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법무는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말라
천정배(千正培) 법무가 전례 없이 파격적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조간신문에 게재된 그의 사진 모습은 유별했다. 웃는다기보다는 홍소(哄笑)에 가까웠다.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상대방에게 한방 먹이고서 쾌재를 부르는 표정이 이보다 더할까 싶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서 검찰의 반발이 없을 것을 자신하는 표정이었다. 그 웃음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지극히 의문이다.
문제는 천 법무가 '수사지휘권이라는 칼을 올바르게 휘둘렀는가' 그리고 '과연 적시(適時)에 칼을 휘둘러도 좋을 상황에서 휘둘렀는가'에 있다. 또 그 칼이 '검찰권의 남용(濫用) 방지용 칼'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압력용 칼'이었는지가 정당성을 판단하는 잣대(尺度)가 될 것이다.
결론은 천 법무가 칼을 휘두를 때도, 또 그런 텃밭도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칼을 휘둘러서 좋을 처지가 아닌데도 칼을 빼든 것이다. 그는 묘방(妙方)을 찾아냈다고 홍소했겠지만, 그의 웃음은 전적으로 파렴치한 것일 수밖에 없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만에 하나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濫用)할 때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거나 또는 검찰이 외풍(外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검찰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로 검찰수사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 주어진 법률적 장치일 뿐, 검찰을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라고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정권의 법무장관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와도 같은 비장무기를 검찰이 십분 소신껏 행동하고있는 시점에서 당초 목적과는 달리 검찰에 정치적 압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함부로 드러내어 칼춤을 춘 것이나 다름없다.
천 법무는 법무부장관이기 이전에 특정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이다. 그가 과연 "나는 법률적 결단을 내렸을 뿐,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천 법무는 법(法)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속해있는 정당과 정권의 비호를 믿고 칼을 뽑아들어 좌익교수를 비호하려 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구속되는 피의자들이 '주거(住居)가 일정치 않거나, 증거 인멸 또는 도주 우려가 있어서 구속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은 원론을 말하고 있을 뿐, 죄질(罪質)이 나쁘면 구속감이다. 강정구씨는 잡범(雜犯)이 아니다.
이번 강정구씨 건(件)은 더욱이 그 법의 존폐(存廢)를 두고 여(與)와 야(野) 그리고 현정권과 이 땅의 대다수 선량한 국민이 팽팽히 대립되어 쟁투하고있는 정치적 성격이 짙은 국보법과 관련된 공안(公安)사건이다.
강정구씨는 4년 전(2001년) 북한 방문 길에 만경대에서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후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터에 또 다시 대한민국을 능멸하는 발언을 일삼아온 편집적인 친북(親北)인물이다.
이 나라 법무행정의 수장(首長)인 법무부장관이 '검찰의 총알받이'를 자청하지는 못할망정 한 사람의 좌익 교수와 등을 나란히 하고서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이라는 칼을 빼들고 여봐라는 듯이 홍소하는 것은 올바른 공복(公僕)의 모습일 수가 없다.
더구나 검경(檢警)은 구속의견서에서 강정구씨가 북한 대남(對南) 전위기구의 지침에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실제로도 이 대남전위기구의 홈페이지에 6·25전쟁과 주한미군의 성격 등을 한껏 왜곡한 그의 논문과 칼럼이 다수 게재되어 있었다. 그의 친북적 논리는 반민전과 한총련 등에도 이론적 틀로 활용되어왔다.
그런 인물을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비호하려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념을 부정하려드는 펀집적 좌경(左傾)인물이 아닌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존중을 위해 선진국에서도 극도로 자제하고있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는 것은 자칫 독립성을 중시하는 검찰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고, 검찰을 정치권력의 제물(祭物)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독자적인 결정을 존중하기는커녕 한 좌익 교수의 입장을 옹호하는 대변인이 되고자 이 나라 검찰 총수를 주무장관의 수사지휘권 앞에 무릎을 꿇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졸부(拙夫)의 몫일 뿐, 법무 수장(首長)의 역할일 수는 없다.
이웃 일본에서는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侍女)'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던 사건이 있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조선(造船)업계가 정치권에 뇌물을 뿌린 '의옥(疑獄)' 수사와 관련하여 당시 법무대신이 검사(검찰)총장에 '두 정치인을 체포하지 말도록'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었다. 결국 부패사건의 진상규명에 실패했다는 여론의 비판에 몰려 일본 법무대신의 사임은 물론, 요시다 총리까지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1954년은 그런 이유로 일본 검찰에 '치욕의 해'로 기록되어 있다. 검찰이 이 같은 불명예를 치유하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일본 법무대신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그후로는 없었다.
천 법무에게 묻고자 한다. 이 나라 검찰에 국내여론이 사망선고를 내린다면 그 책임을 천 법무는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는가. 법무장관 자리는 법률적 판단을 진수(眞髓)로 하여 승부하는 자리일지언정, 검찰에 '정치적 결단'을 강요해도 무방한 그런 자리가 아니다.
더욱이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견해를 검찰에 관철시키려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나라 법 운용에 엄청난 훼손을 입힌 인물로, 한국 검찰(檢察) 50여년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汚點)'을 남긴 인물로 기록될 것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검찰총장 역시 '죽기로 결심하면 살고, 살고자 발버둥치면 죽는다'「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는 금언(金言)을 되새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 없이 고고연(孤高然)하게 의연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를 비호하려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koans)
정 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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