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위한 한미동맹 재정립: 분단관리에서 통일지향으로
Written by. 정창인
입력 : 2003-11-04 오후 9:08:00
금년이 한미동맹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다양한 학술대회와 기념행사가 있었다. 예로부터 십년의 세월은 강산이 변할 만큼 긴 시간으로 인식되었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할 수 있는 긴 기간 유지되어온 한미동맹은 역사상 가장 긴 동맹에 속한다. 그러나 장기간 유지되어온 동맹관계는 그 근거가 되는 기본 원인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동맹의 목적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단순한 분단관리를 넘어 통일을 위한 적극적 동맹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남침과 한미동맹의 성립
145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그 다음 해인 1949년에 남한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완전히 철수한 미군이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은 미군이 철수한 바로 일년 후에 발생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저지하기 위해서 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하였다. 당시 한국은 그 어느 국가와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그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회의 이름으로 1950년 6월 26일 국제연합 총회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 6월 27일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는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 입안하고 제출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은 국제연합 가맹국에 대해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원조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 영국 등 16개 국가가 한국에 파병하게 되었고 국제연합군이 편성되었다.
이렇게 구성된 국제연합군을 지휘할 기구가 없었다. 이에 안전보장 이사회는 7월 7일 미국의 책임하에 통합사령부(United Command)의 설립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리하여 유엔 결의에 의하여 유엔사령부가 설치되게 되었다.
전선이 고착되게 되자 1951년 휴전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통일을 포기하는 휴전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휴전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 한국 정부는 미국에 대해 안전보장을 그 조건으로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한미동맹의 기본골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첫째, 타국이 대한민국을 침략할 때 미군은 공동방위를 자동적으로 수행할 것; 둘째, 미국은 대한민국에 상당한 군비를 제공하여 미국군대가 한국전에 참전할 필요가 없도록 할 것; 셋째, 미군은 해공군을 계속 한국에 주둔시켜 적의 재침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방위를 강화할 것 등이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1953년 6월 8일 포로교환문제에 국제연합측과 공산측이 합의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여 휴전협정 체결을 제동하는 한편 한미 방위동맹 체결을 다시 요구하였다. 이에 약 2주간에 걸친 한미 양국의 협의를 거쳐 1953년 7월 12일 한미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되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정전협정 서명 직후인 1953년 8월 5일 서울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한미회담이 개최되었고, 8월 8일에 상호방위조약에 가서명하게 되었으며 10월 1일에 정식으로 서명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50년을 유지해온 한미동맹이 성립되게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미동맹을 지탱하는 기본조약으로 역할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미동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법적 구성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에 입각하여 한국과 미국이 상호 이익의 증진을 위해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50년의 성공적인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그것은 한미동맹이 근본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소극적 성격의 것이어서 통일을 위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 동맹은 북한의 집요한 생존전략과 이를 추종하는 남한내 친북세력 및 정권에 의해 오히려 와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지난 50년의 세월에 세계 역사가 바뀌었지만 한반도에만 유독 아직 냉전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겉으로 성공적으로 보이는 한미동맹의 기본 목표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가 바뀐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재정립하여야 한다.
이중적인 주한미군의 역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은 그 동안 전쟁의 억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미군이 전방에 주둔함으로써 북한의 공격이 있을 경우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하는 인계철선의 역할을 수행하여 자동개입조항이 없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실질적으로 보완하였다. 이러한 사실상의 자동개입보장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재발을 막았으며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여 경제적 발전에 크기 기여하였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조기경보능력 또한 북한의 전쟁도발 의지를 꺽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미국은 다양한 형태로 한국군의 무장을 도왔으며 이로 힘입어 한국은 과도한 국방비의 지출 없이도 일정수준의 국방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한미합동 훈련은 세계 최선진 군대와 협동하여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한국군이 배양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미군의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전쟁 억지였다. 핵무기가 없는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며 미국의 자동개입을 통한 재래식 전쟁의 억지력 또한 전쟁의 방지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한미군의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아직 50년 전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 이유는 주한미군의 역할이 단순히 전쟁을 억지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안전 또한 보장하는 비의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주한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모험 가능성을 억제하여 균형자로서 역할하는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사실 주한 미군의 존재는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일정한 통제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최초단계에서부터 저지되었으며 전략적 공격무기의 보유 또한 통제되었다. 한국이 주한미군에게 전쟁억제와 방어를 의존하게 되어 자주국방 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미약하였다. 북한군의 상존하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2.6%에 머물러 있는 점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이보다 북한을 더 안심시켜 주는 장치는 없을 것이다.
한국 방어를 위한 한미동맹이 단순히 한국의 방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체제 존속에도 기여하였다면 이 얼마나 역설적인 현실인가? 그 결과 정전협정이 조인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다. 세계의 공산 불록이 해체된 지금 우리는 아직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포, 그리고 북한군의 전진배치에 따르는 기습공격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국가전략의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르는 한미동맹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에 기인한다.
한미동맹 위기의 본질
겉보기에 돈독한 한미동맹에 위기가 발생한 것은 촛불시위를 통한 단순한 반미감정의 표현이나 한총련 학생들이 미군 훈련장 난입 때문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 뒤에 존재하는 한국, 미국, 북한의 국가전략의 차이와 충돌에서 비롯된다. 특히 한국의 통일에 대한 의지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한미동맹의 존재의의 자체가 북한이라는 한미간의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북아 안정을 위한 한미동맹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미동맹의 기본은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이러한 전략에 대해 남한 내부에 존재하는 친북세력에 의해 형성된 여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 정부가 동조하는 현상이 생기면서 한미동맹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김정일의 독재정권을 지원하게 되고, 특히 6.15 남북정상회담 후 한국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였을 때 한미동맹은 근본적으로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한미동맹의 기본전제인 공동의 적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한 미군의 역할 변경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지역의 세력 균형자로서 역할하는 한 북한도 더 이상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전달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한국이 중재자로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한 것도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하여 미국과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기본정신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오히려 중재자로서 역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한미동맹을 파기한 것과 다름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민족공조를 택하고 외세공조를 포기하는 듯한 이러한 한국 정부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한미동맹의 파기에까지 이르지 않는 것은 한미동맹의 목적이 적극적인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현상유지라는 소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의 화해와 협력 정책은 그 역시 통일이라는 적극적 목적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상 고착이라는 소극적 목적을 표현한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 북한, 미국의 삼각관계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곡예와 같은 이 삼각관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세 당사자 중 어는 두 당사자가 협력하여 언제나 다른 한 당사자를 위기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초래한 이 아슬아슬한 삼각관계가 바로 한미동맹 위기의 근원이다.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와 남한의 영구분단 음모의 결합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통일을 추구하는 서독 정부의 치밀한 전략과 계획이 통일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공산세계가 무너지고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버렸을 때 한국 정부는 오히려 통일비용을 내세우며 통일에 관심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였다. 한국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흡수통일은 없다고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겉으론 통일을 외쳤으나 속으로는 영구분단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은 아예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국가목표로 정하였다.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외치면서도 사실은 서로 딴 살림을 살자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은밀하게 추진한 영구분단 정책은 북한의 전략에 말려 들어 모든 상식을 뒤집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 때부터 모든 가치판단이 왜곡되게 되었다. '통일'은 북한식 통일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민족'이나 '평화'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포용하는 뜻으로 변질되었다. '평화비용'이란 명목으로 북한에 달러화폐를 제공하여 북한의 군비증강을 지원하는 것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었다. 남한의 이러한 영구분단 음모에 의해 북한의 체제붕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의 전략이 선제공격으로 바뀌자 북한은 체제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북한은 체제보장을 미국에 요구하게 되고 그 수단으로 핵무기를 양면의 칼로 이용하게 되었다.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통한 체제보장 요구를 미국이 들어 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 핵무기가 갖는 안보상의 위험에 대한 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현 상황은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가 남한의 영구분단 음모와 결부되어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체제보장의 위험성
한반도에 존재하는 안보의 위기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정치체제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공산독재정치체제를 버리지 않는 한 자유민주체제를 기본으로 한 남한의 안보는 위태롭다. 자유민주체제를 채택한 남한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국제적 발언권이 높아질수록 북한의 체제불안 역시 증가한다. 두 체제는 공존할 수가 없다. 어느 한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어느 체제가 붕괴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다.
자유경쟁을 부정하는 공산독재체제는 이미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함이 증명되었다. 북한이 자신의 공산독재체제를 미국이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무의미하다. 미국이 보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생력이 없어 실패한 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공산독재체제의 존재 여부는 북한 주민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이 자유의지로 체제를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자유사회의 시민들이 단결하여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찾아 주어야 한다. 북한의 민주화, 그리고 자유민주체제로의 전환, 이 길만이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북한의 현 공산군사독재체제의 보장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도덕하다. 북한의 현 정권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의 안보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통일을 지향한 한미동맹 재정립
전세계적 냉전체제 하에서는 한미동맹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도 타당하다. 세계가 양대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최선의 목표는 전쟁의 방지와 현상의 유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독재체제가 인류의 최대의 비극적인 실험으로 끝난 지금에도 한미동맹이 추구하는 목표가 북한의 전쟁 도발 방지라면 그것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한미동맹이 당연히 붕괴되어야 할 북한의 공산독재정권의 존속을 보장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자유를 향해 달리고 있다. 역사는 모든 억압적인 사회제도로부터 개인을 해방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 김정일 공산독재정권은 세계에서도 가장 나쁜 독재정권이다. 북한 주민은 군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강압적인 독재정권에 의해 기본적 생존권마저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그 어느 자유사회의 가치에 비추어 보아도 '악의 축'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제거하고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찾아 주는 것이 우리 자유시민의 의무다.
이를 위해 한미동맹의 목적은 시대 변화에 걸맞게 재정립되어야 한다. 우선 한국 정부는 자유민주체제 아래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을 국가적 기본 목적으로 추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재정립하여야 한다. 세계 유일의 초 강대국 미국을 동맹국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작 북한의 독재정권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는 너무나 소극적이다. 미국이 우리와 친구일 때, 그리고 미국이 자유민주체제의 선도자로 자임하는 이 때에 우리는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을 성취하여야 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이제 통일을 지향하여 재정립되어 마땅하다.
북한의 남침과 한미동맹의 성립
145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그 다음 해인 1949년에 남한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완전히 철수한 미군이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은 미군이 철수한 바로 일년 후에 발생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저지하기 위해서 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하였다. 당시 한국은 그 어느 국가와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그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회의 이름으로 1950년 6월 26일 국제연합 총회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 6월 27일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는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 입안하고 제출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은 국제연합 가맹국에 대해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원조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 영국 등 16개 국가가 한국에 파병하게 되었고 국제연합군이 편성되었다.
이렇게 구성된 국제연합군을 지휘할 기구가 없었다. 이에 안전보장 이사회는 7월 7일 미국의 책임하에 통합사령부(United Command)의 설립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리하여 유엔 결의에 의하여 유엔사령부가 설치되게 되었다.
전선이 고착되게 되자 1951년 휴전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통일을 포기하는 휴전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휴전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 한국 정부는 미국에 대해 안전보장을 그 조건으로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한미동맹의 기본골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첫째, 타국이 대한민국을 침략할 때 미군은 공동방위를 자동적으로 수행할 것; 둘째, 미국은 대한민국에 상당한 군비를 제공하여 미국군대가 한국전에 참전할 필요가 없도록 할 것; 셋째, 미군은 해공군을 계속 한국에 주둔시켜 적의 재침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방위를 강화할 것 등이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1953년 6월 8일 포로교환문제에 국제연합측과 공산측이 합의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여 휴전협정 체결을 제동하는 한편 한미 방위동맹 체결을 다시 요구하였다. 이에 약 2주간에 걸친 한미 양국의 협의를 거쳐 1953년 7월 12일 한미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되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정전협정 서명 직후인 1953년 8월 5일 서울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한미회담이 개최되었고, 8월 8일에 상호방위조약에 가서명하게 되었으며 10월 1일에 정식으로 서명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50년을 유지해온 한미동맹이 성립되게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미동맹을 지탱하는 기본조약으로 역할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미동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법적 구성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에 입각하여 한국과 미국이 상호 이익의 증진을 위해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50년의 성공적인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그것은 한미동맹이 근본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소극적 성격의 것이어서 통일을 위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 동맹은 북한의 집요한 생존전략과 이를 추종하는 남한내 친북세력 및 정권에 의해 오히려 와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지난 50년의 세월에 세계 역사가 바뀌었지만 한반도에만 유독 아직 냉전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겉으로 성공적으로 보이는 한미동맹의 기본 목표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가 바뀐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재정립하여야 한다.
이중적인 주한미군의 역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은 그 동안 전쟁의 억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미군이 전방에 주둔함으로써 북한의 공격이 있을 경우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하는 인계철선의 역할을 수행하여 자동개입조항이 없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실질적으로 보완하였다. 이러한 사실상의 자동개입보장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재발을 막았으며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여 경제적 발전에 크기 기여하였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조기경보능력 또한 북한의 전쟁도발 의지를 꺽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미국은 다양한 형태로 한국군의 무장을 도왔으며 이로 힘입어 한국은 과도한 국방비의 지출 없이도 일정수준의 국방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한미합동 훈련은 세계 최선진 군대와 협동하여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한국군이 배양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미군의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전쟁 억지였다. 핵무기가 없는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며 미국의 자동개입을 통한 재래식 전쟁의 억지력 또한 전쟁의 방지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한미군의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아직 50년 전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 이유는 주한미군의 역할이 단순히 전쟁을 억지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안전 또한 보장하는 비의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주한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모험 가능성을 억제하여 균형자로서 역할하는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사실 주한 미군의 존재는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일정한 통제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최초단계에서부터 저지되었으며 전략적 공격무기의 보유 또한 통제되었다. 한국이 주한미군에게 전쟁억제와 방어를 의존하게 되어 자주국방 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미약하였다. 북한군의 상존하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2.6%에 머물러 있는 점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이보다 북한을 더 안심시켜 주는 장치는 없을 것이다.
한국 방어를 위한 한미동맹이 단순히 한국의 방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체제 존속에도 기여하였다면 이 얼마나 역설적인 현실인가? 그 결과 정전협정이 조인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다. 세계의 공산 불록이 해체된 지금 우리는 아직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포, 그리고 북한군의 전진배치에 따르는 기습공격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국가전략의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르는 한미동맹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에 기인한다.
한미동맹 위기의 본질
겉보기에 돈독한 한미동맹에 위기가 발생한 것은 촛불시위를 통한 단순한 반미감정의 표현이나 한총련 학생들이 미군 훈련장 난입 때문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 뒤에 존재하는 한국, 미국, 북한의 국가전략의 차이와 충돌에서 비롯된다. 특히 한국의 통일에 대한 의지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한미동맹의 존재의의 자체가 북한이라는 한미간의 공동의 적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북아 안정을 위한 한미동맹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미동맹의 기본은 북한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이러한 전략에 대해 남한 내부에 존재하는 친북세력에 의해 형성된 여론의 영향을 받은 한국 정부가 동조하는 현상이 생기면서 한미동맹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김정일의 독재정권을 지원하게 되고, 특히 6.15 남북정상회담 후 한국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였을 때 한미동맹은 근본적으로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한미동맹의 기본전제인 공동의 적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한 미군의 역할 변경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지역의 세력 균형자로서 역할하는 한 북한도 더 이상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전달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한국이 중재자로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한 것도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하여 미국과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기본정신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오히려 중재자로서 역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한미동맹을 파기한 것과 다름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민족공조를 택하고 외세공조를 포기하는 듯한 이러한 한국 정부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한미동맹의 파기에까지 이르지 않는 것은 한미동맹의 목적이 적극적인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현상유지라는 소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의 화해와 협력 정책은 그 역시 통일이라는 적극적 목적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상 고착이라는 소극적 목적을 표현한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 북한, 미국의 삼각관계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곡예와 같은 이 삼각관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세 당사자 중 어는 두 당사자가 협력하여 언제나 다른 한 당사자를 위기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초래한 이 아슬아슬한 삼각관계가 바로 한미동맹 위기의 근원이다.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와 남한의 영구분단 음모의 결합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통일을 추구하는 서독 정부의 치밀한 전략과 계획이 통일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공산세계가 무너지고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버렸을 때 한국 정부는 오히려 통일비용을 내세우며 통일에 관심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였다. 한국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흡수통일은 없다고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겉으론 통일을 외쳤으나 속으로는 영구분단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은 아예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국가목표로 정하였다.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외치면서도 사실은 서로 딴 살림을 살자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은밀하게 추진한 영구분단 정책은 북한의 전략에 말려 들어 모든 상식을 뒤집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 때부터 모든 가치판단이 왜곡되게 되었다. '통일'은 북한식 통일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민족'이나 '평화'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포용하는 뜻으로 변질되었다. '평화비용'이란 명목으로 북한에 달러화폐를 제공하여 북한의 군비증강을 지원하는 것이 공개적으로 추진되었다. 남한의 이러한 영구분단 음모에 의해 북한의 체제붕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의 전략이 선제공격으로 바뀌자 북한은 체제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북한은 체제보장을 미국에 요구하게 되고 그 수단으로 핵무기를 양면의 칼로 이용하게 되었다.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통한 체제보장 요구를 미국이 들어 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 핵무기가 갖는 안보상의 위험에 대한 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현 상황은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가 남한의 영구분단 음모와 결부되어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체제보장의 위험성
한반도에 존재하는 안보의 위기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정치체제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공산독재정치체제를 버리지 않는 한 자유민주체제를 기본으로 한 남한의 안보는 위태롭다. 자유민주체제를 채택한 남한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국제적 발언권이 높아질수록 북한의 체제불안 역시 증가한다. 두 체제는 공존할 수가 없다. 어느 한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어느 체제가 붕괴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다.
자유경쟁을 부정하는 공산독재체제는 이미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함이 증명되었다. 북한이 자신의 공산독재체제를 미국이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무의미하다. 미국이 보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생력이 없어 실패한 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공산독재체제의 존재 여부는 북한 주민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이 자유의지로 체제를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자유사회의 시민들이 단결하여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찾아 주어야 한다. 북한의 민주화, 그리고 자유민주체제로의 전환, 이 길만이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북한의 현 공산군사독재체제의 보장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도덕하다. 북한의 현 정권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의 안보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통일을 지향한 한미동맹 재정립
전세계적 냉전체제 하에서는 한미동맹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도 타당하다. 세계가 양대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최선의 목표는 전쟁의 방지와 현상의 유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독재체제가 인류의 최대의 비극적인 실험으로 끝난 지금에도 한미동맹이 추구하는 목표가 북한의 전쟁 도발 방지라면 그것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한미동맹이 당연히 붕괴되어야 할 북한의 공산독재정권의 존속을 보장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자유를 향해 달리고 있다. 역사는 모든 억압적인 사회제도로부터 개인을 해방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 김정일 공산독재정권은 세계에서도 가장 나쁜 독재정권이다. 북한 주민은 군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강압적인 독재정권에 의해 기본적 생존권마저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그 어느 자유사회의 가치에 비추어 보아도 '악의 축'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제거하고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찾아 주는 것이 우리 자유시민의 의무다.
이를 위해 한미동맹의 목적은 시대 변화에 걸맞게 재정립되어야 한다. 우선 한국 정부는 자유민주체제 아래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을 국가적 기본 목적으로 추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재정립하여야 한다. 세계 유일의 초 강대국 미국을 동맹국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작 북한의 독재정권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는 너무나 소극적이다. 미국이 우리와 친구일 때, 그리고 미국이 자유민주체제의 선도자로 자임하는 이 때에 우리는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을 성취하여야 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이제 통일을 지향하여 재정립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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