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려져야 할 '요덕'이의 이야기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보고...
13일 저녁, 친한 후배와 함께 '요덕스토리' 프리뷰(preview) 공연을 찾았습니다. 작지만 내가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초대권이 아닌, 인터넷 티켓창구에서 구입한 표를 들고 말입니다. 준비하는 과정동안 사연도 많고 고생도 많았기에 기다려왔던 공연이었지만, 공연장을 향한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마치 내가 연출한 공연처럼 주위에 앉아있었던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나 신경 쓰였습니다.
"사실 지금 너무나 떨린다"는 정성산 감독의 첫 멘트와 함께 무대의 막이 올랐습니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무대 가운데 너무나 선명하게 올라와 있는 노동당 마크와 배우들이 흔들어대는 붉은 기가 새삼 낯설게 느껴지면서, 남과 북의 간격이 생각보다는 훨씬 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 동안의 '북한스러운' 공연들이 지나가면 주인공 연화의 아버지가 '남조선 간첩'으로 몰리면서 연화의 가족들은 요덕에 도착하게 됩니다. 큰 대문 셋트 뒤로 허리를 굽힌 죄수들이 열을 지어 들어가고 그 앞에는 경비대들이 채찍과 총을 휘둘렀습니다. 비록 슬픈 내용이지만, 그 동안 책으로 읽고 증언으로 들으면서 상상만 해왔던 모습들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을 감상하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2시간 반이 넘는 긴 공연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구나"했던 점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무리'로 보였던 죄수들이 각자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개인'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슷비슷한 누더기를 입고 있는 그들이 하나하나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들을 통해 국군포로, 재일교포, 유학생, 납북어부 등 그 동안 어둠속에 묻혀있었던 이야기들이 쏟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것은 죄수들 뿐만이 아니라, 이들을 관리하는 경비대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불분명한 기준 앞에서 서로 감시하고 모략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 "얼마나 더 죽여야만 하는가"라는 배우의 대사 속에서 김정일 외에는 당의 무차별적이고 전지전능한 파워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북한 땅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북한 인권을 다룬 뮤지컬이라는 의의도 있지만, 순수 창작뮤지컬이었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공연의 수준 또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무겁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연출을 시도하려 했던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절망과 죽음에 절규하는 가사가 현란한 몸짓의 코러스걸이 함께 한 강렬한 락 음악에 묻혀 울려 퍼질 때 절묘한 조화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의 열연도 빛이 났습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은 물론이고, 혀가 잘린 국군포로 죄수 역을 맡은 고령의 배우부터 쥐를 잡으러 뛰어 다니는 아역배우들까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 최선을 다해 준 배우들이 고마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주기도문'을 변형한 한 노래의 가사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요덕에서 구하시옵소서...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이 땅에도 임하소서..." 이 가사를 들으면서 제 머리와 가슴 속에서 쾅하는 소리가 함께 울려퍼졌습니다.
요덕스토리의 광고문구가 "지구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꼭 알려져야만 하는 이야기"였던가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꼬마 '요덕이'의 나레이션을 들으면서, 동시에 실제로 수용소에서 살아나와 그곳을 폭로하고 있는 '요덕이'인 여러 탈북자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숨길 수 있는 진실은 없다"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그 동안 북녘땅 깊은 골짜기에 숨겨져있는 수용소에서 입술을 깨물며 숨죽여 울부짖고 있는 많은 영혼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자리에 서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인사에 팔이 경련을 일으키도록 박수를 치면서, 마침내 무대의 꿈을 이룬 정성산 감독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공연장이 좀 멀리 있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 무대를 통해 남한땅의, 전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소 사람들의 사연과 아픔과 눈물과 억울함과 비통함과 울부짖음과 기도와 소망이, 그리고 그리 간단하지 않은 그 땅의 부조리와 모순이 잘 전달되고 폭로되길 기대해봅니다. (출처: 자유북한방송)
김수연 기자(前 코나스 객원기자) nksu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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