 탄광사고로 다리 골절?!

Written by. 산케이신문   입력 : 2003-10-28 오전 9: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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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가 미국의 비정부기구 인권단체인 디펜스 포럼 초청으로 8일간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27일 오후 로널드 레이건 공항을 통해 워싱턴에 도착했다
일본의 유력지 산케이 신문(28일자)에 의하면, 한국에 망명한 북조선인으로서는 최고위직인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서기의 장남(43세)이 북조선 최북부에 있는 탄광 아오지에서 사고로 다리가 골절, 평양으로 이송되는 사건이 27일 조선반도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알려졌다. 상처의 정도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황씨는 그날 김정일 정권에 관하여 미 정부관계자들에게 증언하기위하여 한국에서 뉴욕에 도착했지만 북조선의 황씨에 관한 협박의 가능성이 있다.

 


황씨는 1남 2녀를 북조선에 두고 망명, 장남은 외아들이다. 북조선에 남겨져있는 황씨의 장남은 최근 사고로 부상, 지방에서 평양으로 이송됐다고 전해진다. 장남의 소식은 북조선의 권력핵심층으로부터 이미 한국측에 전해졌고, 방미 전의 황씨에게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관계자들에 의하면 “장남은 방미중의 황씨의 입을 다물게하기 위한 인질이니까 다른 이야기는 일체 하지말라고 방미중인 황장엽씨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황씨는 미국의 NGO 비정부조직 ‘디펜스포럼’의 초대로 방미가 실현됐다. 약 십일간 의 체류중 볼튼 국무차관, 케리 국무차관보를 방문하고 미 정부관계자나 의회 유력자와 면담할 예정이다. 황씨를 초청한 NGO는 미 정부와의 관계가 깊고, 전 노동당서기의 증언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황씨는 김정일 총서기의 유년시절부터 교육을 담당하였고, 당서기로서 김 총서기의 업무태도도 알고, 북조선을 탈북한 전 간부로서는 총서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전해진다. 자신이 북조선의 권력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권력구조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조선은 황씨의 방미를 적극 경계해왔고, 방미저지를 이유로 한국정부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가해왔다고 전해진다.

 


황씨는 망명자로서는 최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금년 7월까지 정보기관이 신변보호를 해서 ‘특별 보호’자격이었다. 현재는 경찰의 관리하에 있는 ‘일반보호’이지만 24시간의 보호태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북조선은 온갖 방법으로 황씨에게 접촉을 시도했고 이후 6년동안 수차례 전화 등 직간접적으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황씨는 1997년 2월에 북경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에 망명했다. 방미계획은 망명 직후부터 있었지만 98년 이후의 김대중 전 정권은 대북융화의 햇볕정책 때문에 북조선의 의향을 알고, 황씨의 방미를 ‘신변보호’를 이유로 허가하지 않아 황씨는 사실상의 연금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하에서는 “더이상 황씨의 입을 막는 것은 우습다”는 여론의 후원도 있어 겨우 방미가 실현되었다.

 


한편 황장엽씨는 27일 무사히 뉴욕에 도착, 오는 30일 미 의회에서 북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 연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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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원문보기>

黄・元朝鮮労働党書記が訪米 北「長男事故」伝える


証言警戒し口封じ?

 【ソウル=久保田るり子】韓国に亡命した北朝鮮の最高位の高官である黄長●(ファンジョンヨプ)・元朝鮮労働党書記の長男(四三)が、北朝鮮の最北部にある炭鉱、阿吾地で「事故」に遭い足を骨折、平壌に運ばれたことが二十七日、朝鮮半島関係筋の話で明らかになった。けがの程度などは不明だ。黄氏は同日、金正日政権について米政府関係者に証言するため韓国から米ニューヨークに到着したが、北朝鮮の黄氏に対する脅迫の可能性がある。

 黄氏は一男二女を北朝鮮に残して亡命、長男は一人息子だ。同筋によると、北朝鮮に残っている黄氏の長男が最近「事故」で負傷、地方から平壌に移送されたという。長男の消息は北朝鮮の権力中枢からすでに韓国側に伝わっており、訪米前の黄氏にも伝えられている可能性が高く、同筋は「長男は訪米中の黄氏の口を封じるための人質であり、余分なことは話すな、という黄氏への脅迫であることは明白だ」としている。

 黄氏は、米国のNGO(非政府組織)「ディフェンス・フォーラム」の招きで訪米が実現した。約十日間の滞在中、ボルトン国務次官、ケリー国務次官補をはじめとする米政府関係者や議会有力者と面会する予定だ。黄氏を招請したNGOは米政府との関係が深く、元労働党書記の証言は注目を集めている。

 黄氏は金正日総書記の幼年時代から教育係を務め、党書記として金総書記の仕事ぶりも知り、北朝鮮を脱出した元幹部では総書記を最も知る人物とされる。自身が北朝鮮の権力中枢にいたことから権力構造も熟知する。それだけに北朝鮮は黄氏の訪米を極度に警戒、訪米阻止のため韓国政府にさまざまな方法で圧力をかけてきたとされる。

 黄氏は亡命者では最高位であることから、今年七月まで情報機関が身辺保護を行う「特別保護」の資格だった。現在は警察の管理下にある「一般保護」だが、二十四時間の保護態勢が続いている。

 こうした状況下でも北朝鮮はあらゆる方法で黄氏に接触を試みており、この六年間で数回、電話などで直接接触しているとみられている。

 黄氏は一九九七年二月に北京の韓国大使館に逃げ込み、韓国に亡命した。訪米計画は亡命直後からあったが、九八年以降の金大中前政権は、対北融和の「太陽政策」から北朝鮮の意向をくんで黄氏の訪米を「身辺保護」を理由に許可せず、黄氏は事実上の軟禁状態にあった。しかし、盧武鉉(ノムヒョン)政権下で「これ以上、黄氏の口を封じるのはおかしい」との世論の後押しもあり、ようやく訪米が実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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