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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와 현제명, 그리고 봉선화와 선구자의 수난

Written by. 김광동   입력 : 2005-11-15 오후 1: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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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친북좌파들이 친일 음악인이라고 매도, 비난했던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렸었다. 이는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의 돈과 각종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아 친일파를 파헤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홍난파, 현제명, 조두남 등의 음악가를 친일파라고 공개적으로 규정짓고, 친일 인명사전에 넣겠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문제다.

 홍난파는 우리 근대음악을 도입하고 개척한 선구자다. 우리는 홍난파 선생이 지은 동요 ‘달마중’과 ‘퐁당퐁당’을 불렀고, ‘고향의 봄’ 그리고 ‘봉선화’를 불렀다. 1960, 7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우리 모두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을 부르며 고향을 떠난 슬픔을 달랬다. 나 자신에게도 ‘고향의 봄’은 1969년 충주를 떠나 서울생활을 시작했던 시절, 가족이 함께 모이는 일요일이면 눈물을 어른거리며 함께 불렀던 노래였다.

 산업화 이전인 일제 시대때 우리 민족은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봉선화’를 부르며 민족적 울분을 달랬다. 1942년 도쿄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음악회에선 김천애가 하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봉선화’를 부르자 모든 청중들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민족 정서를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화창스런 봄바람에 회생키를 바라노라’로 끝맺으며 봉선화는 민족 희망을 표현했다. 그래서 금지곡이 되었다.

 3·1운동 때 홍난파 선생은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저당 잡히고 독립선언서 수천장을 찍어 배포하기도 했고, 항상 일본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종로 경찰서에 무려 72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홍난파 선생은 결국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늑막염이 악화되어 1941년 43세로 세상을 떠나야했다. 홍난파 선생을 정확하게 말한다면 친일 음악가가 아니라 항일 음악가였던 것이며 음악인 최초로 이달의 문화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근대 음악을 열어간 다른 음악가들도 다 마찬가지다. ‘가고파’를 작고하신 조두남 선생의 또 다른 곡 ‘선구자’는 이청천 장군,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등 허허벌판에서 독립투쟁을 하는 독립군의 위대한 정신을 기린 곡으로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현제명 선생은 서울음대를 만들고 국내 오페라창작의 효시로 ‘춘향전’을 무대화하였으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삼천리”라는 가사와 ‘희망의 나라로’ 등의 곡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며 수많은 음악가들을 길러 내신 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들 친일파라는 것이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것이 죄고 북한 전체주의를 위해 일하지 않았던 것이 죄라면 죄였던 것이다. 교회도 신사참배를 하고 식량배급제를 했던 시절에 왜 살아있었냐고 매도하는 것이다. 홍난파, 현제명, 조두남을 부정해야 한국 근대 음악사 전체를 부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이승만, 조만식, 박정희를 부정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북으로 가지 않고 대한민국을 만들고 기여한 사람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대한민국적이자 반민족적 논리인 것이다.

 이에 더 이상 거짓된 논리와 대한민국 파괴의 목적으로 진행되는 역사 파괴자들의 궤변이 난무하지 못하게 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성공한 대한민국을 짓밟고 민족을 위해 업적을 쌓은 사람들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세월이 계속되지 않도록 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형극의 길을 가면서도 근대 국가를 만들고 민족 정서를 대변한 인물들을 지키고 기려야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맥아더 장군도 그렇지만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이런 수모와 후퇴가 반복되는 것이다.(Konas)

김 광 동(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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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파    수정

    울밑에 선 봉선화야, 민족연구소가 처량하다...호동님, '민족 갈등 연구소'가 아니라 '민족 갈등 제작소'가 맞을 겁니다. ㅋㅋ</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5 오후 4: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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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D    수정

    빨갱이가 친일문제를 왈가왈부 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의 안보상황은 친일보다 친북빨갱이 활동이 더 위험한데.... 친일진상 조사한다는 위원들 대부분이 6.25때 빨갱이 했던 인물이거나 그와 관련있는 사람들이던데..</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5 오후 4: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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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동(mudde)   

    민족 문제 연구소가 아니라.. 민족 갈등 연구소.. 민족 왜곡 연구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5 오후 3:11:48
    찬성0반대0
  • 최진실   

    글쎄요, 정말 그래요.. 무엇을 위한 과거사 캐기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구요. 인민재판하듯이 누구든 걸리는 놈 하나 놓고 일제때 이런저런 일을 저질렀다고 공표해 버리니, 이게 미운 놈 때려잡기식 인민재판 아니고 뭡니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5 오후 2: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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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sunny67kr)   

    선진화로 가는 길은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고 정체성은 지난 우리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과거사를 현시대의 기준이나 정치적 잣대로 평가하고왜곡,폄하해서는 안된다.과거사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찾는 것이 현재의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2005-11-15 오후 2: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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