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그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다
구국의 은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9월 15일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 55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인천상륙작전에 한국 해군의 704함 부장(副長)으로 작전에 참전했다.
특히 내가 금년 들어 그 기억을 되새기며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되는 것은 인천 자유공원에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철부지 시민단체들의 주장 때문이다. 재야 반미단체들의 맥아더 동상 철거시도가 국민에게 미치는 심리적 파장은 결코 적지 않다. 이들은 "6·25때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민족은 분명히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은 6·25전쟁 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수호하여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공적으로 인해 한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정으로 새겨져 있다. 그는 탁월한 군사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고결한 성품과 자유·반공의 확고한 신념, 그리고 용기와 결단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또한 누가 무어라 해도 명석한 결단과 용기로 그가 기획하고 직접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불리한 전황을 단숨에 뒤집어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한 은인이 분명한데 이러한 논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의 동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주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꺼지지 않는 자유의 불꽃'으로 상징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훼손되는 것을 사전에 철저히 방지함으로써 언제까지나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늠름하게 서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상징 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높은 평가는 아주 많다.
일찍이 영국의 역사가인 데이비드 리즈는 인천상륙작전을 '20세기의 칸네 전투'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이는 BC 216년에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칸네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한 로마군을 전멸시킨 완전한 전술적 승리의 전례인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적전선(敵戰線) 배후의 깊숙한 지점에 충격적인 상륙 돌격을 감행함으로서 북한군의 교통·통신선과 병참·보급체계를 파괴하고 제2전선을 형성하여 워커 장군의 부대가 부산 최후 저지선으로부터 북방으로 공세 이전, 진격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준 것이다.
맥아더가 이 전략적 우회기동의 아이디어를 미 합참을 비롯한 각 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득시킨 45분간 스피치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가 결론으로 "인천상륙작전은 실패(失敗)하지 않는다. 반드시 성공(成功)한다. 이로서 수 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라고 말을 끝냈을 때 회의 참석자 모두는 감동을 받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였다.
이 작전은 월미도 선점(先占), 인천항 적전(敵前)상륙, 김포 비행장 점령, 서울 탈환의 4단계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이 작전이 순전한 맥아더의 결단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우리나라의 번영의 은인으로서 그를 기억하고 동상을 바라보면서 처절했던 그 당시를 회고하는 일이야말로 당연한 일이다.
인천의 자유공원 안에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 동상은 지난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에 제막되었다.
원래 이 공원은 인천항 개항 5년만인 1888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그 명칭이 만국공원(萬國公園)이었는데 맥아더 동상을 세우면서 지금의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난 2001년부터 인천의 일부 시민 단체들이 자신들이 '평화도시'로 선언한 인천의 대표적인 공원에 전쟁 기념물이 있는 것은 문제라면서 동상을 도심에서 떨어진 월미도의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으로 옮기거나 아예 철거할 것을 주장하여 왔다.
그러다가 올해에 들어와서는 몇개 재야단체가 동상이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며 거의 매일 철거 운동을 벌여 이에 대해 많은 애국시민들과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해병대전우회 등이 강력히 반대하여 동상 사수를 결의하고 있다.
이렇게 간헐적인 시위를 벌이다가 급기야 지난 7월 15일 17일 벌어진 양쪽의 모습에 대해 '정말 쓸데없는 일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이 얼마나 우리 민족을 걱정하고 사랑했는지 미 해병대의 한국전 참전 이야기를 담은 『피의 길, 승리의 길, 영광의 길』(이성호 저·설우사·2005년)에서 인용해 본다.
맥아더 원수는 한국전쟁 발발 후 서울이 인민군에게 함락될 무렵에 한국전쟁의 실제 상황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그의 공군 전용기인 바탄호에 몸을 실었다. 수원 비행장에 착륙한 맥아더 원수는 지프차 편으로 최전선인 한강 방어선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그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한국군은 인민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대전으로 천도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군은 거의 대적할 수 없을 만큼 인민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사태는 매우 절망적이고 절박한 궁지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음산한 날씨와 우울한 소식 등으로 무거워진 나의 마음은 영국 아시아 함대가 나의 지휘 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서울은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고 …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한강 건너편 둑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보이는 광경은 참으로 비참하였다. …
도로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참한 모습을 한 피난민의 물결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애통하게 울부짖거나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에는 몇 세기를 두고 침착하게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해 온 강인한 민족의 후예들이 걷고 있었다. …
겁에 질려서 눈을 크게 뜨면서도 울지 않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남쪽을 향하여 무거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1시간 동안이나 내가 이어받은 파국의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았다. 피에 젖은 이 언덕에서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작전을 짜냈다. …"
그가 기획하고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적화 통일 기도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자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지켜낸 기념비적 사건이다.
나는 그 노병, 맥아더 원수가 퇴임식에서 밝혔듯이 '죽지 않고 한국민 우리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리라"고 확신한다.(konas)
공정식(제6대 해병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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