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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뜨거운(?) 김일성 예찬론

EBS방영,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올기강은 흐른다'편에서

Written by. 김필재   입력 : 2005-08-22 오후 2: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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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이 EBS(교육방송) '해방 60주년 특집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의 18일자 방영분인 '올가강은 흐른다'에서 김일성을 예찬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 김용옥은 길림성등 중국 현지를 방문해 "김일성은 동북항일 투쟁의 젊은 기수"이며 "조선인 유격대가 공산주의를 새로운 국가적 이념으로 받아들인 것은 절망 속의 절규였다"는 등 김일성과 공산주의를 칭송했다. 한편 도올은 19일 방영된 '황포의 눈물'편에서는 사회주의 계열의 여운형을 "완전 현대교육을 받고 철학 영문학 서양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20세기 지식인"으로 예찬했다. <편집자주>

 다음는 이날 도올의 해설 내용 요약

 ▲ 도올 김용옥

 『김일성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분명히 존재한다. 그를 신화화시키는 모든 노력이 궁극적으로 김일성이라는 인물의 역사적 의의를 실추시켰다. 김일성은 동북항일 유격투쟁의 젊은 기수로 수 없이 많은 조선의 항일 투사중 한 사람이었다.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아버지 김형직, 어머니 강반석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김성주' 였다. 김일성은 약산 김원봉(사회주의 계열) 보다도 14살 아래 이니까 독립운동가 열전 중에서는 가장 어린 세대에 해당된다.

 이런 단순한 역사적 사실도 망각하는 역사가들은 엄정한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김일성은 金日成이 아닌 金一星인데 이러한 철자상의 오류 때문에 김두한이 좌파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백색테러를 일으킨 것이라면 불행한 일이다.

 "김일성은 침착하고 식견있는 학생(?)"

 "고등학교 시절의 김일성은 매우 조숙한 학생이었다. 성주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다부지고 총명했다. 침착하고 식견이 있었으며 무엇인가 깊은 민족적 한이 가슴 밑바닥에 서려있는 것 같았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가운데 이 김성주라는 학생이 가장 인상깊었다."(김일성의 국어 교사 '상월'의 증언 인용)

 김일성이란 사람은 분명히 항일투사였고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매우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숭실 학교를 나올 정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기독교인이었고 순수한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김일성이라는 16살의 소년은 (용문 중학 재학시절)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던 학생이었고 독서회를 조직 좌경(左傾)서클을 만들어 활동했다.

 "안창호의 실력 양성론은 자기비하 논리"

 김일성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엄마 아버지 다 자식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엄마는 어린 김일성이 목사설교가 재미없다고 교회 안 가겠다고 하면 마음대로 하라 하고는 예수 믿는 것보다 나라 위해 큰 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엄마는 (김일성이) 왜 교회를 가느냐고 물으면 "죽은 후에 천당 가서 뭐하겠니 사실은 좀 피곤해서 쉬자고 간다"고 말했던 온화하고 조용한 여성이었다.

 192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길림에 왔을 때 시국강연을 하고 일경에 체포된 적이 있다. 이 당시 유명한 일화가 당시 김일성이라는 소년이 이 강연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도산 안창호에게 질문을 종이쪽지로 보냈는데 이에 도산 안창호가 김일성의 질문에 대답을 못해 강연이 흐지부지됐다. 이 내용이 좀 과장되었다고 해도 16세의 소년이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도산 안창호에게 질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산 안창호의 실력양성이라는 논리의 저변에는 우리민족은 아직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만큼의 실력이 안 된다는 자기비하의 논리가 숨어있다. 그것은 자각론의 변형이며 진화론의 병폐이다. 이것은 변절자의 변명일수도 있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자각론자 위암 장지연이 후에 그토록 가증스런 친일변절의 붓을 놀렸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는 것이다.

 "김일성의 소련 행(行)에 대해서는 할 말 없어"

 도산과 김일성의 대결의 장면에서 이미 김일성의 생애가 항일유격활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활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분기점이 암시되고 있다. 동북항일연군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동북(지방)에서는 수 없는 조선인 유격대가 조직되기 시작했으며 공산주의를 새로운 국가적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절망 속의 절규'였다.

 1928년 12월 코민테른은 인텔리 중심의 공산운동을 지양했다. 이에 따라 조선 공산당이 해체되고 항일유격 활동을 하던 조선인들은 중국공산당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영민한 김일성은 중국인민과 더불어 공동투쟁을 벌여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중략) 항일연군 와해 이후 김일성은 하바로프스크로갔다. 김일성의 소련 행이 우리 민족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나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konas)

 정리: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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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구하고 똑같은 놈이 또 나타났구나! 에라이!</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8-23 오전 8: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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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구를북으로    수정

    만경대 정신에 이은 김일성 항일독립 투사론이구만...정말 왜들이러나? 그래서 지금 북한이 잘 살고 있나? 고난의 행군 열심히들 해라~~~</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8-22 오후 8: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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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도올!!!    수정

    아색끼래 생긴거하고는 꼭 말라빠진 쥐색끼 같아 가지고서리...</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8-22 오후 8: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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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저자식은 생긴것 부터 그렇터니 결국 저렇게 나오는 구만. 에라이 "똘만아"</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8-22 오후 8: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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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저자식은 생긴것 부터 그렇터니 결국 저렇게 나오는 구만. 에라이 "똘만아"</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8-22 오후 8: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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