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대남 媚笑戰略의 眞意를 검증한다
2003년2월25일 출범 시점에서의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북관계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매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상황은 그 보다 1년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긴장이 축적되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는 2002년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평양방문에서 우라늄 고농축 의혹이 불거진 뒤 급속도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북한은 12월12일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한 데 이어 다음 해인 2003년1월10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강수(强手)를 이어 갔다.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둔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그 해 1월27-20일 임동원(任東源) ‘특사’를 평양으로 보냈지만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하루 전인 2월24일에는 동해상으로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하고 3월2일에는 북한공군의 미그 전투기가 미군 정찰기에 근접 비행을 감행하는 등 강수를 멈추지 않았다. 2003년의 남북관계는 이렇게 지나갔다.
그런대로 남북간에 2003년 중에는 제10차(4.27-29/평양), 제11차(7.9-12/서울), 제12차(10.14-17/평양), 그리고 2004년에 들어 와서는 제13차(1.3-6/서울), 제14차(5.4-7/평양) <장관급 회담>이 진행되었고 <장성급 군사회담>도 두 차례(제1차: 5.26/금강산; 제2차: 6.3-4/설악산) 열렸으며 7월3일부터는 ‘금강산 당일 관광’이 시작되고 7월11-16일에는 금강산에서 제10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8월14일에는 그리스 아데네 올림픽 개/폐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전반적으로 냉랭했다.
2004년7월 김대중 정부 때부터 통일부를 지켰던 정세현(丁世鉉) 장관이 퇴장하고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후보 경합자의 하나인 정동영(鄭東泳) 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북한의 반응은 오히려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남북간에는 엉뚱한 일로 파열음(破裂音)이 일어났다. 노무현 정부가 7월5일인 김일성(金日成) 사망 10주기에 즈음하여 남측으로부터의 조문(弔問)을 허용하지 않은 데 대해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7월8일자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이름으로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9일에는 7월13-15일 속초(束草)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제5차 <남북해운협력실무접촉>을 일방적으로 연기시킨 데 이어 19일로 예정되었던 제3차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 회담>을 무산시켰다.
설상가상으로 7월27-28일 베트남으로부터 468명의 탈북자들이 대거 한국으로 입국하자 북한은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조평통>은 29일 다시 한국의 탈북자 입국 허용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담화를 냈고 9월5일에는 김일성 조문 불허와 탈북자 입국 허용을 이유로 <민주노동당> 대표단의 북한방문을 불허했다. 2004년2월10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의 형식으로 빌어 “핵무기 보유”와 함께 “베이징 6자회담의 무기한 불참”을 공식 선언하는 강수로 핵을 둘러 싼 한반도 긴장의 수위(水位)를 더욱 끌어 올렸다. 이 동안 정동영 장관의 통일부는 ‘개점휴업’이었다. 정 장관은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북한에게 ‘러브 콜’을 보냈지만 북한의 일관된 반응은 ‘일축(一蹴)’이 아니면 ‘무시’와 ‘묵살’이었다.
그러나, 이 동안 북한은 움직이고 있었다. 표면상의 ‘일축’과 ‘무시’와 ‘묵살’의 뒤 안에서 북한은 한국에 새로이 들어선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그리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대한 <길들이기>는 해가 2004년으로부터 2005년으로 바뀔 무렵 일단 마무리되었다. <길들이기>의 성과 측정을 위한 ‘시금석(試金石)’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5년1월13일 북한적십자회를 통한 “비료 50만톤 지원 요청”이 그것이다. ‘올리브 잎’도 연달아 등장했다. 북한은 북한수역에서 침몰한 한국 화물선 구조 선박은 물론 구조 경비정의 투입도 허용했고 월북 어선 및 어민을 남측으로 귀환시켰다.
드디어 ‘대박’이 터졌다. 그 동안 북한이 ‘무시’ㆍ‘외면’으로 박대했던 정동영 장관의 방북이 실현된 것이다. 이에 앞서 남북은 북한의 제의로 5월16-17일 개성에서 <차관급 회담>을 열어 제15차 <장관급 회담>을 6월21-24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고 5월24일에는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 행사’에 남북의 <당국 대표단>을 참가시키는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협의>가 개성에서 열렸다. 정동영 장관의 방북은 6월14-17일 평양에서 열리는 <6.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하는 <당국 대표단> 단장의 자격으로 이루어졌다.
북한은 이 <축전> 마지막 날인 17일 정 장관이 ‘특사’의 자격으로 김정일(金正日)과 단독 면담을 갖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갑자기 입을 함빡 벌린 북한의 대남 미소(媚笑)작전의 클라이맥스였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경수로를 포기하는 대가로 직접 송전 방식으로 전력 200만 kw를 제공하겠다”는 ‘진상품(進上品)’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정 장관이 김정일에게 ‘진상’한 것에는 다른 것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다루는 한 고위 책임자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정 장관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은 ‘우리 민족끼리’다”라는 북한의 해석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끈덕지게 요구하는 ‘민족공조’를 노무현 정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김정일도 주는 것이 있었다. 김정일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면서 “필요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생각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생각이 있으며” “6자회담 복귀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7월12일 그의 ‘대북 전력 제공’ 제안을 ‘중대제안’이라는 ‘포장지(包裝紙)’에 싸서 공표했고 북한은 7월26일부터 제4차 베이징 6자회담을 여는 데 동의했다.
북한의 대남 미소전략은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8월14-17일 서울에서 있었던 8.15 <민족대축전>이라는 이름의 <남북 공동행사>를 통해 만개(滿開)되었다. 김기남(金基南) 노동당 비서가 이끄는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평통> 부위원장이 이끄는 <민간 대표단>은 3박4일의 서울체류 기간 중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국회를 방문하며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병문안을 하고 직능별 개별 접촉을 갖는 등 전에 없던 행보(行步)를 보여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에서 이들을 접견했다. 그러나, 이들의 미소 행보는 단순한 미소 행보가 아니었다. 이들의 행보는 그 동안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북한이 뜸을 들였던 <길들이기>의 효과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행보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현장 확인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3년 후인 2003년9월 이미 “이제 6.15 선언으로 남조선은 우리가 먹었다”는 판단을 <노동당>의 대외비 내부문건에 담고 있었다. 여기서 북한은 “남조선에서는 이제 반공보수(反共保守) 세력은 밀려나고 친공연북(親共聯北) 세력이 주류가 되었다”고 선언했었다. “남조선에서는 보천보 전투를 비롯하여 김일성의 항일혁명 투쟁 역사가 백과사전은 물론 학생들의 교과서에까지 공개적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조선인민들은 외세와의 공조를 배척하고 ‘민족공조’로 나가고 있어서 이제는 전쟁이 나도 미국 편에 설 것이 아니라 북한 편에 서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로부터 2년이 더 경과한 뒤, 더구나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가 마무리된 뒤에 이루어진 8.15 <민족대축전> 서울 나들이는 바로 이 같은 ‘남조선의 좌경화(左傾化)’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2005년8월15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남의 <친공연북> 정권과 북의 <수령독재> 정권이 ‘야합’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을 또 다시 ‘좌(左)ㆍ우(右’)로 ‘분열’시킨 새로운 ‘민족분단’의 현장이었다.
나흘에 걸친 ‘남북 공동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한민국 수도 서울 곳곳에서는 ‘좌’와 ‘우’가 처절하게 대치ㆍ대결했던 60년 전 ‘해방공간(解放空間)’의 악몽이 재현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좌’의 편이었다. 국립묘지와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한민국’의 ‘국호’와 ‘국기’인 ‘태극기(太極旗)’가 ‘대한민국’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고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던 ‘태극기’를 ‘압수’ 당한 애국청년들이 시위진압 경찰의 포위와 ‘닭장’ 차 안에서 갇혀 있는 동안 북한 ‘인공기(人共旗)’는 ‘보호’의 대상이었다.
‘남북 공동행사’가 진행된 곳곳의 현장에서 북에서 온 독재자 김정일의 ‘사절(使節)’들과 남의 ‘친북ㆍ좌익’ 세력들이 작당하여 공공연하게 “주한미군 철수”ㆍ“국가보안법 폐지”ㆍ“연방제 통일” 등 친북 구호들을 소리 높여 연호ㆍ합창했고 인터넷의 ‘좌익’ 세력 홈페이지에서는 김정일을 찬양하는 글이 난무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단속하지 않았다. 광복 60주년에 즈음하여 조선일보가 한국갤럽과 함께 실시한 <신세대(16~25세) 민족주의에 관한 조사>는 응답자의 65.8%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경우 “북한 편에 서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응답자는 28.1%에 불과했다.
남한 땅에서는 지금 북한의 사주(使嗾) 아래 이루어지는 주한미군 철수 투쟁이 곳곳에서 가열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항도(港都) 인천에서는 맥아더 동상(銅像)을 끌어내려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는 ‘친북ㆍ좌익’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 하는 애국시민들이 몸으로 대치ㆍ대결하고 있고 평택에서는 죽창을 비롯한 각종 흉기로 무장한 ‘친북ㆍ좌익’ 세력들이 전국 각지로부터 집결하여, 심지어는 출처불명의 돈으로 토지까지 사들이면서, 주한미군 기지이전을 폭력으로 저지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한의 노무현 정부를 <친공연북> 정권으로 변질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자만(自慢)하는 김정일의 북한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길들이기>의 창끝을 남한의 민간부문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동안 현대(現代)의 말썽 많은 대북 ‘퍼주기’를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특정 자연인의 비리에 기인한 진퇴를 둘러싸고 북한과 현대 사이에 최근 전개되고 있는 있을 수 없는 ‘신경전(神經戰)’은 그러한 시각에서 우리의 심각한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다. 지금 문제의 특정인은 북의 김정일 정권과 남의 노무현 정권의 공공연한 비호를 등에 없고 당당하게(?) 그에 대한 인사조치의 취소를 현대에 요구하고 있다.
만약 노무현 정부와 현대가 현대에 대한 북한의 이 같은 <길들이기>를 묵과하고 용납한다면 우리는 그 뒤에 올 사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고무(鼓舞)되는 북한의 김정일은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때 “어느 특정 정당이 이기면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이러난다”는 식의 공갈(恐喝)로 우리 유권자들을 협박함으로써 그의 구미(口味)에 맞는 <좌파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환상(幻想)을 갖게 될 염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김정일의 북한의 노림수는 역시 한국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는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선거에 그 과녁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김정일과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의 관심사는 ‘동심원(同心圓)’을 그리고 있다. 한국의 <좌파 정권>의 재창출이다. 그러나 이 ‘동심원’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노무현 정부의 누적된 실정(失政)의 결과로 <좌파 정권> 재창출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는 20%선이 붕괴되고 있고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절반을 밑도는 형편이다.
이렇게 되자 정가(政街)에서는 강한 투기꾼 기질의 노 대통령이 내년 1월 <열린우리당> 탈당(脫黨)에 이은 대통령직 조기(早期) 사임으로 ‘쓰나미(津波)’ 정국을 조성하여 난국을 타개하는 또 한 차례의 ‘올인’ 작전을 궁리 중이라는 시나리오가 회자(膾炙)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이 궁지(窮地)에 몰린 노 대통령의 <좌파 정권>에게 남은 유일한 활로는 북의 김정일과의 ‘협력’을 통한 ‘민족공조’라는 허구(虛構)의 조작으로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청소년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낚시질 해 보는 것뿐이다.
김정일의 대남 미소 전략이 지향하는 종착역(終着驛)은 어디인가?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아니면 일부 호사가(好事家)들 사이에 훤전(喧傳)되고 있는 시나리오처럼 노 대통령이 스스로의 사임으로 내년 5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맞물려 실시되는 조기 대통령선거에서, <친북ㆍ좌파 정권>을 재창출시키고 <보수ㆍ우익> 세력을 결정적으로 ‘몰락(沒落)’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재창출되는 <좌파 정권>이 이끄는 대한민국을 북의 김정일 독재정권의 유지와 연명에 필요한 재화(財貨)와 물자(物資)를 공급하는 ‘젖소(Cash Cow) 목장(牧場)’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김정일 독재정권의 유지와 연명을 위한 ‘젖소 목장’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역할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지금의 <친북ㆍ좌파> 정권에 의하여 시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동영 장관이 말하는 최소 6조5천억 내지 최대 9조5천억 원 상당(相當)이라는 대북 전력 지원에 더 하여 실제로는 얼마나 더 늘어날 지 알 수 없는 천문학적(天文學的)인 액수(額數)의 “달라고 하기만 하면 퍼 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대북 경제원조 실태(實態)가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심판이야 말로 앞으로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출처:프리존]
李東馥 (명지대 교수,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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