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이기고 심청 효행상에 뽑힌 여고생 김민선양
“엄마가 다 나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거예요. 심청이처럼 인당수에 뛰어드는 것이라도….”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또다시 김민선(17·인천중앙여상 3)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는 바로 옆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수면제 때문이었다. “약을 안 드시면 통증 때문에 잠을 주무시지 못하거든요.”
김양의 유일한 가족은 병든 어머니뿐이다.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 각종 자격증을 8개나 따냈다. 김양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7회 심청 효행상 본상 수상자로 뽑혀 오는 29일 상을 받는다. 심청 효행상은 청소년들에게 효(孝)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가천문화재단 이길여 이사장이 1999년 제정했다. 올해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한 박순미(경남 한일전산여고3)양과 김민선양 등 7명이 대상·본상·특별상을 받는다.
철조망을 만드는 일을 하던 김양의 아버지는 중학교 1학년 때 급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가 하늘나라 가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아무리 꿈이라고 혼잣말을 해도 소용 없었죠.”
그 뒤 어머니가 파출부 일에 뛰어 들었지만 당뇨 합병증으로 드러누웠고 김양의 가정은 점점 더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김양이 고교 1학년때 어머니가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다리까지 다쳤다. 어머니의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점점 썩어 들어갔다. 당뇨 합병으로 인한 괴사 증세였다. 김양의 어머니는 지난해 말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살던 집을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수술비를 댔다.
“학교 끝나고 병원에 갔다가 엄마 모습 보고 너무 놀랐어요. 하지만 엄마 앞에선 울 수 없었어요.” 또다시 김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수술 후 회복될 때까지 학교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계속 됐다.
퇴원 후에는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만성신부전으로 어머니의 신장이 점점 안 좋아졌던 것. 지금도 김양은 매주 한번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아간다. 수술 부위의 치료와 신장 치료를 위해서다. 아침·저녁 식사를 차리는 것은 물론 온 집안 살림은 김양의 몫이다. 며칠 전 추석 때 아버지 제사상에 차리는 음식도 모두 혼자 만들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정보처리기능사, 전산회계운용사, 오토캐드 1급 등 자격증을 8개나 따냈다. “자격증이 있으면 취직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취직해서 어머니께 맛있는 것 사드리는 것이 꿈이예요.”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모범상을 받았고 학급 반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김양 가정의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매달 30여만원이 전부. 월세 12만원을 빼고 나머지 돈으로 빠듯하게 한 달을 살아간다. 쌀은 동사무소에서 저렴하게 구입하고, 반찬 등은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갖다 주곤 한다. “도와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죠. 받은 것 이상으로 베풀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어요.”
김양은 자신이 효행상의 주인공이 된 것을 쑥스러워했다.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
김민선양의 얼굴에선 그늘을 찾을 수 없었다. “제가 처한 환경에 대해 원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저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따름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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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뜨거워 지는군요. 그러면서 제 자신도 한번 돌아보게 되고요. 세상에는 어쩌면 이렇게 훈훈하고 따뜻한 얘기들이 있을까요. 그래서 세상은 살맛이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민선양 더욱 힘내시고 굿굿하게 사세요. 오늘의 힘듬과 고행은 내일의 달디단 열매로 꽃을 피울것이외다. 홧팅</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
2005-09-23 오후 2:5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