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는 사람은 모두 '비양심'인가?
'의무' 없이 '권리'만 갖겠다는 비양심, 대한민국을 떠나라
Written by. 한서철
입력 : 2005-12-28 오전 9:46:41
며칠 전 사회면을 장식한 작은 기사 하나가 있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아버지에게 농약이 든 소주를 마시게 한 혐의로 22살의 청년이 구속된 사건이다. 가끔 존속살인이라는 패륜범죄 소식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유가 돈도 아니고 아버지의 습관적 폭력 때문도 아닌, 그저 2년 남짓한 군대생활이 싫어서였다니 기가막힐 따름이다. 이 청년은 ‘죽어도 군대만큼은 가기 싫다’는 생각에만 충실했을 뿐,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에 대한 부정(父情)도, 아버지를 잃고 슬퍼할 가족들에 대한 연민도, 앞으로 나머지 식구들을 어떻게 부양할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천륜까지도 저버린 이 청년의 뻔뻔함이 놀라울 뿐이다.
오늘 아침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고 한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라는 말 자체가 우습다. 무엇이 양심적이란 말인가? "헌법 19조의 양심의 자유 중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 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되므로 이는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에 있다"는게 인권위원회의 설명이다.
언뜻 생각하면 종교적 자유를 의미하는 듯 하지만 이는 결국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정한 법률에 따라 군대에 가는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은 모두 ‘비양심’이란 말인가? 일부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입대를 거부하는 소수에게 ‘양심’의 딱지를 붙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는 건강한 다수의 젊은이들을 ‘비양심’으로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몰상식한 일이다.
또 한가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의무를 다해야 하며, 종교적 신념이든 무엇이든 헌법이 정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 역시 상식이다. 혹자는 혈기왕성한 젊은 인력을 ‘깜방’에 보내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낭비가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이는 국가운영의 원칙에 관한 문제이다. 고작 매년 수감되는 700여 명의 병역거부자를 구제하기 위해 수 십만의 젊은이들을 ‘비양심’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잘못된 체제와 관습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같은 체제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면 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국민된 도리인 것이다. 국가의 선택마저도 자유로운 요즘 세상에, 그 누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것을 강요하지 않음에도 굳이 한국에 남아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 알량한 ‘양심’을 내세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의 자유는 국가비상 상태에서도 유보될 수 없는 최상급의 권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말대로라면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전투를 거부할 경우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세계지도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저런 ‘양심’을 앞세워 총을 들기를 거부한다면 백기 들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존속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질러지는 요즘 세상이다. 매년 갖가지 기발한 방법의 병역기피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그럴듯한 ‘면죄부’까지 쥐어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이비 양심’들이 생겨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아무리 공정한 관리와 심사가 이뤄진다 한들 교묘한 수법으로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는 ‘비양심’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단 한 명의 ‘비양심’만으로도 대다수 ‘양심적 젊은이’와 그 가족들이 느낄 박탈감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손에 들고 있는 돋보기와 현미경을 집어 치워라. 그들의 돋보기에는 소수의 권익과 양심이 크게 보일지 모르지만, 돋보기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권과 양심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도외시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심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국가위원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인권위원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목숨걸고 대한민국을 지켜온 호국영령들 앞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출처:http://www.new-right.com)
한서철 (자유기고가)
오늘 아침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고 한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라는 말 자체가 우습다. 무엇이 양심적이란 말인가? "헌법 19조의 양심의 자유 중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 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되므로 이는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에 있다"는게 인권위원회의 설명이다.
언뜻 생각하면 종교적 자유를 의미하는 듯 하지만 이는 결국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정한 법률에 따라 군대에 가는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은 모두 ‘비양심’이란 말인가? 일부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입대를 거부하는 소수에게 ‘양심’의 딱지를 붙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는 건강한 다수의 젊은이들을 ‘비양심’으로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몰상식한 일이다.
또 한가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의무를 다해야 하며, 종교적 신념이든 무엇이든 헌법이 정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 역시 상식이다. 혹자는 혈기왕성한 젊은 인력을 ‘깜방’에 보내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낭비가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이는 국가운영의 원칙에 관한 문제이다. 고작 매년 수감되는 700여 명의 병역거부자를 구제하기 위해 수 십만의 젊은이들을 ‘비양심’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잘못된 체제와 관습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같은 체제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면 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국민된 도리인 것이다. 국가의 선택마저도 자유로운 요즘 세상에, 그 누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것을 강요하지 않음에도 굳이 한국에 남아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 알량한 ‘양심’을 내세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의 자유는 국가비상 상태에서도 유보될 수 없는 최상급의 권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말대로라면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전투를 거부할 경우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세계지도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저런 ‘양심’을 앞세워 총을 들기를 거부한다면 백기 들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존속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질러지는 요즘 세상이다. 매년 갖가지 기발한 방법의 병역기피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그럴듯한 ‘면죄부’까지 쥐어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이비 양심’들이 생겨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아무리 공정한 관리와 심사가 이뤄진다 한들 교묘한 수법으로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는 ‘비양심’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단 한 명의 ‘비양심’만으로도 대다수 ‘양심적 젊은이’와 그 가족들이 느낄 박탈감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손에 들고 있는 돋보기와 현미경을 집어 치워라. 그들의 돋보기에는 소수의 권익과 양심이 크게 보일지 모르지만, 돋보기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권과 양심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도외시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심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국가위원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인권위원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목숨걸고 대한민국을 지켜온 호국영령들 앞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출처:http://www.new-right.com)
한서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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