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私學)의 미래, '상지대'를 보면 안다!
한완상-강만길 前 총장, 국보법 폐지-주한미군 철수 주장
국회를 통과한 사립학교법 때문에 사립학교 재단들이 술렁이고 있다. 사립학교를 사립학교답게 운영할 수 없고, 종단 학교를 교리에 맞게 가르칠 수 없음이 마치 시대를 잘못 타고난 홍길동의 심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학재단 관계자들은 지난 1993년 발생한 상지대(강원도 원주 소재) 사태가 각 사학에서 재발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지대 사태는 지난 1993년 김문기 前 이사장이 학교 돈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하고 교비를 횡령하는 등 학교경영을 파행적으로 운영했다고 비판하며 학내 교수와 학생들이 그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한완상, "반미는 민족 자긍심의 표현"주장
이후 김 前 이사장이 검찰에 연행돼 부동산 투기, 교비횡령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관선이사가 재단에 파견됐다. 그러나 김 前 이사장은 2년 후인 1995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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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상지대는 김 前 이사장이 몸담았던 예전의 대학이 아니었다. 상지대는 김 前 이사장이 학교 운영에서 손을 뗀 후 한완상(現 대한적십자사 총재), 강만길과 같은 親北성향이 강한 교수들이 연이어 채용됐다.
한완상 前 총장은 오마이뉴스와(2004년 2월 6일자)의 인터뷰에서 "반미는 소파개정에 대한 미국의 불성실하고 오만한 자세에 대한 불만이라기 보다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6.25를 겪었던 우리민족에게 또다른 전쟁을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부시의 선제공격을 통한 전쟁 발발을 염려하는 사람들을 반미주의자로 낙인찍는 것은 이 시대를 이해못하는 일이다"
한 前 총장은 또 '민족의 화해와 국가보안법 폐지 기독교 운동본부'의 고문으로 이 단체는 발족선언문에서 "국보법 폐지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으로 분단 6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밝히고 있다.
강만길, "미국을 혈맹으로 보면 통일 이룰 수 없어"
강만길 前 총장은 지난 2004년 1월31일 "북한을 적으로 보고 미국을 혈맹으로 보면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출처: 월간조선 2004년 10월호, 추적 盧武鉉에 호응하는「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汎국민위원회」의 실체)
그는 또 지난 2003년 김희선 열우당 의원의 남편인 방국진씨가 대외협력위원으로 있는 `4월 혁명회` 특별강연을 통해 6·25전쟁에서 북한에 의해 통일이 될 뻔했으나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이 참전해 통일에 실패했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방제 통일안이 적화통일안이냐 체제유지 통일안이냐 하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판단이 유보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기사하단 별첨자료 제시)
강 前 총장은 한완상 前 총장과 함께 지난해 9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광복60주년을 맞자"는 내용이 담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인사 공동선언문`에 최장집(고려대)교수와 함께 서명하기도 했다.
강 전 총장은 또 올해 4월 11일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운동도 당연히 독립운동"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이날 임시정부 수립 86주년 기념식의 상하이 개최와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어디까지나 독립운동"이라면서 "(김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운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면서 "독립운동은 그 자체로서 독립운동으로 봐야 하고 사회주의 등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출처: 연합뉴스 2005년 4월 11일자)
김정란 교수, "예수는 빨갱이였다"주장 파문 일으켜
한편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지난 해 11월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극우기독인에게 고함-"예수도 '국가보안법' 희생자"'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예수는 체제가 허용하지 않는 사상을 지닌 죄로 죽은 국보법의 희생자였다"는 주장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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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영락교회를 창건한 10인의 장로 중 한 명이었으며, 청소년기를 영락교회 뜰에서 보낸 예수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 교수는 "예수는 당대의 지배 계급이었던 유대 사제들이 설정해놓은 율법의, 정치적 의미에선 로마 식민지 위정자들이 정해놓은 법의 울타리를 파괴한 자였고 그 때문에 잡혀 죽었다”며 “비유적으로 말하면 당시의 ‘빨갱이’였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예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상범으로 잡혀 죽은 (일종의)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라며 "시청 앞에서 극우단체와 한 몸이 돼 미국을 섬기고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외치던 크리스천들은 사제계급의 사주를 받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던 어리석은 유대 군중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재 상지대는 표면적으로는 '민(民)이 주인인 대학'(2000년 6월 7일자 박정원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상지대 기고문), '민주화를 선도하는 대학', '경영이 투명한 대학'(2001년 3월 21일 강만길 총장 취임사)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상지대는 교지 및 학보를 통해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등을 주장해 왔다.
상지대 학보, "북한 反국가 단체로 취급하는 헌법은 논리적 모순"
상지대는 교지 제30호(2002년 4월 발간) '교지편집위원회 전사(前史)'에서 "상지대 교지의 역사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성격과 상지대 전체의 역사 및 좌파학생운동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밝힌 뒤 "자본주의를 '지양'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운동은 과거와 같은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을 필요로 한다."며 학교의 이념적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총장이 발행인으로 있는 상지대 학보의 경우 "국가보안법은 정치적 보복과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북한을 反국가 단체로 취급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헌법은 그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다."('상지' 18권 24~35 페이지), "학생운동은 학생운동과 전체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냉정한 평가로부터 사회주의 학생 정치 조직의 결사와 혁명운동의 복원을 위해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상지' 20권 56페이지)는 등 反국가적인 주의*주장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재 상지대 일부 교수와 학생 동문들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재야(在野)연계 교수들의 파행적인 학교 운영을 견제해 줄 것을 사회에 알렸으나 그 때마다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흐름에 묻혀버렸다"면서 "대학교육의 85%를 담당하고 있는 사학을 적극 보호·육성하지 못한 교육부장관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konas)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climb1@hanmail.net
<<특별강연>>
홈페이지출처: http://www.demos.or.kr/scholar/viewbody.html?code=scholarship&page=4&number=9032&category=004&keyfield=&key=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
강 만 길(상지대학교 총장)
1. 왜 통일해야 하는가
수 천년을 함께 살아 온 민족이 부자연스럽게 분단되었으니까 통일해서 살아야 하고, 또 분단된 남북이 모두 엄청난 군사비용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교육비나 사회복지비로 돌리기 위해서도 통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 주민들과 나아가서 전체 동아시아사람들이 21세기를 평화롭게 살기 위해 한반도가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사의 20세기는 그 전반기는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일어났고 그 후반기는 동서냉전으로 얼어붙었던 시대였다. 그 세기를 통해서 우리 민족사회는 두 번이나 역사실패를 겪었다. 일본의 강제지배를 받은 일이 첫 번째 실패요,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싸우고 대립한 것이 그 두 번째 실패였다. 21세기를 맞는 우리 민족에게 그 실패를 바로잡아야 할 세 번째 기회가 오고 있다.
20세기까지의 세계사는 민족국가끼리 대립하여 한치의 땅을 두고 더러운 전쟁을 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한 냉전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사는 식민지를 모두 청산하고 냉전체제를 해체하면서 민족국가 사이의 대립을 넘어서서 지역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평화주의와 문화주의를 지향하는 세기가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반도는 유일하게 분단되고 대립한 채여서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지역의 하나로, 동아시의 화약고로 지목되고 있다. 남북 한반도지역의 주민들, 특히 그 젊은이들은 21세기의 국제인 세계인으로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제 민족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지 못한 채 제 조국이 화약고로 지목되는 상황인 채로는 국제무대에서 떳떳하게 활동할 명분과 자격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21세기는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다해도, 또 첨단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해도 평화스럽지 못한 분쟁지역이면 곧 후진지역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날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통일해서 살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남북 한반도주민들이 앞으로 평화롭게 떳떳하게 살기 위해 또 지역평화와 세계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통일해야 한다는 점이 더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2. 한반도식 통일방법은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분단된 민족은 우리 민족과 독일 민족, 그리고 베트남 민족이었다. 중국은 분단이라기보다 대만이라는 하나의 성이 분리되었다고나 할까. 분단된 세 민족사회 중 20세기가 가기 전에 베트남은 전쟁통일을 했고, 독일은 이른바 흡수통일을 했다. 우리 민족은 21세기로 들어선 지금까지도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이 전쟁통일 했지만, 사실은 우리 민족사회에서 먼저 전쟁통일이 기도되었다. 6*25 전쟁이 그것이다. 이 전쟁을 통해서 처음에는 북쪽에서 통일할 번했지만, 미국군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이 참전해서 안되었고, 다음에는 남쪽에서 통일할 번했지만 중국군이 참전함으로서 안되었다. 그 결과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한반도의 분단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북쪽에 의해 통일될 번했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안되었고, 남쪽에 의해 통일될 번했다가 중국군의 참전으로 안된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 한반도가 가진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말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세력과 일본과 미국 등 해양세력 사이에 다리처럼 걸쳐진 한반도가 지난날 제국주의시대와 냉전주의시대에는 대륙세력 쪽에 포함되면 일본이 불안해지고, 반대로 해양세력 쪽에 포함되면 ‘만주’지역이 위험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러일전쟁 전에 제정러시아의 세력이 한반도에 다소 강하게 미치자 일본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아 러일전쟁을 일으켜서 이겼다. 그 결과 일본은 청일전쟁 이래의 목적대로 한반도를 강점했고 그것을 발판으로 ‘만주’를, 그리고 중국 본토를 침략했다. 6*25 전쟁 때도 유엔군이 북진하게 되자 그 사령관 맥아더는 만주폭격을 주장했다. 어떻든 6*25 전쟁은 우리에게 한반도는 전쟁의 방법으로는 통일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고, 따라서 평화통일론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또 하나의 분단민족 독일이 이른바 흡수통일 됨으로서 한반도도 흡수통일 되리라 기대하거나 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어느 쪽으로도 흡수통일 되지 않았으며 또 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역시 그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남쪽이 무너져서 중국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북쪽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을 미국이나 일본이 방관하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로, 북쪽이 무너져서 미국과 일본세력을 배경으로 한 남쪽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을 중국과 러시아가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에는 남북 당국자가 모두 전쟁통일은 말할 것 없고 흡수통일도 안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아니라면 한반도에서는 어떤 통일이 가능할까. 6*15 남북공동선언을 시점으로 베트남식 전쟁통일은 말할 것 없고 독일식 흡수통일도 안 되는, 또 되어서도 안 되는 한반도에서 ‘협상통일’이 시작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3. ‘협상통일’이란 어떤 것인가
1948년 한반도에 두 개의 분단국가가 성립될 위험이 닥치자 협상을 통해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남북협상이 기도된 바 있다. 그러나 그 때는 통일민족국가 건설에 실패했고 뒤이어 처절한 민족상잔을 겪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아닌 ‘협상통일’이 기도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실이 한반도적 상황이라 하겠다.
베트남의 전쟁통일은 사이공이 함락되자 바로 되었고, 독일의 흡수통일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바로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남북이 기도하고 있는 ‘협상통일’은 그렇게 빨리 되는 것은 아니다. ‘협상통일’에는 반드시 상당한 기간의 평화공존 기간이 요구된다. 6*15 공동선언은 5개항으로 되어 있지만, 통일방법을 말한 조항은 첫째와 둘 째 항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평화정착을 위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정상회담과 장관급회담과 국회회담을 통해 철도를 연결하고 수해방지대책을 함께 세우고 공업단지를 조성함으로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서 휴전조약을 평화조약으로 바꾸고 군축을 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휴전선을 군사대결선이 아닌 단순한 경계선으로 바꾸어 가야 할 것이며, 그런 후에 통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갈 것인가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첫 항에서 통일을 자주적으로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7*4 공동성명에서 이미 합의된 일이다. 공동성명의 둘째 항에서는 남쪽의 통일방안인 연합제와 북쪽의 방안인 연방제에 ‘낮은 단계’라는 전제를 달아서 공통성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한 것이라기보다 지난 20여 년간 대립하여 평행선을 그어온 남북의 통일방안을 조금 식 방향을 바꾸어 언젠가는 합치점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데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을 합쳐 백만이 넘는 상비군이 휴전선을 경계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군사권과 외교권을 하나로 하는 연방제통일안은 당장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남북 두 정부가 군사권과 외교권을 각기 그대로 가진 채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협력하고, 또 앞으로 국방장관회의에서 합의된다면 군대의 이동을 상대방에게 사전 통고하고 군사훈련을 서로 참관하게 함으로서, 군사권과 외교권 부문에서 서로 협력하여 평화를 정착시키고 그야말로 ‘낮은 단계’에서부터 ‘통일’을 이루어 가려는 데 공동선언 제2항의 본 뜻이 있다 할 것이다.
4.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
남쪽에서 제시한 연합제 통일안은 상당한 기간 2국가 2정부 2체제를 유지하면서 ‘신뢰회복’을 위한 기간과 장치를 두자는 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1국가 1정부 1체제가 되어야 통일이 완성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쪽의 연방제 통일안은 1국가 2정부 2체제 통일안이다. 남쪽에서는 이 같은 연방제 통일안을 통일전선 전술에 의한 적화통일안으로 보고 그것에 찬성하는 경우 실정법에 저촉되도록 되어 있다.
연방제 통일안이 적화통일안이냐 체제유지 통일안이냐 하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판단이 유보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중에 통일된 베트남과 독일은 1국가 1정부 1체제로 통일되었는데, 그 통일방법은 전쟁통일이거나 흡수통일이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은 결국 21세기적 통일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남북이 모두 당장에는 20세기적 전쟁통일도 또 흡수통일도 명백히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적 통일은 남쪽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2국가 2정부 2체제에서 전쟁도 흡수도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바로 1국가 1정부 1체제로 통일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2국가 2정부 2체제에서 1국가 2정부 2체제 단계를 거쳐서 1국가 1정부 1체제로 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북쪽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1국가 2정부 2체제로도 완전한 통일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남북이 모두 전쟁통일과 흡수통일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이외에는.
그러나 한가지 명백한 것은 ‘협상통일’의 경우 1국 1정부 1체제 통일이건, 1국 2정부 2체제 통일이건 무엇보다도 평화정착 과정이 필수적이며, 어느 정도 평화가 정착되어 전쟁위험이 완전히 없어진 후 본격적으로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5. 주변 4강과 통일과의 관계는
한편,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통일문제와 주변 강대국, 이른바 4강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 평화통일인 이상 대륙 쪽 중국-러시아에 치우치게 통일되기도 또 해양 쪽 일본-미국에 치우치게 통일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변함없는 한-미-일 공조체제에 대응해서 조-중-러 공조체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지난날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소 공조체제가 대립했던 때와 같이 한반도의 통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해소되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데올로기 대립 이전인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엽에도 한반도를 발판으로 삼아 대륙으로 쳐들어가려는 해양세력 일본과 그것을 막으려는 대륙세력 사이에 청일*러일 전쟁이 일어났다. 한반도가 그런 지정학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영세국외중립화론이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그것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을 중립화함으로서 지역분쟁을 없애려는 제국주의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의 세계사는 제국주의를 청산하고 지역공동체를 이루어 가려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한반도가 영세중립지대로 통일되어 앞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공동체에 들어갈 수 없게 되면, 그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공동체 자체의 성립이 거의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는 앞으로 영세중립도 아니면서 대륙세와 해양세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제3의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면서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21세기에 들어선 시점의 한반도 7천만 주민은 지난 세기의 두 번에 걸친 역사 실패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고 지역평화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한 세 번째 기회를 잡는데 실패하지 않을 만한 역량을 갖추어 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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