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실익이 없는 국내정치문제에 얽매여 있거나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주술(呪術)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안보 불감증'을 넘어 '안보무시 증상'을 탓해야 할 것 같다.
최근의 변화 흐름을 (1)남북(南北)관계와 (2)미북(美北)관계 및 (3)동북아(東北亞)동향으로 구분하여 개괄하여 살펴보자.
먼저 <남북관계>-. 서울에서 열렸던 이른바 '민족대축전'이라는 명칭의 8·15 행사에 참가했던 북한 대표단은 미처 예기치 않았던 파격적인 행보(行步)로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북측은 3박4일의 8·15 행사 기간 내내 관례를 깨는 이벤트를 잇달아 연출했었다.
'국립현충원을 방문하여 현충탑 앞에서 묵념'을 올린 것은 물론, 헌정사상 처음 이루어진 국회방문 그리고 그 다음날 청와대 예방 시 노 대통령과의 오찬 등은 이제까지 전례 없던 일들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북측의 '파격'은 대표단의 행보만이 아니었다. 8·15행사를 이틀 앞두고 뒤늦게나마 군사분계선 155마일에서 선전물을 들어냈고, 남측 해군사령부와 24시간 통화 가능한 군사 핫라인을 개통했는가 하면, 북한 상선이 우리 정부와의 동의 아래 처음으로 제주(濟州)해협을 통과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다.
북한의 이 같은 제스처가 민족공조를 내세워 남한의 반북(反北)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자 하는 국면 전환 의도에 한술 더 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가고있는 위기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전술임이 분명하다. 북한은 이미 4차 6자회담 휴회 중 한미간 공조체제 교란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민족 문제를 외세개입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면서도 미국과의 회담을 고집하며 한국정부를 대화의 파트너로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전례에 비추어본다면 최근의 '통남통미(通南通美)'정책은 상당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 <미북(美北)관계>는 어떤가. 4차6자회담을 계기로 미북(美北)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당면하여 그들의 대미정책은 과거와는 달리 눈에 띄게 유연해졌다.
미국의 대북(對北)태도에서도 변화를 읽을 수가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미 국무부 東亞太 차관보)가 지난 7월 30일 북한과 미국의 6자 회담 대표단이 베이징의 북한 식당에서 함께 만찬을 가졌다. 그것까지는 '유화적 제스처'라고 치자.
그러나 그가 지난 8월17일 워싱턴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구상을 언급했다. "정전(停戰)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북한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점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견지해온 대북(對北)태도와는 크게 다른 놀라운 변화이고, 미북(美北)간에 데탕트 기미가 엿보이는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북한의 평화공세나 평화협정 주장은 바로 '외세배격'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 북한의 핵 개발은 '주한미군 철수'와 이른바 '남조선 해방'을 노린 적극적인 대응책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바로 이 주장에 미국이 감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그 추이에 대해 결코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대의명제(大義命題)이다.
북한 또는 한반도를 대(對)중국 견제 전략기지로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미국의 이해(利害)에 북한이 반응하고 있는 양상이다. 미북(美北)간에 무언의 교감(交感)이 오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시그널들이다. 북한이 그들의 맹방 중국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변화 조짐이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에서 일고있는 흐름으로 지난 8월 8일간 블라디보스토크와 산동(山東)반도 주변해역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실시한 연합군사훈련은 21세기 한반도를 포함한 동(東)아시아 안보질서에 큰 획(劃)을 긋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대만(臺灣)위기를 상정한 해상봉쇄훈련을 해온 중국과 베링 해역 등에서 대(對)테러작전을 표방해온 러시아가 한반도 외곽에서 공동으로 훈련에 나선 것은 동북아에서의 미일(美日)의 패권 견제에 일차적인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의 국가목표 달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요인들이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과거사 캐기'와 국내정치문제의 와중(渦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미동맹관계를 전략적으로 재조정하고 냉각된 한일관계를 추슬러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우호적 국제환경 조성에 힘써야 하는데도 그렇지가 않다. 안보환경의 급변에 눈을 부릅뜰 때이다.(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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