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장시기 교수
2005년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물의와 정치적 논쟁을 글을 꼽으라면 단연 강정구 교수의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일 것이다. 이 글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와 검찰총장의 전격 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결과를 가져온 까닭이다.
이 사안이 문제가 됐을 때 장시기 교수라는 사람이 등장해 강정구 교수를 변호하는 듯한 글, “김일성은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이다”를 민교협의 홈페이지에 실어 또 한 번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장시기 교수는 강정구 교수와 같이 동국대에서 근무하는 교수라는 점과 해외연구차 남아프리카공화국(영문학자가 영문학 연구를 위해 가는 나라로 쉽게 떠오르기는 매우 어려운 나라일 것이다)에 체류중인 영문학자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 체류한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마치 다 아는 양, 대담하게도(?) 이 나라 사람을 포함한 아프리카인들의 북한에 대한 정서(특히 김일성에 대한 인식)에 관한 글을 썼기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데 충분한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유례없이 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의 반론문이 국내 언론에 게재하게 만드는 해프닝까지 연출하였음 또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두 사람은 좌파적 이념을 가진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들 말고도, 아니 이들보다도 더한 좌파성향의 학자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지금 좌파성향을 갖거나 점차 그에 경도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래저래 2005년은 우리 사회에서 이념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폭된 한 해였다. 북한은 해방 60돌을 맞이하는 올해를 조국통일의 원년이자 주한미군 철수 원년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는데, 그런 탓에 남남분열과 남남갈등이라 불리우는 사상전은 거의 내란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마디로 씁쓸한 한 해가 지금 저물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이 같은 이념전쟁은 2006년에 더욱 심화되었으면 심화되었지 결코 줄어들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지금 좌우 양 진영은 대한민국의 지키기를 둘러싸고 한 판의 대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필시 국가보안법 개폐와 관련해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같은 전쟁에 좌파가 승리하도록 지원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숙명이라면, 우리는 결연히 받아들이고 또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장시기 교수의 글, “김일성은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이다”이 처음 언론에 소개됐을 때 필자는 대충 신문에 난 것만 훓어보았을 뿐이었다. 최근 필자는 장 교수의 글을 꼼꼼히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인터넷 속에 들어갔다. 여기서는 필자가 이 글을 보고 느낀 바를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親北性’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하나의 한반도 속에서 김일성은 가장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김일성을 미화.찬양하고 있다. 또 ‘싸우스 코리아’ 또는 ‘주체적 민족국가’란 표현에서 북한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시사하고 있다(이와 관련해서 엄연히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있는데, 대한민국을 싸우스 코리아로 호칭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는 또 “민족주의의 꿈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아주 적나라한 친일행위 때문에, 혹은 친일 행위를 통한 부와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이웃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뿐이었다.”라고 말하여, 대한민국 건국세력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다.
요컨대, 장시기 교수의 글은 김일성을 찬양하거나 대한민국 혹은 대한민국 건국세력을 폄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친북성 혹은 북한의 대남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더불어 장시기 교수는 “한반도의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 김일성은 이미 죽었다. 죽은 사람의 시대는 과거로 돌려야만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김일성에 대해서는 과거를 묻지 말라”는 식의 한없는 포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일성에 대해 과거를 묻지 말라는 태도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에 대한 역사청산에 반대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대한민국 정체성 및 정통성 바로세우기와 배치될 뿐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자세라고 할 것이다.
둘째, ‘反美性’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장시기 교수의 글에는 미국의 세계전략(냉전 시기 反蘇 포위전략)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반미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 나라들의 독립에 가장 걸림돌의 역할을 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마치 베트남 전쟁처럼 이전의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를 대신해서 아프리카를 지배하려고 했다. 그들의 지배전략은 이전의 영국이나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성장한 아프리카인 독재 권력집단의 배후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프리카 내부에서 성장한 독재 권력집단과의 싸움은 미국과의 싸움이었고, …”라고.
미국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식민지 해방에 가장 걸림돌이 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미국은 1847년에 자유의 몸이 된 흑인 노예들을 중심으로 라이베리아를 건설해 준 바 있다. 식민지 독립에 반대입장을 취했던 나라들은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이었으나, 이들도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 들어와 식민지 독립의 국제적 여론과 흐름에 굴복해 식민지 해방을 수용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아프리카 내부의 독재권력과의 싸움은 곧 미국과의 싸움이라는 주장은 설령 그것이 일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부분적 사실’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는 곤란하다고 할 것이다. 이는 편협한 반미주의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냉전시대 미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은 소련의 아프리카 공산화 및 지역패권 전략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기 때문이다. 즉, 소련의 세계공산화전략과 미국의 대응이라는 관점 혹은 미.소간의 이념전쟁이라는 객관적 시각이 결여되어 있고, 일방적으로 미국만을 매도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반면 냉전시대 북한, 체코 등 위성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지 묻고 싶다. 그러한 태도는 객관성, 균형성, 공정성을 상실한 것으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親蘇.反美적’ 내지 ‘친공적’ 입장을 시사하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反韓性’도 엿보인다.
장 교수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기 위한 건국세력의 노력을 친일 내지 친미로 매도하는 편향된 시각을 노정하고 있다. 예컨대, 그는 “민족주의의 꿈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아주 적나라한 친일행위 때문에, 혹은 친일 행위를 통한 부와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이웃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사람들’(북한의 지배계층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됨: 필자 주)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뿐이었다. … 근대 민족주의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친일 대신에 친미를 할 수밖에…”라고 말하고 있다.
해방공간에서 자유 대한민국에 대하여 무력적화통일을 기도하는 공산화 세력을 경계한 것은 지극히 옳은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더욱이 북한은 유엔총회 결의를 거부하고 유엔한국위원단의 북한 진입과 공정한 선거관리에 의한 총선을 부정한 반유엔세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김일성식의주체적 민족주의와는 구별되는- '자유 대한인'의 민족주의 발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장시기 교수의 주장은 곧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부정하는 '반 대한민국적' 주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특히 국가보안법과 경찰)를 부정하는 자세 시현함으로써 반정부성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토대로 구속수사를 하겠다는 경찰이나 …은 미쳐도 한참 미친 한반도인 …, 그들은 한반도인이 아니라, 일본인이거나 미국인, 혹은 일본이란 미국의 꼭두각시일 따름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그 점을 말해준다.
국가보안법은 부자세습의 봉건적 독재체제,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제, 우상화체제, 나아가 300만을 아사하게 만든 북한공산주의 내지 친북노선을 지지하거나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등 불편한 법이 아니다. 문제는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지지하고 찬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만 인권 침해주장이 제기될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인권침해’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한민국의 공동체 안전과 대다수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친북세력에 대한 합리적, 합목적적인 ‘인권제한’(사상, 양심, 언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부 제한)을 가한 것이라고 봄이 더욱 타당하기 때문이다.
넷째, ‘閉鎖性’ 내지 ‘닫힌 민족주의’성이 드러나고 있다. 장 교수의 글은 친북적, 대북 포용적 자세와는 달리 미국에 대해서는 반미적인 태도를 강하게 시현하고 있음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이는 금일 상호의존의 국제사회에서 국제협력(특히 안보협력)이 불가피한 현실을 외면하는 한편, 닫힌 폐쇄적, 저항적 민족주의의 경향을 노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反國際規範性’도 일부 엿보인다. 내정간섭을 합법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내용에서 그러한 태도가 발견된다. 영문학자가 이러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와 관련하여, 장시기 교수는 “…아프리카주의, 혹은 세계주의자들이다. … 그들은 또한 수단의 아랍계와 흑인계 내전에서 수단의 문화가 전통적으로 이슬람 문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흑인계의 반란을 영국 식민주의자의 책동으로 보고 아랍계를 은밀히 지원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비로소 만델라와 움베키를 통하여 근대적 지도자의 우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아프리카주의자들의 ‘아랍계에 대한 은밀히 지원’은 유엔헌장 제2조 제7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내정(국내문제) 불간섭원칙’의 중대한 위반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될 소지가 다분하다(기타 분석 내용은 생략함).
이러한 점에 비추어 장시기 교수의 글은 차라리 쓰여지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 교수님. 메리 크리스마스.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을 잘 보내시고, 새해부터는 이런 글보다 영문학에 관하여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불필요한 이념적 혼란보다는 정돈이 있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에 되길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하고자 한다.
2005년 12월 25일 성탄절날 아침에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출처: 프리존(http://www.freezone200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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