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戰 미군병사 유해와 국군포로 한만택씨
Written by. 김 철
입력 : 2005-12-08 오후 4:42:17
한씨는 1953년 6월, 6·25 전쟁 막바지에 국군 8사단 소속으로 금화지구 전투에 참전했다가 인민군 포로가 돼 지금까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 국방부는 그를 전사자로 처리해 지금까지 국립묘지 현충탑에 시신없이 위패로 모시고 있다.
한씨의 생존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04년 12월23일 한씨가 북한에서 서울의 가족(여동생, 조카)과 전화통화를 하면서였다. 한씨는 서울의 가족이 그리워 두만강을 건넜고 그해 12월27일 중국 연길에서 서울의 가족들과 재차 통화를 했다. 그러나 다음날 중국 공안에 체포됐고, 12월29일 연길에 도착한 한씨의 조카 한정구씨와 조카며느리 심정구씨를 만날 수 없었다. 체포 소식을 접한 한씨 조카는 현지에서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에 체포관련 민원을 제출하며 백방으로 송환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다.
결국 금년 1월27일 외교부는 한만택씨가 북송됐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하게 된다. 한씨는 중국공안에 체포된 후 9일 정도 중국에 머물다가 북송된 것으로 확인 됐고, 이 사이 우리 정부가 너무나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사실에 격분한 남쪽의 한씨 가족들(누나, 여동생, 조카)은 1월31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고 한만택씨에게 추서된 화랑무공훈장까지 반납해 버리고 송환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납북자가족모임 등 민간단체의 끈질긴 노력 끝에 북송된 한씨의 생존 사실과 함께 그의 사진과 서신, 육성 녹음테잎이 확보되었고 한씨가 현재 평안남도 북창군 수용소에 수감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9월8일 가족들은 다시한번 한씨 송환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제출했으나 한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자 10월31일에는 한씨의 사진 등을 통일부에 보내 송환 촉구와 함께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한씨의 신병이 수용소로 옮겨진 마당에 더이상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송환이 어렵다고 판단해 장관 면담을 요청한 것이였다. 하지만 통일부장관의 면담 요청은 거절됐고 11월 17일에야 통일부로부터 '송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서신을 받았다.
이같은 정부의 미덥지 못한 행보에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한씨 가족과 납북자가족모임, 피랍탈북인권연대는 지난 5일 송파구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 이미 확보하고 있던 한만택씨의 서신, 사진, 육성녹음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자료는 지난 3월 18일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와 남한 조카 등이 북한 내 협조자를 통해 확보한 것인데, 사진은 한씨가 수용소로 옮겨지지 직전 자택에 감금된 모습이였고,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는 한씨의 북한 가족이 남쪽 가족에게 보낸 사연이 담겨 있었다. 또 2분30초 가량의 육성녹음테잎에서 한씨는 "나는 괜찮다. 하지만 몸이 많이 힘들고 괴롭다. 여기(북한)에 있는 우리 자식들이 많이 걱정된다"며 자신의 탈북사건으로 인한 가족의 피해를 우려했다.
한씨 문제가 언론에 공개된 직후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김동식 목사 납북사건 및 국군포로 한만택 북송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 한씨 문제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와 함께 국회차원에서 공론화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같은 전쟁에서 희생당한 미군 병사와 한국군 포로는 이처럼 국적의 차이 이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죽어서도 국가의 관심과 보호가 뒤따르는 미국 해병대원 워드 일병에 비하면 살아있는 국군포로 한만택씨의 경우는 너무나 비참한 경우다. 포로 송환은 정부가 우선해야 할 책무인데도 스스로 적지를 탈출한 국군포로를 사지에 끌려가도록 방치한 책임이 우리 정부에게 있지 않은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씨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지 9일 동안이나 중국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씨가 북송되기 전까지 구명 노력을 안한 것이든 외교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든 우리 정부로써는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현재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가 546명이고, 납북자는 485명 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군포로나 납북자가 자진 월북한 것이고 이들은 억류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북한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측은 지난 2000년 2차 이산가족 상봉부터 국군포로나 납북자에게 '의거월북자'라는 명패를 달아 이산가족 교환방문에 내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방침에 그냥 따라가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라도 하듯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를 남북 당국자 대화에서 정식의제로 다루지 못하고 이산가족 상봉의 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과'에서 특수 이산가족으로 분류해 다루고 있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 국방부에 '포로과'가 있긴 하나 민간단체의 도움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귀환한 포로들로부터 생활담이나 듣는 정도여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서 납북자 가족들은 우리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국군포로·납북자 해결 의지가 전혀 없다고 불만을 터트리며 "김정일 정권에 아부하는 정책만 있을 뿐, 납북자, 국군포로 가족을 위한 정책은 없다"고 강하게 비난한다.
국군포로는 6·25전쟁 포로로서 대부분 나이가 70대 중반에서 80대 후반까지의 연령층이다. 납북자도 파악된 487명 중 70대 이상이 113명, 50~60대가 292명으로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더우기 출신 성분 때문에 북한에서 고된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어서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송환이 시급한 이유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송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남북관계의 특수성' 타령만 하지말고 한만택씨의 사례를 교훈 삼아 이제라도 전담부서를 만들어 북측과 적극적으로 협상해 나가야 한다. (konas)
김 철 기자 konasnet@hanmail.net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55년 만에 그 신원이 확인돼 내년 봄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는 짧은 외신보도가 있었다.
미 해병대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존 로런스 워드 일병은 장진호 전투 당시 포탄을 맞아 부상, 결국 숨졌고 그의 사망 소식은 전우에 의해 가족들에게 전해졌으나, 정작 그의 유해는 숨진지 5년여 만인 1956년 1월 신원미상의 상태로 미군측에 인도됐다. 북한측은 당시 워드 일병의 유해를 다른 866명의 무명용사 유해들과 함께 인도했으나, 미군 당국은 그의 신원 확인을 위해 이용했던 치과 기록의 오류로 인해 신원 확인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워드 일병의 유해는 'X-13082'라는 숫자명으로 하와이 국립묘지에 매장돼 있다가 지난달 중순 美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담당 합동 사령부(The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JPAC)'가 워드 일병의 유해를 처음 인계받았을 당시 찍어두었던 지문과 제대로된 치과 기록을 이용, 그의 신원을 최종 확인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전쟁터에서 죽은 장병들의 유해 발굴과 포로 송환을 위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여서 이런 단신은 뉴스거리도 안 되지만 워드 일병의 보도가 기자에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행을 위해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붙들려 북송된 국군포로 한만택씨 사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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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의 생존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04년 12월23일 한씨가 북한에서 서울의 가족(여동생, 조카)과 전화통화를 하면서였다. 한씨는 서울의 가족이 그리워 두만강을 건넜고 그해 12월27일 중국 연길에서 서울의 가족들과 재차 통화를 했다. 그러나 다음날 중국 공안에 체포됐고, 12월29일 연길에 도착한 한씨의 조카 한정구씨와 조카며느리 심정구씨를 만날 수 없었다. 체포 소식을 접한 한씨 조카는 현지에서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에 체포관련 민원을 제출하며 백방으로 송환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다.
결국 금년 1월27일 외교부는 한만택씨가 북송됐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하게 된다. 한씨는 중국공안에 체포된 후 9일 정도 중국에 머물다가 북송된 것으로 확인 됐고, 이 사이 우리 정부가 너무나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사실에 격분한 남쪽의 한씨 가족들(누나, 여동생, 조카)은 1월31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고 한만택씨에게 추서된 화랑무공훈장까지 반납해 버리고 송환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납북자가족모임 등 민간단체의 끈질긴 노력 끝에 북송된 한씨의 생존 사실과 함께 그의 사진과 서신, 육성 녹음테잎이 확보되었고 한씨가 현재 평안남도 북창군 수용소에 수감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9월8일 가족들은 다시한번 한씨 송환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제출했으나 한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자 10월31일에는 한씨의 사진 등을 통일부에 보내 송환 촉구와 함께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한씨의 신병이 수용소로 옮겨진 마당에 더이상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송환이 어렵다고 판단해 장관 면담을 요청한 것이였다. 하지만 통일부장관의 면담 요청은 거절됐고 11월 17일에야 통일부로부터 '송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서신을 받았다.
이같은 정부의 미덥지 못한 행보에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한씨 가족과 납북자가족모임, 피랍탈북인권연대는 지난 5일 송파구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 이미 확보하고 있던 한만택씨의 서신, 사진, 육성녹음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자료는 지난 3월 18일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와 남한 조카 등이 북한 내 협조자를 통해 확보한 것인데, 사진은 한씨가 수용소로 옮겨지지 직전 자택에 감금된 모습이였고,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는 한씨의 북한 가족이 남쪽 가족에게 보낸 사연이 담겨 있었다. 또 2분30초 가량의 육성녹음테잎에서 한씨는 "나는 괜찮다. 하지만 몸이 많이 힘들고 괴롭다. 여기(북한)에 있는 우리 자식들이 많이 걱정된다"며 자신의 탈북사건으로 인한 가족의 피해를 우려했다.
한씨 문제가 언론에 공개된 직후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김동식 목사 납북사건 및 국군포로 한만택 북송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 한씨 문제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와 함께 국회차원에서 공론화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같은 전쟁에서 희생당한 미군 병사와 한국군 포로는 이처럼 국적의 차이 이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죽어서도 국가의 관심과 보호가 뒤따르는 미국 해병대원 워드 일병에 비하면 살아있는 국군포로 한만택씨의 경우는 너무나 비참한 경우다. 포로 송환은 정부가 우선해야 할 책무인데도 스스로 적지를 탈출한 국군포로를 사지에 끌려가도록 방치한 책임이 우리 정부에게 있지 않은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씨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지 9일 동안이나 중국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씨가 북송되기 전까지 구명 노력을 안한 것이든 외교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든 우리 정부로써는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현재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가 546명이고, 납북자는 485명 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군포로나 납북자가 자진 월북한 것이고 이들은 억류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북한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측은 지난 2000년 2차 이산가족 상봉부터 국군포로나 납북자에게 '의거월북자'라는 명패를 달아 이산가족 교환방문에 내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방침에 그냥 따라가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라도 하듯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를 남북 당국자 대화에서 정식의제로 다루지 못하고 이산가족 상봉의 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과'에서 특수 이산가족으로 분류해 다루고 있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 국방부에 '포로과'가 있긴 하나 민간단체의 도움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귀환한 포로들로부터 생활담이나 듣는 정도여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서 납북자 가족들은 우리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국군포로·납북자 해결 의지가 전혀 없다고 불만을 터트리며 "김정일 정권에 아부하는 정책만 있을 뿐, 납북자, 국군포로 가족을 위한 정책은 없다"고 강하게 비난한다.
국군포로는 6·25전쟁 포로로서 대부분 나이가 70대 중반에서 80대 후반까지의 연령층이다. 납북자도 파악된 487명 중 70대 이상이 113명, 50~60대가 292명으로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더우기 출신 성분 때문에 북한에서 고된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어서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송환이 시급한 이유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송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남북관계의 특수성' 타령만 하지말고 한만택씨의 사례를 교훈 삼아 이제라도 전담부서를 만들어 북측과 적극적으로 협상해 나가야 한다. (konas)
김 철 기자 konas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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