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위대한 지도자·선각자·교육자"
순국 96주기 추념식, "유해발굴 봉환, 위업재조명"에 최선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6-03-26 오후 2:47:55
엄숙함이 감도는 추념식장에 안 義士의 '최후의 유언'이 낭독되자 순간 600여 객석을 가득 메우고도 부족한 식장안은 더욱 고요한 정적으로 젖어들었다.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 순국 제 96주기를 맞아 25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공원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안 의사의 순국을 기리는 추념식이 정부 각료와 전직 관료, 현역 장병을 비롯, 사관생도와 안 의사를 숭모하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두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사)안중근 의사 숭모회(이사장 황인성, 전 국무총리)주관으로 거행된 이 날 추념식에는 안 의사의 친 손자인 안춘생(전 독립기념관장)숭모회 상임고문을 비롯한 유족들과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황인성 안 의사 숭모회 이사장, 김국주 광복회장, 김영관(전 해군참모총장)제독, 안필준(전 보사부장관)대한노인회장, 이원범 3·1독립기념유족회장 등 각계의 대표자와 오철식 해군제독을 포함한 육·해·공군 대표,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황해도민회, 대한적십자회 대표, 순흥 안씨 종친 대표, 그리고 일본에서 안 의사 숭모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온 일본의 가노 다쿠미(鹿野琢見) 안중근연구회장과 사이토 타이겐(齊藤泰彦) 대림사 주지 등 20여명의 일 민간 대표단이 참석했다.
황인성 이사장은 추념사에서 "우리의 독립과 국권을 침탈한 원흉 이등박문을 주살한 뒤 일 제국주의자들의 불법적인 재판으로 여순의 형장에서 억울하게 순국한 의 의사님은 '나는 천국에 가서도 당당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며 간절한 우국충정의 유언을 후세에 남기셨다"면서 안 의사의 역사적 사실이 국내외에 알려진 후 "독립투쟁은 더욱 가열차게 전개돼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등으로 이어져 45년 광복의 그날을 맞이하고 대한독립을 수립하게 되었다"고 말해 안 의사의 의거가 국내에 끼친 영향을 나열했다.
황 이사장은 이어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100년 전 그때를 되풀이되는 듯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북한은 하루속히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안 의사 사당과 기념관을 새로이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의사님의 유언을 되새기며 그 독립정신과 얼을 영원히 지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조국침략의 원흉이자 세계평화의 공적인 이등박문을 처단함으로서 겨레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하고,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은 세계평화의 참된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또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의사님은 '민족의 영웅'이자 '구국의 횃불'로 가슴속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며,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반장(返葬)해 달라는 유언을 받들지 못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으나, 다행히 유해 봉환과 위업을 재조명하는 일에 남북이 합의를 해 국민적 관심과 남북이 협력하는 가운데 추진될 것으로 믿는다"며 최근 남북간 합의 및 중국과의 협조가 진행된 사항들을 예로 거론했다.
김국주 광복회장도 안 의사는 "우리 민족에게 교육을 힘쓰고 실력을 배양하며, 모든 힘을 다해 독립의 기초를 닦으라고 당부하신, 위대한 용기를 가진 지도자요 선각자요 교육자이셨다"며 숭모의 마음을 표한 뒤 "일본의 개화 선각자들이 어떻게 이등박문을 비롯한 명치 엘리트들을 가르치고 양성했는가를 철저해 연구해야 제2, 제3의 이등박문과 배후의 침략세력을 격퇴할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우리 사회는 지금 큰 병이 들어있다고 지적하고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우가 더 무서운 만큼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 불시의 환란을 예방하는데 열과성을 다해야 할 때"라며 광복회가 추진하고 있는 '제2광복 새 정신운동'의 확산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 날 추념행사에는 안 의사와 같은 순흥 안씨 종친인 인간문화재 명창 안숙선씨가 참석해 '안중근 열사가'를 불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안숙선씨가 열창하는 동안 가노 다쿠미씨 등 日 대표단들도 경청을 하다 끝날때는 큰 박수를 보낸데 이어 헌화에 참석해 더욱 의의를 크게 했다.
이 날 추념식에는 화창한 봄 날을 맞아 외출을 나온 육군사관학교 생도 5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기념관 내 의사의 친필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 새겨진 돌 탑 앞에서 동기생들과 사진촬영을 하고있던 강아람(24세, 4학년)생도는 "안중근 의사님에 대해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특강 등을 통해 그분이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크고 위대한 활동을 하였던가는 잘 알고 있다"면서 "오늘 추념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기생들과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앞으로 임관해 장교가 되어서도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군인이 되겠다"며 밝게 웃으며 말을 했다.
이 날 행사는 유족대표를 비롯한 참석 내빈들의 헌화, 서각유묵 증정과 안중근 의사 장학금 전달, 그리고 만세삼창순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이 날 행사장에서는 시민단체인 활빈단 홍정식 단장이 머리띠를 두르고 현수막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최근 중국 하얼빈에서 중국당국에 의해 철거된 안중근 의사 동상을 외교채널을 가동해 조속히 원상복원 조치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HID 애국청년동지회(회장 오복섭)도 기념식 참석후 안중근 의사 대형영정사진이 봉안된 차량을 통해 남산 기념관에서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 한 뒤 일본의 한국침략 및 독도영유권 주장 등을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올해로 순국 96주기가 된 안중근(1879~1910)의사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한말의 독립운동가이다. 유년시절 한학과 무술을 익히고,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의분을 못 이겨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의사는 그해 10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상(財務相) 코코프체프와의 회담을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2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오전 10시에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Konas)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 : 객사한 사람을 그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다 장사하는 일)해 다고.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功勞)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고.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엄숙함이 감도는 추념식장에 안 義士의 '최후의 유언'이 낭독되자 순간 600여 객석을 가득 메우고도 부족한 식장안은 더욱 고요한 정적으로 젖어들었다.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 순국 제 96주기를 맞아 25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공원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안 의사의 순국을 기리는 추념식이 정부 각료와 전직 관료, 현역 장병을 비롯, 사관생도와 안 의사를 숭모하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두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사)안중근 의사 숭모회(이사장 황인성, 전 국무총리)주관으로 거행된 이 날 추념식에는 안 의사의 친 손자인 안춘생(전 독립기념관장)숭모회 상임고문을 비롯한 유족들과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황인성 안 의사 숭모회 이사장, 김국주 광복회장, 김영관(전 해군참모총장)제독, 안필준(전 보사부장관)대한노인회장, 이원범 3·1독립기념유족회장 등 각계의 대표자와 오철식 해군제독을 포함한 육·해·공군 대표,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황해도민회, 대한적십자회 대표, 순흥 안씨 종친 대표, 그리고 일본에서 안 의사 숭모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온 일본의 가노 다쿠미(鹿野琢見) 안중근연구회장과 사이토 타이겐(齊藤泰彦) 대림사 주지 등 20여명의 일 민간 대표단이 참석했다.
|
황 이사장은 이어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100년 전 그때를 되풀이되는 듯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북한은 하루속히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도모하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안 의사 사당과 기념관을 새로이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의사님의 유언을 되새기며 그 독립정신과 얼을 영원히 지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
박 처장은 또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의사님은 '민족의 영웅'이자 '구국의 횃불'로 가슴속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며,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반장(返葬)해 달라는 유언을 받들지 못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으나, 다행히 유해 봉환과 위업을 재조명하는 일에 남북이 합의를 해 국민적 관심과 남북이 협력하는 가운데 추진될 것으로 믿는다"며 최근 남북간 합의 및 중국과의 협조가 진행된 사항들을 예로 거론했다.
김국주 광복회장도 안 의사는 "우리 민족에게 교육을 힘쓰고 실력을 배양하며, 모든 힘을 다해 독립의 기초를 닦으라고 당부하신, 위대한 용기를 가진 지도자요 선각자요 교육자이셨다"며 숭모의 마음을 표한 뒤 "일본의 개화 선각자들이 어떻게 이등박문을 비롯한 명치 엘리트들을 가르치고 양성했는가를 철저해 연구해야 제2, 제3의 이등박문과 배후의 침략세력을 격퇴할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우리 사회는 지금 큰 병이 들어있다고 지적하고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있지만 내우가 더 무서운 만큼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 불시의 환란을 예방하는데 열과성을 다해야 할 때"라며 광복회가 추진하고 있는 '제2광복 새 정신운동'의 확산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 날 추념행사에는 안 의사와 같은 순흥 안씨 종친인 인간문화재 명창 안숙선씨가 참석해 '안중근 열사가'를 불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안숙선씨가 열창하는 동안 가노 다쿠미씨 등 日 대표단들도 경청을 하다 끝날때는 큰 박수를 보낸데 이어 헌화에 참석해 더욱 의의를 크게 했다.
|
이 날 추념식에는 화창한 봄 날을 맞아 외출을 나온 육군사관학교 생도 5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
기념관 내 의사의 친필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 새겨진 돌 탑 앞에서 동기생들과 사진촬영을 하고있던 강아람(24세, 4학년)생도는 "안중근 의사님에 대해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특강 등을 통해 그분이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크고 위대한 활동을 하였던가는 잘 알고 있다"면서 "오늘 추념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기생들과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앞으로 임관해 장교가 되어서도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군인이 되겠다"며 밝게 웃으며 말을 했다.
이 날 행사는 유족대표를 비롯한 참석 내빈들의 헌화, 서각유묵 증정과 안중근 의사 장학금 전달, 그리고 만세삼창순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이 날 행사장에서는 시민단체인 활빈단 홍정식 단장이 머리띠를 두르고 현수막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최근 중국 하얼빈에서 중국당국에 의해 철거된 안중근 의사 동상을 외교채널을 가동해 조속히 원상복원 조치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또 HID 애국청년동지회(회장 오복섭)도 기념식 참석후 안중근 의사 대형영정사진이 봉안된 차량을 통해 남산 기념관에서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 한 뒤 일본의 한국침략 및 독도영유권 주장 등을 강력히 비난했다.
|
한편 올해로 순국 96주기가 된 안중근(1879~1910)의사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한말의 독립운동가이다. 유년시절 한학과 무술을 익히고,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의분을 못 이겨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의사는 그해 10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상(財務相) 코코프체프와의 회담을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2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오전 10시에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Konas)
이현오 기자 konasnet@hanmail.net
|
|
- 관련기사보기
-
소셜댓글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안중근의사는 우리민족의 선각자중 선각자이시며 독립투사이며, 후대에 인재의 중요성을 알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정열을 쏟은 교육자이며, 향일운동에 앞장서신 민족의 지도자이신 분의 도상이 철거된다니 우리정부는 무엇을하고 있는지 저대로 내버려둘 것인지 묻고싶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
2006-03-27 오전 8:56:40



















