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未完)의 광복 60주년과 우울한 통일 잔치
오늘(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우리 모두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하나'를 외치는 요란한 함성과 한반도기의 물결 그리고 남북교류를 명분으로 '자주평화통일'을 표방하는 각종 상봉 모임 속에 묻혀 지내게 될 것 같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 준비위원회' 주관 아래 그간 통일연대 등 진보계열의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가 주축이 되어 준비해온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통일대축전'이라는 긴 명칭의 굿판이 벌어진다. 그 어디에도 보수우파(保守右派)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8·15는 광복(光復) 60주년이자, 자유 대한민국 정부 수립 57주년임에 비추어 당연히 태극기의 물결과 '대∼한민국' 연호(連呼)로 자축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도 상황은 전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개막식(14일)이 끝나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한 통일축구가 특히 그렇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북한 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행사의 주빈은 북한당국이 보내는 2백명과 반한(反韓)활동 인물들을 다수 포함하는 해외인사 1백50명이다. 장충체육관과 광화문 일대에서는 행사 시작을 알리는 '통일대행진'이나 '광복 축하공연'장소 그리고 여성·학술·농민·노동·청년·교육 등 각 부문에서 남북교류를 명분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모임에서도 이처럼 어줍잖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2003년 대구(大邱)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각 경기장들은 남북이 외치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함성으로 넘쳐났다. 북측의 미녀 응원단이 '우리는'을 선창하면 남측 관중들은 '하나다'를 연호했다. 북측이 '우리 민족끼리' 하면 '조국통일'로 화답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저들의 용의주도한 심리전과 감성 마케팅에 놀아났었다.
이번 남북축구전에서도 '딱딱이'와 탬버린, 분홍 고깔과 녹색 부채 등의 응원도구가 흥을 돋울 것이고, 친북 계열 시민단체원들의 파도타기가 함께 어우러져 경기장 분위기를 주름잡을 것이며, 관중은 통일이 불원간 현실로 다가오기라도 하는 양 착각 속에서 며칠을 보낼 것이다.
세칭 진보계열 단체의 슬로건이 다 그렇듯이 이번 행사의 키워드 역시 '통일'이다. '통일대축전' '통일축구' '통일대행진' 등 접두어(接頭語)는 모두가 '통일'이다. 축하공연과 만찬 및 각종 모임 명칭에도 '통일' 두 글자는 붙어 다닐 것이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어휘를 떠올릴 때마다 분단의 비애를 되새기고, '미완(未完)의 광복'을 서러워하며, 조국의 미래에 대한 열망을 불태운다. 선뜻 뿌리치기 힘든 호소력을 지닌 낱말이다. 하지만 통일이 구호나 열정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통일'이라는 낱말이 우리들의 의식과 정서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세월 가슴속에 다져온 우리의 안보의식을 무장 해제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여전히 대남(對南)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건만, 우리는 옷깃을 풀어헤치기에 바쁘다.
통일은 전략적으로 그 해법(解法)을 강구해야 할 명제일 뿐, 감성적인 접근으로 해결할 명제(命題)가 아니다. 그것이 국민 대다수의 솔직한 정서(情緖)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관습적으로 '통일 타령'을 하고 있다.
'통일'이라는 낱말은 진정 우리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서고 있는가. 우리 정부의 통일에 대한 현실 인식과 입지(立地)는 어떤 것인가.
외국의 지성(知性)들이 보는 관점은 이렇다. "한국은 인도주의 명분 아래 북한에 '아낌없는 퍼주기'(largesse pumping)를 하면서도 정작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를 원치 않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북한에서 민주적인 봉기(혁명)가 일어나 북한체제가 동요하는 일이 없이 정치적으로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인식이기도 할 것이다.
독일식 통일이 가져온 갈등(葛藤)을 보아온 우리사회 식자층(識者層)은 통일을 '하나의 재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통일 이전에 남북한간의 극심한 '삶의 질(質) 격차'가 해소되어야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원하는 것은 '통일'이거나 '일시적인 평화유지'도 아닌, '평화구축의 틀'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친북좌경(左傾)세력의 '자주·평화·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자주(自主)는 '민족공조' 또는 '우리민족끼리'이고, 평화(平和)는 '말만의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주장이며, 통일은 '남조선해방(=적화통일)임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좌경세력이 지난 반세기 이상 뇌까려온 '통일'은 바로 이것이다.
'대북 퍼주기'를 자금지원을 통해 북한사회가 변화될 것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견해를 지닌 이들은 매우 적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대북(對北) 화해무드 조성' 명분 아래 행해지고 있는 '북한 눈치보기'라는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들은 북한동포의 인권문제와 굶주림 외에는 북한에서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하든 상관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먼 미래로 연기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있음을 의미한다.
정부 고위층에서는 이번 '8.15 민족통일대축전'을 "남북이 50여년 걸려 모처럼 마련된 평화공존무드"라고 반기는 눈치이지만, 그것은 북한의 대남 통일전략을 모르는 전후(戰後)세대의 안이한 사고(思考)일 뿐이다.
국민은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공적으로 내세우거나 국민에게 '통일의 허상(虛像)'을 주입시키기보다는 대북(對北)관계의 명확한 지향점을 제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통일'은 단순한 정치적 용어이거나 흥취를 돋우기 위한 노래 가락이 아니라, 범국민적인 합의(合意)가 실린 전략적 접근의 산물(産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상적인 안보관에 기반한 우려와 주장까지도 '레드 콤플렉스'로 몰아붙이는 우(愚)를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은 현 정권의 안이한 대북(對北)인식과 편향적인 시각에 지쳐있음을 알아야 한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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