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케빈 퀸씨, 부친이 참전한 6·25전사 집필 차 방한
백마고지·금화지구전투 참전용사 만나 증언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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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미국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으며 오는 6월 발간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그 중에서도 백마고지를 비롯한 철의 삼각지 전투를 중심으로 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 당시 전투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을 대상으로 증언을 채록하고 있다.
백마고지 전투를 비롯, 부친이 참전한 금화지구 전투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내한한 조지 퀸씨가 6일 오전 서울 잠실 향군회관을 방문, 향군이 주선한 6·25참전용사들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청취했다.
이 날 향군회관에서 있은 증언에는 당시 9사단 포병여단 소속으로 백마고지 전투 당시 대대 작전장교로 화력전을 벌인 전주식(예, 육 소장) 포병전우회 회장을 비롯, 장수길(74세, 당시 이등상사), 김윤식(70세, 일등중사), 양수한(81세, 상사), 이수송(79세, 소위)씨 등이 참석해 관련 사실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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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퀸씨는 증언을 청취하면서 사전에 백마고지 전투 등 철의 삼각지구 전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듯 전사에 수록된 내용과 증언자들의 증언내용을 꼼꼼히 챙기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상이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경우에는 전후 배경을 질문하며 세심하게 확인하곤 했다.
전주식 포병전우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자신과 함께 했던 미 군사 고문단의 일원이었던 스미스 소령에 대한 기억을 또렷이 간직하고 있었다.
전 회장은 "스미스 소령은 당시 대대 사격지휘본부에서 자신과 밤과 낮을 함께 하면서 항상 행동을 같이 했다"고 회상했다. "스미스 소령이 모든 탄약이나 보급품에 대해 서명을 해 주어야 한국군에 탄약 등이 지원되었다"며 군사고문단의 역할을 상기한 뒤 "그 치열한 전투상황에서도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한국군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번은 우리 대대가 사전 진지 등을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관계로 그가 위치하고 있던 사격지휘 본부에 적 포탄이 떨어졌어도 스미스 소령을 비롯한 아군의 손상이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자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을 나에게 주었다. 그러나 전속 후 몇 번 연락이 오가다 끊어져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백마고지' 명칭에 대해서도 증언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투가 종료된 후 보고를 받고 명명했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10월 14일 마지막으로 이 작전에 참가했다는 이수송 당시 소대장(육 중령 예편)은 "AP 통신 기자가 그 지형을 본떠서 지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그 지역 명칭 중에 '마산'이라는 지명이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금도 육군 백마부대에서는 '육탄 3군신' 중의 1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강승우(당시 9사단 30연대 소대장)소위의 전사에 대해 "기록에는 다이나마이트를 몸에 감고 적 진지로 뛰어 들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이를 확인요청하자 양수한 씨는 "당시 나는 395고지(백마고지) 5부 능선에서 강 소위 등의 육탄공격(특공대)을 지켜봤다"고 말하고 "당시 보병부대, 특히 최전선에서 전투하는 부대는 다이너마이트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은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분명한 것은 수류탄을 몸에 지닌 가운데 양손에는 두 개씩의 수류탄을 안전핀을 제거한 상태에서 쥐고 적 진지로 뛰어들어 전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하자 다른 참전용사들도 이에 동조했다. 이들은 또 실제 한 손에 두 개의 슈류탄을 쥘 수 있다고 노구에도 불구하고 직접 자세를 취해보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기면서도 증언이 계속 이어지자 퀸씨는 "오늘 여러분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제가 본 전사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면서 고무적인 자세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케빈 퀸씨는 코나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조지 퀸, George T. Quinn. 당시 24세, 중위)는 한국전쟁기간 철의 삼각지 전투가 발발하기 3주전 7사단 31연대 소대장으로 금화지구 전투에 참전했으며, 중대장이 전사하자 현지에서 중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또 "이 전투 이후에는 소규모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주로 정찰임무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퀸씨는 이어 "아버지는 어릴 적 한국전쟁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해주셨으며, 아버지 중대에 카츄사도 있었으며 특히 한국군은 군기가 엄정해 미군보다도 훨씬 전투도 잘하고 지휘도 잘 따라 한국군,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로서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셨다"고 말했다.
그는 또 6·25 전쟁에 관한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하나의 눈송이처럼 작게 시작했지만 진행하다 보니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6·25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의외로 철의 삼각지와 관련한 자료가 미흡한 것을 알고 지난 2000년에 이어 다시 한국을 찾아 증언을 듣게 되었다"고 밝혔다.
케빈 퀸씨의 부친 조지 퀸씨는 한국전쟁 종료 후 곧바로 전역해 미 중앙정보국(FBI)에서 근무하다 지난 99년 71세를 일기로 병으로 사망, 현재 미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퀸씨는 한국전쟁에서의 공로로 미 은성무공 및 실버훈장등을 수여 받았다.(Konas)
이현오 기자 konas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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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퀸씨 참 훌륭하시다. 중3 진학하고 한중간쯤에 터진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을 928 서울수복의 감격 후퇴시 요인납치 학살자행등 모두 기억하고 있다. 연세대 도서관엔 50,51,52,53년도 신문들이 고스란히 남아았다, 우리도 ㅇ이런것 들쳐봐야 하지 않나?</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
2006-01-08 오후 10: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