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박정희 폄하'- 좌시할 일이 아니다
이 모두가 이정우(李廷雨) 경북대 교수(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가 10월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쏟아낸 억지 주장들이다.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이었나- 박정희 체제의 공과'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그가 의도한 골자는 일반인의 정서를 크게 벗어난 왜곡된 논리로 일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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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독일에서는 파시즘을 찬양할 경우 처벌을 받는데도 한국에서는 박정희 찬양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박정희 신화의 극복 없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요원하다"면서 "온순하고 순박했던 우리 민족이 이기적이고 성급하며 포악한 성질로 변한 것은 식민 지배와 해방 후 폭정이 중요한 원인"이라고도 했다. 박정희시대를 겨냥한 비난이다.
우리는 그의 억지 주장에서 조국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를 '파시스트(Fascist)'에 견주고있는 엄청난 오류(誤謬)를 읽을 수 있다. 그는 파시즘이나 나치즘보다 더한 전체주의의 화신 북한 김정일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경제방식인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는 좌파 편향의 경제학자이다.
박(朴)대통령 방식의 통치 스타일은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로 비판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인간의 사생활까지도 지배했던 전체주의의 대표적인 행태인 파시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나치즘에서 보듯이 광신적이고, 독단적이며, 폭력과 기만에 중점을 두고있는 반(反)합리주의에 근거하고 있음은 물론, 국제법과 국제질서까지도 철저히 부정한다. 그것이 박정희의 통치스타일과는 크게 구분되는 전체주의 특성이다.
박정희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누가 뭐라 해도 18년간의 집권기간 중 대한민국의 발전 기조(基調) 틀을 닦아 민족중흥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혹자는 그를 일컬어 우리 국민을 '역사적 고질적 구조적 가난'으로부터 구출해낸 단군(檀君) 이래 으뜸가는 위인이라고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혁명을 일으켰던 1960년은 4·19 이후 정권을 잡은 제 2공화국의 장면 정권의 무능으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극심했고, 북한의 대남 침투 강화로 적화야욕을 우려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며, 우리 경제는 세계 최하위 소말리아 바로 위를 갈 정도로 바닥(1인당 GDP 64달러)을 기고 있었다. 북한 경제규모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빈국인 이디오피아와 방글라데시의 뒤를 잇고 있던 시기였다.
그 시절을 두고 민주화가 퇴보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당시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은 민주화가 아닌, '한끼의 밥'이었다. 박정희가 선택했던 권위주의적 국가경영 시스템은 우리나라의 절대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럴 수 있는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화'가 지체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절대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청렴했고 소박했다. 개인적인 영달과 권력욕을 앞세운 적이 없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국토개발계획'을 밀어붙여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옳다고 판단하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카리스마적인 스타일과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의 석학들이 박정희를 20세기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을 굳이 독재자라고 한다면 세계의 무수한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존경받는 독재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박정희를 폄하하는 인물일수록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을 드러내어 비난하는 이는 별로 없다.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독재정권은 그들의 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흔히 '국민의 우민화(愚民化)'나 '3S정책' 등에 착안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달랐다.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고 의무교육 실시를 통해 당시 90%가 넘던 우리나라의 문맹률을 1% 미만으로 낮춤으로써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국가로 만든 것도 그였다.
인간 박정희가 사랑했던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닌 '국민'이었고, '대한민국'이었다. 그는 바로 조국과 대다수의 민초들을 위해 그의 카리스마를 추진동력으로 삼아 근대화 산업화의 기본 틀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런 박정희를 두고 이정우 교수는 애써 폄하하고 있다. 그는 개발독재가 경제성장을 위한 필요악(惡)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양자(兩者)를 성공적으로 병행 추진한 예를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기는 어렵다. 박정희(朴正熙)식 개발독재 모델은 현재까지도 경제성장을 위한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의 병행발전 모델로 들고있는 영국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영국은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로 나아갔을 뿐이다. 영국에서 부녀자를 포함한 전체 일반국민이 선거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115 달러(1990년 미국 화폐가치 기준)에 달했던 때(1928년)의 일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후발 산업화 국가들은 물론, 사회주의적 방식의 산업화를 추진한 구(舊)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 그리고 최근의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NICs)에 이르기까지 산업화의 초기단계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병행시킨 나라는 없다.
이정우 교수의 허물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1960∼1970년대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사학자로 서울대 안병직 교수가 있었다. 그는 1980년대 초 주사파 (主思派)의 교과서였던 매판(買辦)자본론의 이론적 근거가 된 '식민지 반(反)봉건사회론'의 저자이다. 이정우 교수는 바로 이 안교수가 그간의 학문적 허물을 자인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던 무렵 뒤늦게 안교수의 '낙성대연구소'에 드나들면서 좌파 경제이론에 탐닉했던 인물이다.
그는 노무현 정권 출범시에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일하다 경제 실무진과의 잦은 마찰 끝에 2년반만에 물러나고도 여전히 박정희를 제물로 삼아 1990년대 초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분배를 통한 성장론'을 합리화하려 하고 있다.
지난 2∼3년간의 대한민국 경제 위상 추락에 대한 반성은커녕 글로벌 스탠다드가 세계인의 경제교과서가 되어가고있는 터에 그가 인간 박정희를 폄하해가며 계속 '분배 우위'의 억지 이론을 고집하고있음은 좌시해서 무방한 일이 아니다. 범국민적 지탄이 뒤따라야 마땅하다.(konas)
정 준 (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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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구- 나라가 왼쪽으로 기울다 못해 이제는 2007년 대선도 없을 것이라는 소문마저 파다합네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라는 것 뚜껑을 열어보기가 겁납네다! 2007년 대선 믿고있다가 큰코 닥칩니다.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0-31 오후 4:42:09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 은혜를 모르는 골빈 인간들이 어찌어찌하여 권력을 잡고서는 나라를 쥐락펴락 하고 있으니까 이나라가 개판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2007년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선에 임해야 한다. 감언이설에 속지 않는 국민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
2005-10-31 오후 4:1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