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가신 지 407주년
오늘(12월16일)은 충무공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지 407주년이 되는 날이다. 충무공은 1598년 12월16일(음력 11월19일) 아침 적탄에 맞아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왜군의 격퇴를 염려하며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라는 애국의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 학교는 통영 충렬사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인지 학교 이름도 ‘충렬국민학교’였다. 그 당시 1년에 한 번 통영 소재 5개 초등학교 대항 체육 대회가 열렸는데 출전 당일 아침에는 선수단 전원이 충렬사에서 꼭 참배를 드리고 경기에 나갔다.
학교 선생님은 충무공의 백전백승 정신을 계승해 승리의 결의를 다짐하게 하려는 깊은 뜻으로 충렬사 참배를 계획했을 것이지만 어린 선수들은 이 뜻은 접어 두고 충무공을 향해 우리 학교가 꼭 승리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빌고 기도만 드렸다. 기도 덕분이었는지 우리 학교가 종합 우승했고, 충무공은 영웅의 위치를 넘어 신령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와 유사한 경험을 통해 혹은 교육을 통해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자신 있게 내세우고, 가끔 충무공에 대해 존경의 경지를 넘어 신과 같은 성웅으로 추앙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일제 시대 진해에서 해군소령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해군 전략가 가오다 이사오는 그의 저서 ‘포탄 잠재우기’에서 충무공에 대해 아주 흥미 있는 글을 쓰고 있다.
“러일전쟁 때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과 비교하면 그의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줬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아침에 점령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의 말이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이 충무공을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경험한 추억처럼 신적인 존재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 위대한 교훈 실천에 대해서는 남의 일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자성하게 된다.
충무공은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지혜와 용기와 신념과 굳건한 지조로 무수한 곤경을 이겨 낸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무능한 왕조와 엉터리 전쟁 지도, 오지 않는 군수 지원. 이런 가운데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해야 했던 인간 이순신. 그는 전쟁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력, 그리고 인간애를 비탕으로 한 리더십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이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충무공 407주기를 맞아 충무공이 남긴 위대한 교훈과 충무공 정신을 계승·실천하는 데 부족한 점은 없는지 뒤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konas)
김철웅 (재향군인회 국제협력실장, 예비역 해군소장, cwsy16@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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