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민족민주 진영이 제국주의 축출해 통일"
통일부 장관 내정자 이종석 분석[1]
Written by. 김성욱
입력 : 2006-01-24 오후 3:11:22
『대한민국 역대정권은 反민족...金日成은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차장이 1월2일 통일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李鍾奭의 이념체계」가 향후 남북관계를 이끌고 갈 소프트웨어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李鍾奭의 이념체계」를 분석하는 것은 「연방제」등 事變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각종 저술을 통해 金日成을 일관되게 옹호해 온 것 이외에도『진정한 통일은 민족민주운동진영이 한국사회를 강점하는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하는 민족해방을 통해 가능하다』(월간지 「사회와 사상」 88년 9월호 등) 거나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外勢)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과 평등의 존중』 (90년 3월 성균관대 학보) 이라는 요지의 통일관을 보여 온 인물이다.
金日成은 일반 민중에게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
성균관大 행정학과 78학번인 李鍾奭(48세)씨는 1989년 金日成의 빨치산운동에 대한 연구로, 1993년 金日成의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로 성균관大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李 씨의 석사논문 제목은 「北韓指導集團의 抗日무장투쟁의「역사적 경험」에 대한 硏究」이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학계의「金日成가짜설」을 반박하면서 「金日成이 抗日빨치산운동이라는「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당성과 정통성을 얻어 북한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李 씨는 같은 논문에서 金日成에 대해 『군사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 준다』『동만(東만주)일대를 배경으로 抗日무장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등으로 격찬했다.
金日成의 「보천보전투(1937)」에 대해서는『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金日成이 관여한「조국광복회(1936~1938)」활동에 대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 反日민족통일전선체였다...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의 석사논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金日成은 일반 민중에게 「공산당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있었다… 요컨대 조국광복회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실천적 경험자였던 金日成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抗日무장투쟁의 聲價(성가)로 담보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후 혼란했던 북한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고…金日成의 명망성이야말로 당시 북한 전역에서 자율적으로 분출하고 있던 지방인민정권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지도자로 金日成을 선택하게 하는 제일의 요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李 씨의 석사논문에 나타나는 북한 체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공산화 숙청(肅淸)을 「사회개혁」내지 「민주개혁」으로 묘사하는 수준까지 이른다.
『공산주의 운동은 어느 상황에서나 근본적인 사회개혁(社會改革)을 추구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에 유념하여 抗日무장투쟁을 유격근거지에서 諸개혁을 실시하는 「정권건설」의 측면을 보다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이른바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하고자 한다』
『金日成과 그의 동료들은 1946년 2월 민주개혁(民主改革)을 주도할 통일전선에 입각한 인민정권이라 할 수 있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요컨대 민주개혁(民主改革) 기간에 실시되었던 이상의 諸개혁조치들은 기본적으로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근거지에서 실시되었던 제반 민주개혁(民主改革)과 조국광복회 10대 강령을 심화*구현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통일의 제1요건은 外勢의 간섭 배격』
李鍾奭씨는 80년대 후반 宋斗律, 조희연 등 左派지식인들이 참여했던 월간지 「사회와 사상」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과격한 민족해방(民族解放) 관점의 통일론을 주장했다. 88년 9월호에 실린 李 씨의 「남한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이라는 글을 살펴보자.
『왜 지금까지 역대 정권은 통일논의를 일방적으로 독점하였는가? 이는 역대정권이 한결같이 갖고 있던 「대미예속성」과 「反민족주의 反민주주의적 속성」이 바로 그 주범인 것이다… 오늘날 통일운동을 주도해가는 민족민주운동진영에 있어 진정한 통일은 한국사회를 강점해 분단함으로써 한국민중을 고통의 늪에 빠뜨리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는 제국주의(帝國主義)세력을 이 땅에서 축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즉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통일운동을 전개해가는 것이다… 내 조국의 반쪽인 북한사회에 대해서 바로알기운동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는 90년 3월 성균관대 학보에서도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外勢)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주체사상 낳았다?』
李鍾奭씨의 이 같은 과격한 주장들은 93년 박사논문을 쓸 무렵 상당히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박사논문에서도『주체사상이 북한에 적용된 것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결과 실패한 것』이라며 金日成유일체제에 대한 비판적 주장을 펴고 있다.
당시 그를 지켜 본 동료학자들은 『李鍾奭씨는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북한체제의 영속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는듯했다. 당시는 金日成과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그의 사상체계가 상당히 흔들리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金日成은 北주민에 자주시대 개척자로 각인』
李鍾奭씨의 主저서인 1995년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와 이를 보완한 2000년 판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역시 그의 석*박사논문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저서들은 金日成의 카리스마와 金正日의 통치능력에 상당부분이 할애돼 있다.
1995년 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 삽입된 金日成 평전 中 「강성 이미지 뒤에 숨겨진 실용주의적 측면들」이라는 단락은 『유능한 협상가로서의 金日成이 한반도 전쟁을 막았다』는 요지로 이렇게 적고 있다.
『金日成은 독재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유능한 협상가였음에도 틀림없다...휴전 이후 41년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이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한국정부나 미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의 반은 金日成과 북한사회가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우리에게 항상 무모하리만치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해보이지만 실은 전쟁을 두려워하며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같은 단락에서 시아누크가 알바니아의 지도자 엔베르호자를 만났던 인상을 적은 글을 인용, 평양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金日成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나는 그토록 우아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상냥하고도 정중한 인물이 외부세계에서는 음흉한 술책을 꾸미고 스탈린주의적인 포악하고도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른 인물로 묘사되는 그러한 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李씨는 「金日成 카리스마의 특징」이라는 단락에서 『金日成은 「천재성」이나 「영웅성」 선전을 통해서 카리스마를 구축한 다른 공산지도자들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절대화한 사회질서와 윤리를 새로이 「창출」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수령은 대중으로부터 충성과 효성을 맹세 받는 대신에 이민위천(以民爲天)의 정신으로 인민을 대하고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정치」, 즉 인덕(仁德)정치를 공언한다. 「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여기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정치를 해나가는 것」으로 정의되는 이 仁德政治야말로 현대와 봉건의 착종으로 특징지어지는 金日成 카리스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金日成의 카리스마는 현대 사회주의와 봉건적 가족국가관이 결합되어 만들어 낸 독특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능력의 金正日」 표현 반복
1995년 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 나오는 金正日에 대한 평가는 「광폭정치로 많은 이들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등의 서술을 필두로 「조직관리능력이 만만치 않다」「외교적 안목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다」「외교능력이 만만치 않다」「대외적 안목이 뒤떨어지지 않는다」「실용주의적 관점으로 경제관이 변화했다」「반음착오까지 알아낼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다」「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칭찬을 반복하고 있다. 관련 부분들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광폭정치는 인민을 위한 정치는 그릇이 커야 하며 그릇이 크지 못하면 대중을 다 담아내지 못하며 대중이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거나 로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전체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정치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오늘날 金正日의 광폭정치는 대내적으로 주민단결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경제위기 속에서 북한이 남한기업인들은 물론 교포실업가들과 종교인 등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논리적 발판이 되고 있다.』
『金正日이 조직관리의 핵심인 최고지도부 인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의외로 안정적이다. 아마 이러한 안정성은 그의 조직관리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金正日의 지도력 분야 중 흔히 서방전문가들에 의해서 가장 의문시되는 부분이 외교능력이다. 그러나 외교 분야의 모든 곳에서 그의 능력이 의문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적어도 외교정책 결정이나 외교적 안목에서는 일정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근 그의 직접적인 지시 아래 진행된 북한측의 북미회담 타결 솜씨는 그이 외교능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金正日은 지도자의 주요 덕목이 될 수 있는 대외적 안목에서도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 혹자는 그가 외국 방문 횟수가 적고 외국영화를 많이 보니까 영화를 통해서 서방의 이미지가 굴절되어 자리잡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증언자들에 따르면 그는 집무실에 모니터를 설치해 놓고 거의 매일 한국, 일본, 중국의 TV를 보며 서방 정보를 입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지도자 金正日을 떠올릴 때 우리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그의 문학예술적 자질일 것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 중 특정 연주자의 반음 착오까지 알아맞힐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종자론」으로 유명한 영화예술론을 내놓을 정도로 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바로 이 문학예술은 金正日 을 북한 경제에 부각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2000년 판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는 1995년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 나오는 표현들을 그대로 반복 인용하고 있다. 다만 『金日成의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북한통치는 베버의 표현대로라면 「지배자의 인격과 그가 지닌 천부의 자질」을 「인민」이 「헌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는 등 수식적 표현들과 북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이 추가돼 있다. (계속) (konas)
김성욱 미래한국신문 기자 gurkhan@empal.com
**이 글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가 주최한 제 3회 국민행동 아카데미(주제: 盧 정권의 연방제 赤化음모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서 미래한국 신문 김성욱 기자가 발제한 발표문 요약 입니다.<편집자>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차장이 1월2일 통일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李鍾奭의 이념체계」가 향후 남북관계를 이끌고 갈 소프트웨어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李鍾奭의 이념체계」를 분석하는 것은 「연방제」등 事變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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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은 일반 민중에게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
성균관大 행정학과 78학번인 李鍾奭(48세)씨는 1989년 金日成의 빨치산운동에 대한 연구로, 1993년 金日成의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로 성균관大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李 씨의 석사논문 제목은 「北韓指導集團의 抗日무장투쟁의「역사적 경험」에 대한 硏究」이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학계의「金日成가짜설」을 반박하면서 「金日成이 抗日빨치산운동이라는「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당성과 정통성을 얻어 북한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李 씨는 같은 논문에서 金日成에 대해 『군사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 준다』『동만(東만주)일대를 배경으로 抗日무장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등으로 격찬했다.
金日成의 「보천보전투(1937)」에 대해서는『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金日成이 관여한「조국광복회(1936~1938)」활동에 대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 反日민족통일전선체였다...역사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의 석사논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金日成은 일반 민중에게 「공산당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있었다… 요컨대 조국광복회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실천적 경험자였던 金日成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抗日무장투쟁의 聲價(성가)로 담보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후 혼란했던 북한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고…金日成의 명망성이야말로 당시 북한 전역에서 자율적으로 분출하고 있던 지방인민정권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지도자로 金日成을 선택하게 하는 제일의 요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李 씨의 석사논문에 나타나는 북한 체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공산화 숙청(肅淸)을 「사회개혁」내지 「민주개혁」으로 묘사하는 수준까지 이른다.
『공산주의 운동은 어느 상황에서나 근본적인 사회개혁(社會改革)을 추구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에 유념하여 抗日무장투쟁을 유격근거지에서 諸개혁을 실시하는 「정권건설」의 측면을 보다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이른바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하고자 한다』
『金日成과 그의 동료들은 1946년 2월 민주개혁(民主改革)을 주도할 통일전선에 입각한 인민정권이라 할 수 있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요컨대 민주개혁(民主改革) 기간에 실시되었던 이상의 諸개혁조치들은 기본적으로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근거지에서 실시되었던 제반 민주개혁(民主改革)과 조국광복회 10대 강령을 심화*구현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통일의 제1요건은 外勢의 간섭 배격』
李鍾奭씨는 80년대 후반 宋斗律, 조희연 등 左派지식인들이 참여했던 월간지 「사회와 사상」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과격한 민족해방(民族解放) 관점의 통일론을 주장했다. 88년 9월호에 실린 李 씨의 「남한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이라는 글을 살펴보자.
『왜 지금까지 역대 정권은 통일논의를 일방적으로 독점하였는가? 이는 역대정권이 한결같이 갖고 있던 「대미예속성」과 「反민족주의 反민주주의적 속성」이 바로 그 주범인 것이다… 오늘날 통일운동을 주도해가는 민족민주운동진영에 있어 진정한 통일은 한국사회를 강점해 분단함으로써 한국민중을 고통의 늪에 빠뜨리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는 제국주의(帝國主義)세력을 이 땅에서 축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즉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통일운동을 전개해가는 것이다… 내 조국의 반쪽인 북한사회에 대해서 바로알기운동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는 90년 3월 성균관대 학보에서도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外勢)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주체사상 낳았다?』
李鍾奭씨의 이 같은 과격한 주장들은 93년 박사논문을 쓸 무렵 상당히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박사논문에서도『주체사상이 북한에 적용된 것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결과 실패한 것』이라며 金日成유일체제에 대한 비판적 주장을 펴고 있다.
당시 그를 지켜 본 동료학자들은 『李鍾奭씨는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북한체제의 영속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는듯했다. 당시는 金日成과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그의 사상체계가 상당히 흔들리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金日成은 北주민에 자주시대 개척자로 각인』
李鍾奭씨의 主저서인 1995년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와 이를 보완한 2000년 판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역시 그의 석*박사논문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저서들은 金日成의 카리스마와 金正日의 통치능력에 상당부분이 할애돼 있다.
1995년 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 삽입된 金日成 평전 中 「강성 이미지 뒤에 숨겨진 실용주의적 측면들」이라는 단락은 『유능한 협상가로서의 金日成이 한반도 전쟁을 막았다』는 요지로 이렇게 적고 있다.
『金日成은 독재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유능한 협상가였음에도 틀림없다...휴전 이후 41년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이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한국정부나 미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의 반은 金日成과 북한사회가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우리에게 항상 무모하리만치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해보이지만 실은 전쟁을 두려워하며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같은 단락에서 시아누크가 알바니아의 지도자 엔베르호자를 만났던 인상을 적은 글을 인용, 평양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金日成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나는 그토록 우아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상냥하고도 정중한 인물이 외부세계에서는 음흉한 술책을 꾸미고 스탈린주의적인 포악하고도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른 인물로 묘사되는 그러한 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李씨는 「金日成 카리스마의 특징」이라는 단락에서 『金日成은 「천재성」이나 「영웅성」 선전을 통해서 카리스마를 구축한 다른 공산지도자들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절대화한 사회질서와 윤리를 새로이 「창출」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수령은 대중으로부터 충성과 효성을 맹세 받는 대신에 이민위천(以民爲天)의 정신으로 인민을 대하고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정치」, 즉 인덕(仁德)정치를 공언한다. 「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여기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정치를 해나가는 것」으로 정의되는 이 仁德政治야말로 현대와 봉건의 착종으로 특징지어지는 金日成 카리스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金日成의 카리스마는 현대 사회주의와 봉건적 가족국가관이 결합되어 만들어 낸 독특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능력의 金正日」 표현 반복
1995년 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 나오는 金正日에 대한 평가는 「광폭정치로 많은 이들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등의 서술을 필두로 「조직관리능력이 만만치 않다」「외교적 안목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다」「외교능력이 만만치 않다」「대외적 안목이 뒤떨어지지 않는다」「실용주의적 관점으로 경제관이 변화했다」「반음착오까지 알아낼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다」「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칭찬을 반복하고 있다. 관련 부분들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광폭정치는 인민을 위한 정치는 그릇이 커야 하며 그릇이 크지 못하면 대중을 다 담아내지 못하며 대중이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거나 로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전체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정치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오늘날 金正日의 광폭정치는 대내적으로 주민단결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경제위기 속에서 북한이 남한기업인들은 물론 교포실업가들과 종교인 등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논리적 발판이 되고 있다.』
『金正日이 조직관리의 핵심인 최고지도부 인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의외로 안정적이다. 아마 이러한 안정성은 그의 조직관리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金正日의 지도력 분야 중 흔히 서방전문가들에 의해서 가장 의문시되는 부분이 외교능력이다. 그러나 외교 분야의 모든 곳에서 그의 능력이 의문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적어도 외교정책 결정이나 외교적 안목에서는 일정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근 그의 직접적인 지시 아래 진행된 북한측의 북미회담 타결 솜씨는 그이 외교능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金正日은 지도자의 주요 덕목이 될 수 있는 대외적 안목에서도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 혹자는 그가 외국 방문 횟수가 적고 외국영화를 많이 보니까 영화를 통해서 서방의 이미지가 굴절되어 자리잡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증언자들에 따르면 그는 집무실에 모니터를 설치해 놓고 거의 매일 한국, 일본, 중국의 TV를 보며 서방 정보를 입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지도자 金正日을 떠올릴 때 우리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그의 문학예술적 자질일 것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 중 특정 연주자의 반음 착오까지 알아맞힐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종자론」으로 유명한 영화예술론을 내놓을 정도로 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바로 이 문학예술은 金正日 을 북한 경제에 부각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2000년 판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는 1995년판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에 나오는 표현들을 그대로 반복 인용하고 있다. 다만 『金日成의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북한통치는 베버의 표현대로라면 「지배자의 인격과 그가 지닌 천부의 자질」을 「인민」이 「헌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는 등 수식적 표현들과 북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이 추가돼 있다. (계속) (konas)
김성욱 미래한국신문 기자 gurkhan@empal.com
**이 글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가 주최한 제 3회 국민행동 아카데미(주제: 盧 정권의 연방제 赤化음모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서 미래한국 신문 김성욱 기자가 발제한 발표문 요약 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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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극단적인 용어를 쓰지않는다. 민족을 운운하는 자가 제국주의??? 혁명가인가???? 그러면 혁명가라고 밝혀야지!!!! 장관쯤되었면 용어도 좀 가려서 쓰라 불쌍한자들로 국민이 무척고단하구나.</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1-25 오전 9:3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