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의 파괴자이며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중국 하얼빈 역두에서 사살하고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날이다.

 안 의사는 의거 후 침울한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출생으로부터 선교활동·육영사업·의병투쟁, 그리고 이토 처단과 사형 선고를 받기까지의 자서전 '안응칠역사'(安應七:출생시 가슴과 배에 검은 점 일곱 개가 있어 북두칠성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고 해 아명을 응칠이라 불렀음)를 완결 짓고 3월15일부터 '동양평화론' 집필을 결심, 관동도독부 히라이시(平石)고등법원장으로부터 사형 집행 연기를 허락받았으나 일본 정부의 강압에 의해 서둘러 집행함으로써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본문 일부분만 쓸 수밖에 없었다.

 재판은 형식적으로 심문·변호·구형·사형 선고 등 6회 공판으로 한 주일만에 속전속결로 끝냈다. 안 의사는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일본에는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느냐"며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안 의사 공판은 원인 무효

 안 의사의 공판은 원인 무효다. 우선 사건이 제정 러시아의 조차(租借) 지역에서 일어났고 안 의사가 한국인이었음에도 우리나라 변호사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 형법으로 살인죄를 적용, 재판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또 안 의사가 당시 한국의 의병장 신분으로 국제법상 교전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으므로 마땅히 작전 중 체포된 포로로서의 대우를 받았어야만 했다. 당시 일본 검찰은 1905년11월17일의 제2차 한일협약을 근거로 한국은 외교권을 상실한 상태며 안 의사는 정규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일협약은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위임한 것이지 주권을 상실한 것은 아니며 1907년 정미(丁未)조약과 1909년 기유(己酉)각서에도 재판권 행사를 위한 법 적용은 한국법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채택한 육전 규칙에 따르면 정규군만 아니라 비정규군도 교전 자격자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대한제국 군대는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됐기 때문에 하얼빈 거사 당시에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의병만이 존재했다.

 안 의사는 최후 진술을 통해 "내가 이토를 처단한 것은 한국 독립 전쟁의 한 부분이요 또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도 전쟁 중에 포로가 된 때문이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며 한국 의군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행한 것이니 만국 공법에 의해 처리하라"고 했다.

 이것은 항일 투쟁의 당위성과 한국 의병장 신분이라는 확고한 신념의 표현이다. 그러나 일본인들 사이에는 지금도 안 의사를 일본의 대륙 진출을 방해한 인물 혹은 메이지(明治) 시대의 거물 정치가이자 한국의 통감을 지낸 이토를 죽인 테러리스트, 즉 흉한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정신적 표상이자 영웅인 안 의사를 흉한으로 보는 일본인들의 관념을 그대로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라는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양국의 근대사가 극단적으로 충동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안 의사의 이토 처단은 개인 관계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는 기대하기 곤란하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은 안 의사의 신념

1910년 3월26일 순국 직전까지 안의사는 어려서부터 배운 한학을 토대로 선현들의 교훈을 인용해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등 신품(神品) 같은 유묵 200여 점을 쓰고 낙관 대신 단지 혈맹으로 자른 왼쪽 장인(掌印)을 찍었다.

 그중에서 가장 최후의 것은 자신의 공판정 경호를 맡았던 일본군 헌병 지바 도시치(千葉 十七)에게 사형 집행 당일 써준 것으로 알려진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이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의사 표시는 하얼빈 거사에 대한 안 의사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즉, 이토 사살은 객관적으로 의병 전쟁의 일환으로 국제법상 전쟁 상태에서 교전 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의 판결은 중대한 법적 하자를 범한 국제법 위반 사례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법원으로서는 일본의 정규군과 한국의 의병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하얼빈 사건을 심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약소국 침탈 야욕에 편승, 한국을 합병하고자 했던 당시에 그와 같은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 의사 자신도 법 이전에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상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의사가 앞에서와 같은 내용의 진술을 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잘못된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잘못된 역사 인식만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한·중·일 지역 협력 체제 구상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유고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의 대륙 침략과 패권 추구를 두고 볼 수 없다며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는 뤼순(旅順)을 동북아의 중심지로 삼아 일본·한국·중국 세나라가 자주 독립국으로 오늘날 유럽연합(EU) 또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지역협력 체제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안 의사는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과 공동 화폐 발행, 그리고 상설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고 구미 열강의 세력 팽창을 막아내자고 했다. 이는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독선적으로 추구하려 했던 '아시아 연대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이요 주장이었다. 안 의사의 이러한 대세 판단이야말로 청일 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과 일본의 항복, 그리고 한국의 독립과 오늘날의 동북아 상황에 그대로 적중했다. 여기서 우리는 안 의사의 선구자적인 통찰력과 사상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안 의사는 이렇듯 진정한 동양 평화의 수호자였으나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이역땅 뤼순 감옥에서 3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안 의사는 오늘에도 살아 있다. 지역 패권 추구와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동북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안 의사가 주창한 지역 협력 체제 강화를 통한 기능주의적 접근 방안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한일 간 협력과 평화 기도 후 순국

 1910년 3월26일 오전10시 뤼순은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 의사는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하얀 명주옷을 입고 간수 네 명의 호송을 받으며 형장으로 끌려 나왔다.

 미조부치(溝淵) 검찰관 입회하에 구리하라(栗原) 감옥소장이 말했다.

 "금년 2월14일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확정된 사형 언도에 따라 형을 집행한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는가." 통역관이 이 말을 전하자 안 의사는 조용히 대답했다. "이토 처단은 동양 평화를 위함이었다. 한일 양국이 일치협력하여 평화를 도모하기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가 끝나자 간수가 종이 한 장을 접어 안 의사의 두 눈을 가린 다음 그 위에 흰 천을 씌우고 목에 밧줄을 감았다. 안 의사의 최후가 일각일각 다가왔다.

 일본은 이토가 죽은 지 반년 만인 1910년 3월26일 오전10시 안 의사를 교수형에 처했다. 유해는 특별히 송판으로 침관(浸灌)을 만들어 넣고 매우 정중한 취급을 받으며 뤼순 감옥 죄수 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아직도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 채 고국으로 봉안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konas)

 최명재(안중근의사숭모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